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박형진 지음, 열림원 펴냄)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한 변산, 그 곳 사람들의 사연 많은 이야기가 책으로 묶였다. 오징어처럼 질긴 사람이라는 오징어 양반, 외출할 때마다 새하얗게 화장하는 분칠네, 오줌을 마셨다는 박공진. 이 책은 변산 사람들의 힘든 삶, 그리고 넉넉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절하고 익살스럽게 들려준다. 또 찹쌀고추장보다 맛있는 보리고추장, 할머니 등긁개로 만들어 쓰던 옥수수 강치 등 예전의 농사와 먹거리 이야기를 통해 자연을 알뜰하게 활용하던 삶의 모습도 그린다. 변산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쇠락해 가는 농촌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이 산문집은 사람다운 삶에 대해, 사람과 자연의 조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도서출판 열림원이 ‘찰지고 맛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주제로 향토색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향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사진과 함께 토종언어로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시리즈의 첫 번째 편. 지역에서 나고 자란 문인들의 글맛과 정서가 고향에 대한 따뜻한 정감을 전한다. 『나는 순간을 춤추듯 살아왔다』 (홍신자 지음, 열림원 펴냄) 숙명여대 영문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20대 후반 늦은 나이로 무용을 시작해 자신만의 독특한 무용 세계를 이룩한 홍신자. 그는 1981년 뉴욕에서 Laughing Stone 무용단을 창단한 후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삶의 절정을 경험한다. 3년동안 라즈니쉬의 제자로 수행에 들어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93년 귀국해 경기도 죽산에 정착, ‘웃는 돌’ 무용단을 이끌며 죽산국제예술제를 개회하고 있다. 30년 간 춤을 춘 저자는 이제 본업이자 가장 치열한 활동의 장이었던 춤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마음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잉태해냈는지, 그 작품에서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희열이 가득하다. 무용가를 꿈꾸는 모든 이들, 혹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치열한 한 예술가의 활동을 통해 삶의 열정과 꿈을 되새겨 볼 기회가 될법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 1983년 한해를 제외하고 만년 골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는 야구팬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만년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로 경쟁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유쾌한 풍자를 담아냈다. 일류대를 졸업했지만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주인공, 분식집 주인, 3명의 애인과 7명의 섹스파트너를 가진 '그녀' 등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80년대를 주무대로 기발한 상상력과 현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결코 가볍지 않는 주제의식이 어우러져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지켜나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젊은 세대의 경쾌하면서도 치열한 삶의 자세를 스포츠 열기로 상징화하고, 프랜차이즈 자본주의의 각박한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펴냄) 유쾌한 조선 풍속 기행. 유흥계를 호령한 무뢰배들, 투전 노름에 골몰한 도박꾼,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들, 반 양반의 기치를 높이 든 비밀 폭력조직,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벼락출세한 떠돌이 약장수, 설렁탕 한 그릇에 조직을 배신한 도적 등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조선 사람들의 역사, 그들의 생기발랄한 삶의 현상을 담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각인된 조선의 이미지에 저자는 쓴웃음을 짓는다. 도덕(성리학) 사회의 뒤안길엔 주사와 투전, 조폭이 난무했음에도, 비장하고 엄숙함으로 옛일을 미화할 일만은 아니라는 저자의 시각이 흥미롭다. 전문·사기 도박꾼과 가문을 결딴내는 노름빚은 당대의 사회문제가 된다. 도박은 경제성장(화폐 유통)으로 유행의 가속도가 붙었으며, 불확실성에 운명을 맡기는 사회적 혼란기의 사생아란 점은 시공을 초월한다고 저자는 해설한다. 조선의 부정부패와 퇴락이 우리 시대에 하나의 메시지로 잔잔하게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