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9 | [문화칼럼]
촌놈, 영국 나들이 그 이후
글 김규남 전북언어문화연구소장
김규남/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과, 같은 대학원에서 사회방언(2004-02-19 15:39:41)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채 최소한의 원칙마저도 무시하는 자들이 버젓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고, 게다가 ‘아니꼬우면 돈 벌고 출세 해 보라’는 식의 천민자본주의 심보를 적나라하게 보이며 온갖 위세를 부리려드는 인사들 때문에 신물 넘기던 게 근자의 일이다. 게다가 이른바 네티즌으로 불리는 컴퓨터 세대들의 전래 없는 지지를 받으며, 우리 사회를 좀더 투명하고 역동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출범했던 현 정부마저 안타깝게도 몇 차례의 결정적인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히려 많은 국민들에게 헤어나기 힘든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능력 좋은 사람은 앞다투어 외국으로 떠나고, 남은 국민들은 공동의 지향점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지고 있으며, 생활고에 시달려 회생 가능성마저 잃은 몇몇 가족들은 죽어서도 원귀가 될 비통함으로 세상을 저버리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돌이켜 보면 지금은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반에 걸쳐 훨씬 나아진 사회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지금의 혼란은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기 위해 거쳐야 할,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의 일부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여유 있는 시각으로 이 시기를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있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비록 듣고 본 게 적은 촌놈의 시각에 지나지 않지만, 민주주의의 본산이며 초기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극도의 사회 불균형과 혼란을 극복하여 현재에 이른 영국 국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하다.
영국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영국 생활에 관해 담소를 나눌 때 가장 흔하게 선택되는 소제는 그들의 여유 있는 표정과 생활 태도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영국 택시 운전사의 표정이 한국의 대학 교수보다 품위 있고 여유 있어 보인다고 할 정도이다. 또한 영국인들은 일의 경중에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성실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하찮게 보이는 일일망정 그 소임에 충실할 줄 알고 우아하고 여유 있는 표정과 사회가 만들어지게 된 동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여행 도중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여름옷만 준비해 간 우리 가족은 한적한 시골 버스 승강장에서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할머니 한 분이 승용차를 우리 앞에 댔고 그 덕에 고생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분은 우리를 시내 버스 승강장에 데려다 준 것은 물론, 주차한 후 다시 와서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 시간표는 물론 버스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준 다음, 버스 기사에게 우리의 목적지까지 말해주며 우리를 부탁하는 일까지 잊지 않았다. 사실 지나친 호의가 반갑지만은 않은 일이어서 고맙기도 하지만 시간을 너무 빼앗아 미안하다고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My Pleasure’라고 화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My Pleasure?’ 좀 장황하게 말하자면, 상대방이 고마워하든 말든 그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만족하며 기쁨을 느낀다는 뜻이겠다. 그 후로 나는 이런 식의 응대법에 특별히 귀를 기울였고, 놀랍게도, 남에게 호의를 베푼 것에서부터 자신의 일에 성실한 상황을 칭찬하는 데 이르기까지 이런 방식의 응대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일에 성실하거나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위에 스스로 만족함으로써 즐거운 마음을 갖는 정도의 자율성, 이 자율성이야말로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거나 보상을 바라는 데서 오는 불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은 물론, 일상적 삶의 모든 행위들에 충실한 자세를 갖게 함으로써, 개인의 삶은 물론 나아가 사회 전체를 안정되고 건강하게 만드는 매우 소중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영국인들이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즐기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스스로 품위를 높이는 일로 여기는 그 일반적인 태도의 바탕에 바로 이 자율성이 두텁게 깔려있다.
이 자율성이 영국 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게 된 까닭은 필경, 귀족을 비롯한 상류 계층이 그 본을 보여온 덕분이다. 높은 신분에 따르는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사회의 기본 덕목이다. 싸움이 잦던 시절 기사들이 목숨을 바쳐 주민을 보호했던 것처럼 혹은 귀족들이 전쟁 비용을 전담한 것처럼, 귀족은 사회의 공익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거나 희생할 자세를 갖추어야 했으며, 또 그 만큼의 존경을 받는 것이 당연했던 전통이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셈이다. 포클랜드 전쟁 때 영국 황실의 한 왕자가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것을 두고, 안전한 보직으로 참전한 데 대해 비난받았다는 것은 아마 그 전형 중의 하나일 듯하다. 이러한 기부 문화는 중류층에까지도 이미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파급되어 있는 까닭에, 예를 들면, 기부자의 이름과 생몰 연대 그리고 간단한 소망을 적어놓은 벤치들이 어느 길거리나 공원에도 즐비하게 놓여있는 정도이다.
게다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해 놓은 사회적 안전 장치들 또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래서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살기에 영국은 정말 좋은 나라이다. 물론 공교육비, 의료비가 들지 않는다거나 연금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서 노후가 보장되는 데는 마땅히 세금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일정액 이상의 급료를 받는 사람은 그 중 약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하며 보통의 경우도 상당한 정도의 세금을 내는 게 보통이다. 물론, 세금의 일부를 봉급으로 받는 사람들이 납세자들을 대하는 자세는 일반인들이 서로 나누는 친절과 배려를 넘어서는 일이며 따라서 영국에서 가장 친절한 직업 세 가지를 들라면 흔히, 경찰, 교사, 의사를 꼽는다. 이 나라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도 NHS(National Health System)에 소속되어 있는 공무원의 일종이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서로 상이한 영국과 한국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국가가 그 기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이들은 우선 세금이라도 제대로 내야 할 것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호구지책을 삼는 모든 관계자들은 납세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정직한 자세로 사회에 기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며, 국가는 국민들이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안착되어야 하는 등등의 그 뻔한 상식이 상식으로 지켜져야 할 일이다. 그래야만 그러한 토대 위에서 온 백성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스스로 만족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아주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었다. 처음 그 연못을 지나며 나는 원앙새 한 쌍을 발견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어느 물가를 가든 우리의 동물원에서나 보았음직한 온갖 희귀한 새들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보통의 일이었다. 게다가 런던의 주택가에서마저도 여우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뒷마당에 여우 먹을거리 던져 놓는 게 주민들의 소일거리 중 하나다.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을 이런 사회에서 살게 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재미로 사는 사회,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하는 데서 스스로 생활의 보람을 느끼며 해괴한 편법이나 요령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 조금 심심한 것 같아도 밤이면 깜깜하고 조용해서 잠들기 편한 사회,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행복하도록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 울울창창한 숲과 깨끗한 물에 온갖 짐승과 새들이 함께 사는 사회, 바로 그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도 밝은 표정으로 평화스럽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애국가가 불리고 있는 도중에 이 땅을 등지고 떠났던 그 새들도 다시 돌아와 안심하고 둥지를 틀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