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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 | [문화가 정보]
여기 우리, 왜 모여들었는가 그룹전 성수기, 속내 들여다보기
문화저널(2004-02-19 15:45:21)
문화현장에는 어느 때부터인가 공공연히 성수기, 비수기라는 시기적인 구분이 생겨났다. 계절에 따라서 작가들이 선호하는 시기에 전시가 몰려 앞다투어야 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전시공간이 썰렁하게 비어있기도 한다. 전시공간들이 늘 북적대며 많은 것을 보여줘야 되는건 아니지만 작가들마다의 시각차이로 이러한 현상이 보여진다. 8월의 전시공간들은 공간별로 소위 성수기와 비수기가 교차하는 시기이다. 몇몇 공간들은 이 시기가 비수기임을 자처하고 아예 문을 닫아 가을 전시를 준비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매주 그 열기가 뜨겁게 전시들로 북적대며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지역이라는 비슷한 구역안에서 서로 다른 양분된 상황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8월의 미술현장은 유난히 그룹들의 정기회원전이 많다. 그래서 많은 숫자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하다보니 큰 공간을 원하고 있어 가장 일반적인 전북예술회관에 그룹전들이 몰려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설화랑이나 작은 공간들은 비수기가 제대로 적용되어 개인전이나 기획전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시기에도 물론 그룹들의 정기전들이 있을테지만 여러 전시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같이 어우러져 있어 미술현장의 다양화로만 보여질 뿐이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많은 그룹전들이 비슷한 시기에 전시하다보니 10여년을 훌쩍 넘긴 중견작가들의 그룹과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서로 대조되는 전시장 상황이 벌어진다. ‘신미회’나 ‘호미회’ ‘백색회’ 같은 경우는 전북의 미술 역사를 증언할 수 있을 만큼 10여회를 꾸준히 보여주고 있고, ‘3·2전’ ‘자기색깔전’은 이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그룹이다. 젊은 작가 그룹들 중에서도 ‘SALE전’은 10회를 거치면서 그 나름의 명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여러 해를 거듭한 전시의 횟수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방식의 차이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룹전 전시장들을 둘러보면 한쪽은 고급스럽게 번쩍이는 액자에 담겨 있는 그림들이 점잖게 일렬로 걸려있고, 다른 쪽에서는 무엇인가를 벽, 천장 할 것 없이 줄줄이 걸고, 붙이고, 어느 것 하나도 같은 형식이 없는 작품들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것은 꼭 그룹전들의 횟수와는 관계가 있는 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단지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간의 작업 성향과 전시에 대한 의식의 문제로 보인다. 어느 쪽을 탓하거나 옳고 그름을 가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 더 깊이 들어다 보면 중견작가들 그룹과 젊은 작가들의 그룹으로 그 보여지는 형식이 양분된다. 그렇다고 꼭 실험적이고 뭔가를 덕지덕지 붙이는 설치형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작가들이 무엇을 위해 그룹에 속하고 해마다 무슨 생각으로 전시에 참여하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도 있지만)어떤 작가는 1년에 딱 한 번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만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볼 때 과연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들이 자꾸 벌어지다 보면 그룹 전체가 가지는 개념이 흔들릴 것이다. 그룹들도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 회원들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 희석되어진 모임의 개념과 목적을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막연하게 참여하는 명분상의 많은 회원들보다는 작업의지가 확고한 몇 사람의 작가만으로도 의지 표명은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 공간에서 비수기-실제로 문화현장에 비수기라는 단어는 작가의 의식문제에 있다-라는 시기에 그룹의 정기회원전이 모이는 것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많은 회원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일회적인 전시참여로 단순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누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룹전들이 회원들의 단순한 친목만을 위한 전시를 갖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낭비인 셈이다. 이에 반해 작은 움직임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전시의 목적과 시기에 대해 뚜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몇 개의 그룹도 눈에 띈다. 젊은 작가들이 모여 주제를 설정하고, 한 목소리로 전시 목적을 보여주기 위해 토론하고 고민하여 만들어 가는 것도 있다. 또한 대중과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관람자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그룹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해를 거듭할수록 본래의 취지나 의미는 자연스레 점점 퇴색되어 갈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그대로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과감하게 변화를 모색하는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어느 누구에게 미룰 것도 없이 작가들 스스로가 자각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 구혜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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