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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 | [문화저널]
편지
문화저널(2004-02-19 16:15:13)
선생님께 집 앞마당에 도라지꽃이 피었습니다. 그악스레 쏟아지는 햇발이 마당에 보랏빛 별을 쏟아 놓았습니다. 틀림없이 할머니의 보살핌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도라지꽃이 더 처연합니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뜰은 쓸쓸합니다. 개울가에서 빨래하시다, “아가” 하시며 금새라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 것만 같습니다. 할머니가 세상에 안 계시다는 사실이 아직 잘 믿겨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잘 가셨습니다. 할머니 임종을 지켜본 아버지는 고통없이 편히 잘 가셨노라, 위로해 주셨습니다. 여든 여덟, 천수를 누리셨고, 자손들도 다들 장성해서 제 몫을 다 하고 삽니다. 서른 나이를 어른이라며 까불고 다녔습니다. 아직 알아야 할 것들과 배워야 할 것들과 느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시어머니 구박을 늘상 타박하시던 엄마는 상여 앞에서 서럽게 우셨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시라며 눈물 흘리던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부모님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올 여름, 저는 조금 더 큰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가시는 길,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함께 슬픔을 나눠주신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 드립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2003년 8월 7일 문화저널 천방지축 김회경 기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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