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9 | [문화시평]
전주가 먼저인가, 지도가 먼저인가
전주역사박물관 ‘지도로 본 전주의 발자취’
글 이경한 전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2004-02-19 15:38:21)
‘지도로 본 전주의 발자취’라는 흔치 않은 전시회의 소식을 접하고서 전주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지도라는 단어 하나로도 나의 직업 의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고, 더욱이 전주라는 나의 삶터를 담아내는 지도를 볼 수 있음은 시간을 내기에 충분하였다. ‘지도’와 ‘전주’의 만남은 전주역사박물관이 다루기에는 적절한 주제였다. 이 전시회는 ‘옛 지도의 아름다움과 전주의 옛 모습’, ‘일제 강점기의 전주’, ‘전주의 도시 계획과 공간의 변화’, 그리고 ‘지도와 생활-테마가 있는 지도’라는 소주제를 통해서 기획 의도를 담아내고 있었다. 이 전시회에는 약 110 편의 지도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주제가 갖는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전시회의 내용은 아쉬움이 많았다. 그 안타까운 마음을 몇 자 적어 보다 충실한 기획 전시회를 기대해보자 한다.
먼저 이 전시회의 기획 의도는 전주의 발자취를 지도라는 도구를 통해서 시민들에게 보여주는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회의 주는 전주의 발자취가 될 것이고, 종은 지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서 소개되고 있는 지도의 해설은 주종이 뒤바뀌어, 전주가 중심이 아니라 지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즉, 도움말을 준 사람이나 기획자가 이 전시회의 의도를 살리지 못함으로써, 전시회의 해설이 지도의 성격을 풀이해주는데 치우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전주의 지질도를 소개하는 글을 하나 소개하면, ‘지질도는 광산과 토목을 포함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기본도이다. 특히 석유나 석탄 및 금속자원과 같은 천연자원의 탐사와 개발에는 필수적인 도구가 된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유용 천연자원이 부존되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선택적으로 조사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지도의 특성을 이해하는데는 의미가 있지만, 이 지도를 읽는데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에게는 전주의 지질을 이해하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전주의 발자취라는 점에 주안점을 둔다면, 이 해설의 뒤에 전주의 지질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야 했다. 그러나 이런 점이 간과됨으로써, 이 전시회는 단순한 지도 전시회로 흐르고 말았다. 이 점은 전시되고 있는 또 다른 지도들인 ‘지형도’, ‘기상 일기도’, ‘유적 위치도’의 해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옛 지도의 아름다움과 전주의 옛 모습’이라는 소주제는 먼저, ‘옛 지도의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고지도를 다룬 어느 단행본에서 이미 사용한 표현으로서 참신성을 반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주제에 걸맞게 이 전시회에서는 대동여지도, 해좌전도, 동국지도 등의 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도를 전주를 대상으로 하는 이 전시회에서 왜 다루어야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전시회를 찾는 사람의 관심을 조선 후기의 지도에서 한반도 전체, 전라도, 전북, 그리고 전주 지역으로 유도하도록 할 때만이 이 지도들은 전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도들을 단순하게 병렬적으로만 처리하여 전시함으로써 기획 의도를 잘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고지도의 소개는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조선 후기의 전주 경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데 있다. 이렇게 본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조선 후기의 전주 경관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지도를 안내해주는 설명문은 부족함이 많이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전주의 19세기 후반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도록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지도의 설명문에는 ‘이 지도는 당시의 인구, 취락 등을 살펴볼 수 있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안내를 위해서는 전주성 안의 취락 수를 통해서 당시 전주 취락 수나 인구 규모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모든 전시회는 진품을 전시해줄 때 가장 아름답다. 그러나 구입의 어려움, 보안의 문제, 비용의 문제 등의 부득이 한 경우에는 모사품이나 모조품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진품 지도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희귀본 지도를, 특히 전주시와 관련된 진품 지도를 구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거의 대부분이 모사품이거나 필사본이거나 복사본이다.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단순한 지형도조차도 사진 촬영본을 전시하고 있다. 이는 이 전시회가 가지는 의미를 많이 퇴색시키거나, 보다 심하게 말하면 지나친 무성의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 전시회의 대상 지역은 전주이다. 그러면 지도를 선택할 경우, 전주시 전역에 우선적으로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풍수 지도에서는 전주시의 전역의 형국을 보여줄 지도를 보여준 후 작은 지역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기상도 역시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가 아니라 가능하면 전북 지역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일제시대, 70년대, 그리고 현재의 지형도에서 전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전주의 경계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고, 전주시의 경계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가를 동일한 축척의 지도상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지도에서 부득이 하게 전주시의 부분 지역을 보여줄 때는 색인 지도를 설명문에 넣어서 전주시의 부분과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도시 계획도는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도 담을 수 있다. 지도를 통해서 전주시의 미래 도시 계획, 아니 21세기를 지향하는 도시로서의 전주 청사진이 무엇인가도 함께 보여주면 더욱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전시회가 될 수 있다. 이 전시회의 기획 의도 중의 하나인 '지도를 통하여… 전주라는 도시의… 미래에 대한 합리적 예측을 논하자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미래에 관한 지도를 보여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지도의 기법은 날로 변화되고 발전하고 있다. 아날로그인 항공 사진에서부터 디지털 인공 위성 사진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지리 정보 체계를 이용한 3차원 지도도 보편화되어 있다. 기왕 다양한 지도 기법을 소개하기로 했으면, 이런 첨단 지도까지 이용해서 전주시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회는 지도라는 수단을 통해서 조선 후기 도시로서의 전주, 근대 도시로서의 전주, 그리고 현대 도시로서의 전주를 나름대로 담아내고 있다. 보다 진지하게 전주의 모습 변화를 담아내고, 이를 시민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난 150년여의 전주 모습을 일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전주의 역사박물관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보다 진지한 노력을 통해서 진정 전주 시민에게 전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