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9 | [문화시평]
비상하는 파랑새를 그리워하며
한벽예술단 <파랑새>
글 송영국 백제예술대 전통예술과 교수
송영국/백제예술대학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로 있다.(2004-02-19 15:34:27)
정자나무 그늘 아래로 스쳐가는 산들바람과 암컷을 목놓아 부르는 매미소리를 벗삼아 시원한 냉수 한 그릇 마시고 피곤한 육신을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아주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새 울고 시원한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어 두었던 독서를 하면서 무더운 여름기운을 쫓아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휴가기간이라 그런지 유명 계곡이나 유원지에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일명 명당자리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늦게 출발한 사람들은 뜨거운 햇빛을 겨우 가리고 더위에 지쳐있는 모습들이다. 아마 이런 모습들 때문에 휴가철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다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족들과 문화공간을 찾아 한여름 밤을 시원하게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마침 전주전통문화센터 개관 1주년 기념 공연이 늦은 저녁 한벽극장에서 시작된다니 가족들과 함께 전통공연을 관람하면서 무더위를 쫓아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관 1주년이라고 하여 오후부터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고, 특히 한벽예술단이 공연하는 <파랑새>는 앙코르공연이라고 하는데, 樂·歌·舞를 결합한 공연이라고 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전통문화센터에서 창작한 것이라 궁금하기도 하여 발길을 옮겼다.
공연의 주제가 ‘파랑새’.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였지만, 동학을 주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파랑새라는 함축된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 여겼다. 그렇다면 이번 공연의 전체적인 흐름은 동학을 주제로 한 것이고, 동학을 재해석하여 작품으로 창작한 것이라 생각했다. 극장입구에서 안내책자를 받아보는 순간 이러한 추측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랑새> 공연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악장은 ‘파랑새 하늘을 날다’, 2악장 ‘저기 저 꿈’, 3악장 ‘넋풀이’, 4악장 ‘씨알 온 누리에’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타악기들이 출연하면서 무용과 소리, 그리고 서양의 기타, 국악기인 거문고가 등장하는 악가무형식의 공연이었다. 특히 1악장은 음량이 다른 타악기들이 출연하면서 반복된 리듬을 통해 시작과 공연의 전개를 알리면서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타악기 놀음으로 출발하였고, 2악장은 무용이 등장하면서 창작 칼춤으로 공간적 표현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거문고와 기타의 반주로 선율적 표현이 가미되면서 객석을 통한 무용수들의 등장과 창작 칼춤으로 동학의 시대상을 그려내려고 한 것이 2악장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었다.
3악장은 삶과 죽음을 표현하여 새로움을 열기 위해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었고, 구음을 통한 맺음과 풀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4악장은 농악대에서 사용하는 열두 발 상모와 빠른 타악기 리듬으로 극적인 효과를 살리면서 막을 내렸다.
<파랑새>는 전통 타악기를 기본으로 하고 노래와 춤, 그리고 선율악기를 사용한 복합적인 구성으로 아주 신선한 공연형태이면서 종합적인 예술양식을 잘 조화한 여운이 남는 공연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우리 주변에서 우리들을 성가시게 하였던 무더위를 충분히 쫓아낼 수 있는 그런 창작 타악 공연이었다.
<파랑새>는 전통타악리듬과 전통 타악기, 그리고 전통적 타악기 소재로 개량한 개량 타악기 , 서양의 사이드 드럼(side drum), 정확한 음정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음량으로 구성된 악기들을 사용하면서 전통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또한 새로운 방식의 타악 공연은 우리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여 주었기 때문에 전통음악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조금만 생각을 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운 면도 있었다.
먼저 <파랑새> 공연의 전반적인 주제로 사용한 동학(動學)은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하여 창안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신흥종교이며, 서학(西學)에 대응할 만한 동토(東土) 한국의 종교라는 뜻으로 기본 사상은 전래의 풍수사상과 유교·불교·도교의 교리를 토대로 하여 발전하였다.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全琫準 1854-1895) 에 의하여 농민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후에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민중운동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1895년 전봉준이 사형을 당하면서 동학의 세력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동학농민운동의 주동자인 전봉준이 실패를 한탄하고 민중의 실망을 우의적으로 나타낸 노래가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의 파랑새 민요가 생겨난 것이다.
<파랑새> 공연에서 공연의 전체적인 주제를 동학으로 하고, 당시 대표적인 민요인 파랑새 민요를 타이틀로 선정하여 공연을 하였다면 역사적인 면이 충분히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것은 공연의 극적인 효과를 강조한다는 말은 아니다. 전통타악기들을 개량하여 한국적 음색을 만들어낸 것처럼 서양악기인 사이드 드럼보다는 우리의 전통적 악기 소재를 가지고 공연하였다면 더욱더 주제에 부합하였을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중국 북과 서양의 타악기들이 한국음악에 자주 출연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창작음악이나 국악관현악단에서 연주하는 음악에는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라고 하면서 지구촌의 문화를 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문화의 다변화 정책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폐쇄적 문화형태보다는 개방적 문화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지만, 전통적 소재를 가지고 한국음악을 창작하고자 할 때는 기존의 전통악기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적 불명의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잘못하면 전통적 소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상실하게 할 수도 있고 왜곡되게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번 한국의 삶을 소재로 한 타악기 연주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옹기 항아리와 놋쇠그릇, 요강, 떡시루, 물덤벙이 등 다양한 한국적 악기를 통해 한국의 장단을 만들어 가고자 하였다.
동학은 바로 한국의 전통적 사상을 바탕으로 성장하였고, 동학농민운동은 인본사상과 민중사상, 항일운동으로 전개된 민중운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적 장단과 한국적 음색을 만들어내는 타악기를 사용하였다면 우리들의 소리를 통해 만들어진 파랑새가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벽예술단의 <파랑새> 공연이 우리들에게 보여준 많은 것들도 인식하면서 또 다른 희망, 살아있는 한국음악을 만들기 위해 파랑새를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