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9 | [교사일기]
교사가 되어 선생님의 정년퇴임 앞에서
글 조봉권 금산중학교 교사
(2004-02-19 15:31:28)
8월 28일!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의 근정훈장을 비롯 많은 표창과 공로패를 받으시며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하시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평생 외길인생을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쉬운 일인 것 같기도 하지만, 서리를 밟을 때 조심하지 않으면 곧 빙판에 미끄러지고 마는 것처럼 한평생을 자기 살을 깎는 수신과 제가로 풍진세상을 고스란히 머리에 이어 사랑과 헌신과 애정의 제자사랑으로 살아오신 세월을 이제 나라 법이 그러해서 퇴임을 하시게 되니 한편으로는 무척 아쉽고 섭섭한 마음 가눌 길 없으며, 또 한편으로는 참 부럽기도 합니다.
자기를 버리면 돌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평소 철학을 가지고 항상 소탈하시고 남을 먼저 배려하셨기에, 물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고 그 낮은 곳에서는 스스로 높이를 더하고서야 다시 흐르며 장애를 만나면 피해서 흐르는 겸손과 인내, 희생과 순리에 순응하고 그러나, 불의가 있는 곳에서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장애를 비켜서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동료들과 수많은 제자들에게 몸소 실천하시며 청춘을 바치셨기에 동료와 후배들과 수많은 제자들과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수십년 동안의 그 많은 물살들을 참 슬기롭게도 해치시고 이제 선생님의 땀과 교육철학이 배어 있는 학교를 떠나시려니 감회가 새롭고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시리라 생각되며 또한,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영원한 참스승으로 남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운전할 때 백미러를 보는 것은 뒤로 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더 잘 가기 위함인 것처럼 앞으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되돌아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며, 옳고 좋은 것은 당장 따르기가 어렵고 당분간은 불편하더라도 그게 옳은 거라면, 그게 제자를 위한 길이라면 그렇게 가야만 된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은 아직 제 귓가를 맴돕니다.
그릇되고 부정한 일은 금방 수월해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끝내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마는 법이라시며 항상 정도를 강조하시고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은 곧 죄 짓는 교육일뿐이라시던 말씀은 제게 좋은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항상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동료들의 수업장학을 원하시며 끊임없이 알찬 수업을 위해 변화와 준비와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시던 그 모습은 많은 동료교사들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선수들이 짧은 시간의 경기를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통해 힘들고 어려운 훈련과 연습을 하듯, 농사꾼이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노력과 땀으로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듯 선생님들도 학생들 앞에 1시간을 서기 위해서는 최소한 5시간의 준비와 5시간의 연습은 기본으로 필요한 것이라면서 교사의 입장보다는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허무맹랑한 질문부터 정곡을 찌르는 질문까지 기맥힌 발문을 통해 답이 하나인 교육은 이미 산 교육이 아니라며 학생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현시키고 창의성을 길러주시기 위해 노력하시던 선생님의 교육철학이 미쳐 제 몸에 익히기도 전에 떠나시니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내가 먼저 성공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비록 조금 더디 갈지라도 힘들어하는 이의 손을 잡아주며 함께 갈 수 있는 배려와, 나의 생각과 판단에 맞지 않다 해도 그것을 옳지 않은 일이라 단정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설득 당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받은 것들을 기억하기보다는 늘 못다 준 것을 아쉬워하시고, 남은 곧 나이고 나는 곧 남이라며 나와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무익한 천 마디의 말보다는 들어서 마음이 안정되는 한마디로 겉모습은 참 중요하지만 겉모습만을 가지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며 수십년동안 사랑하는 제자들을 자신의 옹졸한 잣대로 평가되어진 것이 가장 부담스럽다고 하시는 선생님 앞에 절로 고개 숙여집니다.
하룻밤쯤 모깃불 내음을 맡으며 나란히 누워 별똥별 이야기로 별밤을 만끽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삶이 연습 없는 도박"이라고 하는데 선생님은 왜 "삶이 연습"이라고 하시는지를 듣고 싶습니다.
좋은 일엔 항상 뒤로 서시고 싫어하는 일들엔 앞서시는 그 모습에서, 오늘 해야 할 용서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겸손함을, 학생들과 자연과 사물에 대해 햇능금처럼 풋풋하게 창을 닫지 않는 열린 촉촉한 마음을 미쳐 못 다 배워 많이 아쉽습니다.
자주 시간 내시어 인생선배님으로써 삶의 가이더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이제 훨훨 털어 버리십시오.
특히나 선생님께서 명예로운 정년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사모님의 쵀탁동시의 내조의 큰공임을 알고 있습니다.
마이산 석탑에 쓰인 돌들보다도 더 많은 날들을 닭이 알을 품는 심정(달걀이 상할까봐 몸을 약간 들고 엉거주춤 앉아 참아내는 인내와 자기희생의 모성 특유의 보호본능)으로 사모님께서 동행하셨기에 선생님의 오늘이 더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잘 자라서 성장해준 자녀의 뒤에도 항상 사모님이 매일 분을 가꾸듯 쏟은 정성이 어디 선생님에게 비하겠어요?
이제, 사모님과 남은 인생의 여정을 좀 더 수월하고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만나고 헤어짐은 항다반사라지만, 제 인생에 선생님과 인연 맺어 살아오는 동안 많이 배우고 깨우쳤습니다.
향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히 향내가 나는 법이니 일부러 냄새를 피우려 애쓰지 말라시던 말씀을 거울삼아 저도 퇴임하는 날까지 열심히 노력하렵니다.
선생님!
비록 정년을 하신다 해도 인생은 60부터라고들 하시데요.
아직은 남은 여정이 깁니다.
어린 제자들 교육에, 학교경영에 여념이 없으셔서 미처 하시지 못했던 일들과 취미생활을 하시면서 사모님과 더불어 황혼의 왈츠를, 황혼의 블루스를 아름답게 추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며칠 출근하여 바쁘게 근무하면서야 아! 선생님이 참말로 퇴임하셨구나 하는 허전함과 함께 선생님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선생님과 함께 하였던 지난 세월 속에 혹여 선생님께 누되고 섭함을 드렸다면 철없고 배움 적은 동생의 투정과 어리광쯤으로 치부하시고 널리 헤아려 주시기를 염치 좋게 간절히 바라며 선생님의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거듭 축하드립니다.
부디 어디 계시더라도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충심으로 빕니다.
2003년 8월 말. 금산중학교 교사 조봉권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