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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 | [서평]
지성과 용기 『역사의 길목에서』(한승헌, 2003, 나남)
글 천이두 문학평론가 (2004-02-19 16:03:00)
한승헌선생의 칼럼집 『역사의 길목에서』를 읽었다. 뒤늦게나마 귀저의 출판을 축하하면서 독후의 소감을 적기로 한다. 저자 한승헌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법조인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감사원장이라는 소중한 직책을 맡아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 분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 출판한 『역사의 길목에서』는 그 동안에 그가 신문 잡지 등에 발표한 글들을 모와서 엮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평생을 용기있는 지성인으로서, 그리고 반듯하고 엄정한 법조인으로서 살아온 저자의 삶의 자세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훌륭한 에세이스트로서의, 그리고 당대 현실에 대한 용기 있고도 엄정한 논객으로서의 그의 모습에 접할 수 있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거니와, 이 책에 접한 필자의 소감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 책은 모두 여섯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1부 역사의 물살’에는 주로 근대화 이후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관련된 일들을 회상하면서 민족사의 어제와 오늘을 성찰하고 있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2부 인간을 찾아서’에는 저자가 만난 인물들에 관한 소견을 피력한 글들이며, ‘제3부 언론, 문화, 저작권’에서는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역대정권에 있어서의 언론탄압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바람직한 언론의 자유 내지 그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제언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제4부 법치주의의 그늘’에는 법조인으로서의 저자 자신의 체험담을 피력하는 일방 바람직한 법조인으로서의 자세 나아가서 올바른 법 질서 정립에의 염원 등이 담긴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5부 과거에서 배운다’에서는 법과 관련된 필자가 직접 체험한 사건 혹은 과거사 내지 역사적 사실을 회상하면서 바람직한 법의 정립을 지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6부 보다 나은 세상을’에서는 당대 현실의 이모저모를 살펴나가면서 보다 나은 세상이란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가, 올바른 법이 선 세상이란 어떤 세상인가, 하는 문제 등을 모색하고 있다. 서울구치소로 이송되는 날, 거의 두 달만에 처음으로 파란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의 감격 은 잊을 수가 없다. 지하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지상으로 나온 순간, 외계의 햇볕과 함 께 7월의 하늘이 내 시야를 걷잡을 수 없이 흔들어놓았다. 지금 내가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깜빡 잊은 채, 우선 하늘을 쳐다보게 된 것만이 그렇게 반가웠다. M16을 든 헌병과 어느새 내 손에 채워진 수갑을 의식한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그날 압송되어간 서울구치소는 나에겐 낯선 곳이 아니었다. 1975년 3월의 필화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던 곳이어서 말하자면 ‘재수’를 하게 된 셈이었다. 나를 감방으로 데리고 가던 교도관이 “개X같은 세상을 만나서 고생하시게 되었습니다.”라고 연민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 “개X같은 세상”이란 상말에서 오히려 나는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 다.(역사의 물살. 36쪽) ‘1980년의 민주화를 향한 ‘서울의 봄’을 군화와 총부리로 짓밟았던 정치군인들’에 의하여 조작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피고인으로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갈 당시의 정황을 회상한 구절이다. 무지막지한 정치군인들에 의하여 조작된 내란음모사건의 범인으로 붙들려서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갔다가 잠시 파란 하늘을 바라보게 된 순간의 감회를 회상하고 있는 구절이다. 참혹하고 절박한 상황이 담담하게 진술되고 있다. 그런 참혹하고 절박한 상황을 회상하고 있으면서도 문장의 토온에는 은연중 여유로운 해학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만큼 문장의 격조를 느끼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해학적인 가운데의 격조높은 토온은 이 저서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은 유능한 법조인으로서 뿐 아니라 탁월한 문장가 내지 에세이스트이기도 한 저자 한승헌에게 아주 적절하게 부합되는 경구라 아니할 수 없다. 천이두/원광대 명예교수로 있으며, 활발한 문학평론을 벌여왔다. 판소리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논문 및 저서 집필에 꾸준한 열정을 보여왔으며,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1969년 『한국현대소설론』을 펴낸 이후 『종합에의 의지』『한국소설의 관점』 『판소리 명창 임방울』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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