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9 | [저널초점]
2003 전주세계소리축제
“단순 초청에서 기획 프로그램의 확대, 새로운 행로가 열립니다”
임진택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김회경 기자(2004-02-19 15:56:48)
▲ 축제가 한달여 앞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지난해보다 행사 시기가 한달 가량 늦춰져 준비하는데 여유가 있었을 걸로 생각합니다. 행사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으신지요.
△ 지난해와 비교하면 한달 가량의 준비기간이 벌충된 셈이죠. 그렇지만 절대적인 행사 준비기간으로 보면 그리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행사 이후 차기 년도 예산 확보가 어떻게 결정될 것인지 지켜봐야 했고, 도지사가 바뀌면서 여러 가지로 안정되지 못한 분위기가 조성돼 석 달여 동안은 사실상 ‘휴업’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뛰어서 지금은 대부분의 프로그램과 출연자 섭외가 결정됐고, 행사를 치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올해로 세 번째 여정에 나섭니다. 감독님께서는 두 번째 행사를 치르게 되는데, 이번 행사의 특징은 무엇이고 주안점은 어디에 두셨습니까.
△ 단순 초청작 이전에 소리축제가 직접 기획한 작품들이 다양하게 포진되었다는 점이 크게 달라진 점입니다. 개막작인 ‘소리스펙터클’이나 어린이 창극 <다시 만난 토끼와 자라>, 그리고 창작판소리 사습대회 등을 가장 공들인 프로그램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리스펙터클’은 지난 소리축제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여러 논란 끝에 올해로 미뤄졌었습니다. 전국 공모전을 통해 우수한 작품을 선별해냈고, 올해 그 장중하고 화려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 창극 <다시 만난 토끼와 자라>는 우진문화재단과 공동으로 기획한 작품인데, 지역 상황에서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시도입니다. 창작판소리사습대회 역시 공을 많이 들인 기획입니다. 창작 판소리에 대한 분위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아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10여년만 꾸준히 애착을 갖고 진행한다면 전국 대사습대회와 대등하게 운영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다양한 작품이 나타나고, 수상자의 기량 역시 대사습 참가자들과 다르지 않게 될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다양한 기획프로그램들이 눈에 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소리축제가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계여야 합니다. 향후 5년 후에는 모든 초청작이 사전에 소리축제의 테마와 요구에 맞게 준비되고 기획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행사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 미리 기획, 투자, 위촉해서 해외 유수의 축제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 축제 밑그림이나 프로그램을 총괄적으로 조정하는 총감독으로서 행사 프로그램 가운데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행사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모든 프로그램에 정성을 들였습니다만, 굳이 꼽자면 ‘소리길 실크로드’와 ‘소리스펙터클’, 그리고 ‘판소리의 모든 것’입니다. 특히 ‘판소리의 모든 것’은 나름대로 특화된 프로그램이라고 자부합니다. 전국적으로 판소리 공연이 차고도 넘쳐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리축제만의 특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판소리 명창명가’ 프로그램입니다. 판소리에서 계보의 전승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판소리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 점에 주목해서 계보와 유파별 ‘일가’를 초청해 스승과 제자가 창을 이어감으로써 계보의 전승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판소리 생성의 본질을 되새기게 합니다. 이것은 소리축제가 개발한 새로운 공연 방식입니다. 주목해 볼 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올 해 세 번째 걸음을 옮겨 놓게 되는데요.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정비되고 성과를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앞서 언급했지만, 단순히 외부 공연단체를 모아놓은 행사와는 차별화 된, 소리축제의 기획공연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소리축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지난해부터 축제의 컨셉을 단순 뷔페식이나 백화점식 나열이 아닌, 중심이 있고 개성 있는 특성화 된 축제로 만들기 위해 ‘소리’의 중심을 목소리에 놓고, 그 양식의 중심을 판소리에 놓았습니다. 통상적 음악축제와는 차별화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음악의 본원인 ‘소리’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리축제는 전주와 전주의 전통적인 문화자산인 판소리가 정체성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판소리의 미학적 특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인이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또 판소리와 유사하거나 대조를 이룰 수 있는 소리가 전주로 모여 ‘소리’란 무엇인가의 질문이 전주에서 들끓어야 합니다. 차별화되고 정체성이 확고한 축제, 이제 그 면모를 확실히 다져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올해 행사는 시민 참여와 체험형 축제들이 다양하게 배치된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특히 소리파크의 경우 시민들을 위한 ‘축제성’을 보강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은데요.
△ 시민참여와 체험형 축제는 늘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소리파크의 경우 재정이 충분치 않아 만족할 만한 행사 내용이 나오게 될지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소리파크 프로그램에서 전라북도 음식명품관이 있는데, 지난해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는 참여 음식점이 무상으로 들어왔습니다만, 올해는 적정한 수준에서 시설 설비를 분담할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음식점에서 분담한 시설 설비와 협찬을 통한 재정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데, 행사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소리축제가 자체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 소리축제가 명실공히 민간주도형의 축제로 독자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행사를 통한 자체 수입이 어느 정도 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전라북도의 재정지원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축제의 자율성과 민간 운영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독자 생존이 서서히 고민되어야 할 문제일 것 같은데요.
△ 그렇습니다. 협찬사를 찾는데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경기불황 등 생각처럼 여건이 여의치 않습니다. 때문에 입장 수입을 좀 더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20~30억원의 행사비용을 투자하면서 입장 수입은 1억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소리축제 유료관객들이 행사장마다 객석을 가득 채운다 해도 전체 투자비용의 10%를 채우지 못합니다. 이는 소리축제가 극장 예술제가 아니라, 야외공연과 관객들의 참여, 어린이 축제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축제이기 때문입니다. 소리축제가 유료 극장공연예술제냐, 시민들을 위한 무료 축제냐를 놓고 논란이 생긴다면 제 입장에서는 절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소리축제가 장기적으로 독자 생존할 수 있고, 의미를 가지려면 예술제와 함께 지역의 관광자원과 휴양지로서의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예술제만 가지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에서는 전북의 관광자원과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편입니다. 전북이 총체적인 계획과 전망을 갖고 다 함께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관광과 휴양, 유적지 코스 개발 등을 꿰어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소리축제의 성공은 어렵다고 봅니다.
▲ 축제를 만드는 데에는 문화자원과 인력, 재정지원과 행정 지원 등 총체적 축제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풀어가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은 소리축제 실무자들의 신분보장입니다. 한 해 행사를 마치고 차기년도 행사를 준비하는데 저를 비롯한 인력들이 지역의 여러 정치적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늘 불안정한 상황을 거칠 수밖에 없어 축제의 지속성이나 청사진을 갖기 어렵습니다. 확실한 신분보장 없이는 실무자들이 자신이 가진 역량을 충분히 투여할 수 없게 됩니다. 확실한 자기전망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시급하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소리축제가 어떤 공간과 결합해 나갈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이는 소리축제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냐, 전주 고도의 이미지가 강한 한옥마을 중심이냐 하는 논란이 있는데, 이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앞으로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할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북이 가진 유적과 풍광을 살려 소리축제를 진행하는 쪽에 방점을 두고 싶습니다. 전주 고도에 지역의 유적과 소리문화의 모태가 숨쉬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소리문화의전당이 중심이 된다면, 고급 극장예술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북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