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9 | [서평]
人間끼리 혹은 畜生끼리
『유령의 자서전』(류영국, 2003, 실천문학사)
글 오하근 원광대 국어교육과 교수
오하근/원광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있다. 『정본 김소월(2004-02-19 15:51:29)
류영국의 『유령의 자서전』이 발간되자 언론계의 주목을 받아 여러 신문에 이에 대한 서평과 인터뷰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 사회적인 반향은 센셔날리즘에 근원하는 게 보통이다. 이 소설에 관한 관심도 그런 이유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제재의 특이함이 그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든 세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도 징그러운 존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문둥이를 꼽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필자 역시 오직 하나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꿈이 문둥이에게 쫓겼던 꿈이다. 이러한 문둥이의 세계를 이 소설이 다뤘다는 데 일단 눈길을 끈 것이다.
작가는 그간 이 땅의 가장 밑바닥에서 삶을 영위한 천민의 세계에 몰두했었다. 그의 출세작 『만월까지』에서는 종 출신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백정, 무당, 중 등의 천민들과 세도를 부리는 양반과의 계급적인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계급이고 출생이고도 불문하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문둥이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제 거의 사라진 이들의 슬픈 삶을 찾아서 작가는 쉴 새 없는 취재여행을 되풀이했다. 필자도 그를 따라 이런 취재에 더러 동행한 일이 있다. 지리산 산골짝의 옛 백정 마을 터랑, 소록도랑, 그리고 이 소설의 실제 모델인 노인이 살고 있는 익산시 왕궁면이랑을 따라갔었다. 온통 닭과 돼지 똥 냄새로 뒤덮인 마을, 꺼져가는 생명을 추스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겨우 대화하는 얼굴이 찌그러지고 다리도 없는 노인,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알맞은 퀴퀴한 냄새에 견딜 수 없어서 필자는 밖으로 나와 버렸지만 그는 오랫동안 그런 선문답 같은 대화를 하다가 늦게야 나왔다. 그의 몸에도 그 냄새가 배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책상도 없이 소반을 놓고 글을 쓰신다고 나에게 헌 책상이라도 보내드리라고 해서 이를 사들고 또 한번 방문한 일이 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분은 세상을 뜨셨다. 작가는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이들과 접촉하면서 이들의 삶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작품으로 엮여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리얼하게 리포트했다 해서 그것만으로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토속적인 언어 구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평론가 김병익은 『실천문학』이 주목하는 작가(『실천문학』 2002 가을)라는 장문의 평론에서 그의 토속적인 문체는, 독특한 문체의 효과로 문학적 성과를 이룬 이문구나 김주영보다도 뛰어나다고 극찬하고 있다. 이런 문체의 힘이 나이 든 전라도 출신으로 배타성이 강한 부산에서 발행되는 『국제신문』의 1억원 현상 장편소설 모집에 그를 당선시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도 이런 문체는 여전히 빛난다. 이는 전라도 토박이말이다. 사전에도 없는 이런 비유, 속담, 욕설, 그리고 어휘를 그의 소설에서 찾아 연구한다면 훌륭한 논문집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의 대가인가? 나와 남은 교감하는가? 인간은 얼마나 악한 존재인가? 복수란 부도덕한 것인가?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인가, 육체적인 존재인가, 혹은 둘 다라면 어느 것이 우위인가? 인간은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얼마나 변신하는가? 인간은 그렇게 변신해야 사는 존재인가? 나는 집안과 자식의 명예를 위하여 철저히 희생해도 되는 것인가? 인간의 한은 죽음으로 풀리는가? 육체가 정상이면 인간이고 육체가 비정상이면 축생인가? 정신이 불건전하면 축생이고 정신이 올바르면 인간인가? 우리는 인간끼리 사는가, 아니면 축생끼리 사는가?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축생인가? 소록도 나환자 수용소의 역사는 어떠한가? 그러한 비인간적인 처우와 살상에 대하여 지금이라도 원혼을 달래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우리끼리의 갈등과 화해에 대하여 묻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자서전의 주인공 자신의 입을 통해서 문둥이(그들은 이 어휘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한과 죽음의 역사를 가졌으면 그렇겠는가. 우리는 이 용어로 이 병이 유전과 전염의 병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한센씨가 이병이 유전하지 않고 전염도 거의 되지 않음을 발견한 뒤로 한센씨병이라 한다.)가 두더지, 뱀, 옴두꺼비, 짐승 등과 동일시되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인식하고 그들을 그렇게 대했다. 그런 삶을 살았던 주인공은 죽음에 임박하여 사람과 축생과의 차이 때문에 영영 헤어졌던 자식이 나타나 자신의 주검을 선산에 묻어 주기를 바란다. 살아서는 유령으로 죽어 있다가 죽어서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아이러니, 이는 우리에게 남겨진 우리끼리의 화해라는 과제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