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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 | [서평]
봄을 생각하며 긴 겨울을 견디다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공선옥, 월간 말, 2003)
박준행/1969년 생. 전주 한일고에서 일반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여성 문제에 각별한 관심(2004-02-19 15:50:29)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세상은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또는 자동차를 타고 가야 도달하는 세상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 엄연히 존재하고, 또 우리 속에도 있는, 그러나 어느덧 무심해진 그런 세상의 이야기다. 작가는 월간 ‘말’ 지에서 ‘여행 제의’ 를 받는다.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하고 그 감상문을 잡지에 실어 달라는 제의를 받고 ‘그냥 편하게 길을 나서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시작하게 된 여행이 ‘마흔에 나선 길’이 된다. ‘길을 나서는’ 일은 일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 뜻밖에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부담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일으키는, 그래서 그 부담을 감당할 힘과 패기가 있는 ‘젊음’에게 더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작가는 ‘마흔’이 되어 이 길을 나섰다. 그 길은 당연히 젊은이의 길과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작가의 나직한 음성이 들리는 듯한 글 속에서 독자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예리한 촉수 같은 게 느껴진다. 그 촉수야말로 젊음과는 다른 종류의 현명함에서 생기는 것이며, 이 책에 독특한 힘과 개성을 부여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제 자신은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이야, 좀 더 나아지려고, 또는 추락하지 않으려고 겪는 나름의 고초지만, 그러나 천 원짜리 한 장으로 하루를 견디고 버스비를 아끼려고 짐을 잔뜩 짊어진 채 한낮의 국도변을 걸어가는 인생은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자기 집 앞의 버려 둔 휴지더미를 주섬주섬 뒤지는 넝마장수 할아버지를 언뜻 보았을 때, 사람도 거의 없는 광장 주변을 여름의 땡볕 속에 지나가는 아이스크림 장수 할머니를 보았을 때 마음 한 구석이 아려 왔었지만 다시금 바쁘게 생활하면서 잊어 버렸던 인상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렇게 잊혀졌지만 여전히 그런 모양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농촌에서, 도시의 변방에서, 도심 속 빈민가에서, 그 사람들의 주름진 얼굴과 쭈그러든 몸집을 확인할 수 있다. 공선옥은 그저 스쳐지나 갈 수도 있었을 이러한 인상들을 찾아 나선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왜 굳이 이토록 심난하고 신산스런 삶들만 찾는 거냐고. 그러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시골에서 자라서, 친구들은 대부분 중학교만 마치고 공장에 취업하고, 공부 잘하던 남학생은 ‘공고’에 가는 것을 자랑했던 자라온 환경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공고를 졸업한 남학생들은 ‘노동자’가 되어 해고의 불안과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리며 근근히 살아간다. 그녀 자신, 아이를 셋이나 키우면서 원고료로만 살아가기 때문에 늘 생계 문제로 머리가 아프고 돈만 생기면 우선 쌀과 연료를 사서 쟁일 정도로 ‘가난뱅이 근성’이 몸 깊숙이 배어 있다. 그녀에게 삶은 ‘전쟁터’랑 비슷하고 그 어처구니없는 시달림 때문에 화가 나기 마련인 ‘고초의 장’ 이다. 자신의 경험이 그녀를 이끌었을까. 점심은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고 천 원으로 하루를 버티는 서울 낙원동의 할아버지, 다른 담배는 비싸서 못 태우고 이 백원짜리 솔담배만 태우는 순창의 할아버지. 어깨 가득 무거운 봇짐 지고 싸구려 약 팔러 다니는 삼척의 할머니. 작가는 부자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사람 냄새가 나는 건, 가난할수록 타인들의 도움이 더 필요하고, 그래서 자신을 더 열고 다가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순박한 인심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작가의 여정이 늘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그는 때론 익숙한 그 가난 때문에 지겨워지고 짜증스럽다. 경상도 봉화의 화전 마을에 가서, 주민들에게 ‘어렵게 사셨겠네요.’ 라고 인사하니까 그들이 한결같이 ‘그럼요. 이팝에 시멘트집 사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지요. 지금이 정말 좋은 때지요.’라고 화답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의 낙천적인 모습에 심사가 꼬인다. 작가가 보기에 그 형편없는 삶을 그래서 슬퍼하고 분노해야 할 그 삶을 그들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의 사회의식은 성장을 거듭한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부대에서 만난 군인 청년에게 ‘너무 멋지다’ 라고 말해 놓고는 그 청년의 군 생활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미안해한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군대’는 커다란 형벌이다. 바로 고위층 자제들의 ‘군복무 비리’가 그것을 반증하지 않는가. 세력 있고 돈 있는 사람은 다 빠져나가고 노동자와 농민의 자식들이 그 자리를 메꾼다. 구로동과 가리봉동에 가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접하면서 안타까워하고, 효순과 미선이라는 두 여중생의 목숨을 앗아간 미군 장갑차 사건을 접하며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분노한다. 작가의 아픔과 분노를 접하면서, 다른 세상에 대한 강렬한 꿈을 꾸게 된다. 그런 세상이 하늘나라 같은 신비한 곳일 필요는 없다. 그 나라는 부자라고 과시하는 걸 창피하게 생각한다. 여왕의 파티에 초청 받은 명사들이 시내 지하철을 이용해서 소박한 모양의 궁전으로 간다. 환경을 생각해서 자전거를 타는 생활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한다. 국민들은 절약을 생활화하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의 복지를 위해선 분담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사회민주주의’의 나라, 네덜란드의 이야기다. 작가가 자신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개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시골이나 도심 변두리의 노인들이다. 산업화의 와중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농촌과 그 곳의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아닌가. 사회 복지망의 미비와 평균수명의 연장,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 전쟁의 와중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들은 여러 가지로 방치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처럼 되려면 노인들의 가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작가의 글에서 노인들의 삶이 언뜻 감상적으로 비춰지는 느낌을 경계해야 한다. 분명 노인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볼 때 가난하고 소외되어 있지만, 그 모습이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품위가 있다. 마음이 쓸쓸해서 떠난 한 여정에서 작가는 감자 부대를 짊어지고 국도변을 걸어가는 어떤 할머니를 만난다. 이름을 묻는 작가에게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이름은 알아 뭐할 거냐고 되묻는다. 담담한 그 모습은 어설픈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이미 초월한 자의 달관한 경지이다. 작가가 그리는 이 세상이 우리 주변에 존재는 하지만 어느 덧 잊혀져 가고 있다는 생각은 여수 시골집의 어떤 빛 바랜 흑백사진에서 작가가 발견했다는 문구를 접하며 달라진다. ‘오는 봄…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보리라... .’ 누군들 봄날을 그리워하지 않으랴. 누군들 자신의 삶이 쓸쓸한 긴 겨울 같다고 느껴 보지 못했겠는가. 잊혀진 듯한 세상이 우리 속으로 들어와, 원래부터 있던 느낌을 일깨운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이면 책 표지에 실린 사진 속 켜켜이 주름잡힌 손이 익숙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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