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3.9 | [특집]
진보적 문화 NGO의 미래 창작인의 복지와 사회적 발언, 기대가 쏠린다 전북 민예총 움직임 가시화
김회경 기자(2004-02-19 16:11:44)
지역의 문화지형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문화예술인 조직체 건설에 대한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는 과거 사회적 발언과 정치 민주화에 기여했던 진보적 혹은 건강한 문화대안 세력의 시대정신을 이어내고 변화하는 문화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해 나갈 문화예술인 주체가 필요하다는 의식의 확산이 있었다. 특히 건강한 문화대안세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전북문화개혁회의가 지난 7월 ‘발전적 해소’를 결정하면서 이 같은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문화개혁회의의 해체 결정 직후 뜻 있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새 조직 출범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 조직체의 방향과 성격을 하나의 가닥으로 모아낸 것이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북지부(전북 민예총). ‘문화 분권시대’와 중앙의 권력 분산 등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현재, 전북 민예총의 출범은 문화예술계의 흐름을 바꿔 나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민예총은 문화예술인들의 가장 굳건한 결속체로 그 영향력과 기득권 또한 막대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예총)의 권한을 견제하고 관변단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문화예술인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담아낸다는 취지로 지난 1988년 발족했다. 이후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이끌어가면서 사회적 발언을 높였고, 문화권력의 일방적 흐름을 막고 각종 연구활동과 문화정책을 제시해오며 전국적으로 진보적 문화예술인조직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성장해왔다. 전북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민예총의 이 같은 활동 노선과 방향을 큰 틀에서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전북 민예총 발족에는 안팎의 요구를 받아들여 전북작가회의가 그 중심에 나섰다. 작가회의가 전북지역 문화예술인조직 가운데 결속력과 사회적 발언이 가장 활발한 단체라는 공감이 있었고, 지난 1996년 한 차례 좌절됐던 민예총 건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 창립 준비위원장으로 참여한 최동현(전북작가회의, 군산대 교수)씨를 비롯 김종필(전북작가회의, 교사), 문병학(전북작가회의, 전통문화센터), 김선태(놀이패 우리마당), 김정우(사진가), 조시돈(영상, 교사), 진창윤(전북 민미협, 화가) 씨 등 30여명이 주도적으로 나섰으며, 발기인으로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전북 민예총은 지난 8월 24일 전북도립국악원에서 발기인대회를 갖고 오는 10월 6일 창립총회를 열어 회장과 실무진을 꾸린다. 이번 전북 민예총 출범은 ‘문화분권 시대’라는 새로운 조류와 문화산업이 경쟁력 있는 분야로 각광받고 있는 지금, 그 역할과 활동에 적잖은 기대를 모은다. 창작인들의 결속과 조직적 지원, 그리고 지역 문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새로운 방향타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예총 활동에 무게를 더해 온 ‘사회적 발언’이 어떤 반향과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인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전북 민예총은 활동의 근거를 중앙 민예총의 정관과 기조에 입각해 창작인들의 결속 및 지원을 우선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장은 내부 회원들의 단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장르별(분과별) 사업과 창작 지원금 확보를 활동의 우선 목표로 삼겠다는 전략. 현재로서는 중앙과의 연대사업이나 회원 전원을 아우르는 조직 사업, 그리고 사회적 발언 등을 실천하기엔 조직원들의 요구와 기대를 섬세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차분히 단계를 밟아나가겠다는 의미다. 최동현 전북 민예총 준비위원장은 “중앙 민예총의 정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창작인들의 복지 향상과 환경 개선 등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사업을 진행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북 민예총이 사업 방향과 내용을 전략적으로 선택, 실천해가겠다는 데에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있지만, 전북 민예총만의 시대정신과 정세 파악, 차별화 된 지역사업 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북 민예총 설립에 참여한 회원들 역시 이에 대한 입장을 시원스레 매듭짓지 못한 데 대한 부담이 없지 않은 상황. 앞으로 장르별, 세대별 회원간 입장과 구상을 확실하게 모아내며 민예총의 전진을 도모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데 기본적인 공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예총 설립에 참여한 한 문화예술인은 “정치적 성향과 사회적 발언을 하나로 모으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며 “정세분석이나 시대를 보는 눈이 각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고 털어놓는다. 이 부분이 전북 민예총의 정체성이 될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회원간 이해와 요구, 사회적 시각을 일관되게 통일시켜 나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 그러나 전북 민예총의 활동에는 창작인들의 복지향상과 작업 환경 개선 등의 ‘사적 영역’의 사업뿐 아니라, 공적인 역할에 대한 기대도 만만치 않게 실려있다. 일반적으로 민예총을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조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이른바 ‘운동권’ 세력이나 비주류들의 제도권 진출이 사회 전반에 걸쳐 활발히 진행되면서 민예총 간부들 역시 이 같은 흐름에서 비껴서 있지 않은 상태. 전북지역 문화예술인조직체를 ‘민예총’으로 끌고 나간 데 대한 불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던 것도 진보적이거나 대안적 성격을 견지해 나가기엔 ‘민예총’의 틀거리가 현재의 분위기로선 적합치 않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준비위원회의 내부 회의를 통해 민예총이 새로운 문화예술인조직의 ‘그릇’으로 모아지면서, 중앙 민예총의 정관과 기조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독자적인 전북 민예총만의 새로운 시각과 사업 방향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안팎에서 공감을 일으켰다. 민주화의 일정한 성과 위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책무가 무엇인지 새롭게 고민하면서 진보적 시대정신을 견지했던 문화예술인조직의 정신을 이어내는데 활동의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일부 회원의 의견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8월 20일 현재, 전북 민예총의 정관과 구체적 활동 내역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 따라서 민예총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기대 반 우려 반’의 여론이 창립과 함께 어떻게 해소되고 흘러갈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북 민예총 회원들의 내부 결속과 그 역할이 지역 문화예술을 어떻게 견인해 갈 것인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전북 민예총의 출범을 자극시킨 전북문화개혁회의의 ‘발전적 해소’는 가까운 미래를 주도할 지역 문화예술계의 콘텐츠 변화에 대한 전망의 부족과 실무자들의 관심 분산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 민예총과 문화개혁회의는 조직의 규모가 다르고 지향점에서도 차이가 없지 않지만, 조직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어 보인다. 회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조정하면서 조직이 문화예술인 개개인에게 긍지와 힘이 될 때, 사회적 발언과 공적 기여에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