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8 | [수요포럼]
<제7회 마당 수요포럼> 예술인 조직 새 틀 필요한가
일방적 정책 견제할 대안세력 모색해 갈 때
문화저널(2004-02-19 14:53:36)
마당 수요포럼 일곱 번째 순서는 ‘예술인 조직 새 틀 필요한가’를 주제로 7월 9일 전주 정보영상진흥원에서 마련됐다.
‘문화의 시대’를 견인하기 위해 중앙 정부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다양한 문화정책들을 구상하고 전략을 짜내면서 전국은 물론, 지역에서도 문화 수요는 급격하게 팽창했다. 지역의 문화 지형도나 문화예술인들이 처한 환경도 이러한 변화에 급물살을 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마당 수요포럼은 급변하는 문화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갈 중심 주체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전북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듣고 중지를 모아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전북대 이종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는 변화하고 있는 문화 환경에 적응하고 생산적인 문화담론과 정책을 제시해 나갈 문화예술인 조직의 새 틀이 필요하다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 접근이 이뤄졌지만, 이를 담보해 나갈 새 조직의 출범 시기와 방식, 결정적 당위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공교롭게도 마당 수요포럼 주제가 공지된 시점을 전후해 지역 문화단체의 대안세력으로 주목을 받아온 문화개혁회의(대표 송만규)가 ‘발전적 해소’를 염두에 둔 내부 논의를 진행하면서 마당 수요포럼이 이에 대한 ‘표적 시비’를 붙이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더욱이 발제를 송만규씨가 맡고 문화개혁회의 사무국장 유대수씨 등이 참석하면서 문화개혁회의의 활동과 공과 등이 자주 언급돼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자리에는 박영자 전라북도의원(문화관광위)을 비롯해 미술가 신석호씨, 시민행동21 공동대표 이재규씨, 공공스튜디오 심심 대표 김병수씨 등이 참여해 열띤 논쟁을 벌였지만, 정작 문화예술인들의 참여가 저조해 현실적인 대안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적잖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이른바 80년대 ‘진보적’ 문화예술운동의 시대정신을 잇고 변화하는 지역 문화환경에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조직이나 연대 모색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큰 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날 포럼 내용을 쟁점별로 정리해 싣는다.
발제문 요약 / 송만규 문화개혁회의 대표
두말할 필요 없이 이 지역의 예술인 조직이 제 기능을 원만하게 수행하고 있다면 새로운 조직에 관한 논의와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볼 수 있겠는가?
80년대 이전 예술인조직들은 정권의 손아귀에서 몇 푼의 지원금과 자리를 차지하면서 품위와 명성을 유지하는 수구 보수적인 소수 예술인이 판을 치면서, 조직을 일신의 영달에 천착하는 사람들의 집단 정도의 천박한 수준으로 그 위치를 규정짓게 하였다.
이들은 역사와 사회 앞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확산하여야 할 중요한 의무를 져버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 혹은 소수 명망가나 은둔자들의 집단으로 몰고 가면서 대중과 예술의 유리 현상을 극대화 시켰다.
이에 사회 민주화의 열망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80년대에 이르러 이들 순수예술 운운하며 현실 도피적이거나 권력 영합적인 예술인에 대한 비판의 기치를 들고, 실로 한줌도 안 되는 예술인들이 소집단을 만들고 목소리를 드높이면서 민족민주화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활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승리에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90년대부터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지방분권의 시기에 지역문화를 이끌어 가야할 예술인 조직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 변화에 한 획을 그었던 자원들은 다양한 분야로의 일탈 분산되어 활동을 하게 되었다. 물론 정치 사회의 변화된 환경에의 순리적 과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지역의 열악한 경제력, 특히 비좁은 문화예술의 시장 속에서 운신의 폭은 극히 제한적인 상태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오랫동안 중앙 집중적 예술 활동으로 인해 지역에 기반을 두고 문화를 주도하여야 할 역량 있는 예술가들이 많지 않을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지역의 물적 토대가 지나치게 열악하여 오랜 시간을 두고 전문성과 대중성을 확보하거나 자기발전을 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96년도에 민예총이라는 단체로 엮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더 지속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논의 단계에서 좌절된 일이 있다. 이 과정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내려지지도 않고 있긴 하지만, 물적 토대가 빈약한 지역에서 예술가로써의 개인의 성장과 조직에 대한 전망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무관심 속에 빠져 있었다거나, 주도자가 신변의 불편함과 그 조직에 대한 지향성이 확실치 않은 가운데 추진하려고 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정도의 상황에서도 조직 건설의 필요성은 몇몇 소수에 의해서라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2001년 ‘전북문화개혁회의’를 조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개발과 정책 제안 등 의욕을 갖고 시도해 보았지만 지금은 ‘폐점’ 공고를 내 놓은 상태이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와 시련을 통해 내적으로 우리 지역의 진보적인 예술가나 예술가단체들의 각개 약진으로 지역사회 내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그 역할을 확실하게 자리매김 할 수 있는, 또 그만큼 넓게 자리하고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추었다. 또한 외적으로도 지방자치가 점점 정착되어 확실한 지방분권의 목소리가 드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지역문화 활성화의 화두가 밀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지방자치시대 이후로 지역문화운동의 의제, 과제 그리고 이해와 요구는 더욱 다양해졌다. 모두를 위하고, 모두로부터 발현되어지는 문화의 형태로 발전시키기 위한 공공문화프로젝트의 참여와 행정(정책)의 비평과 제안이 요구되고 있으며, 제각기 다른 목표지향점을 가진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요구를 가진 단체들과 연대 사업까지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인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새 틀 … 상황논리인가, 객관적 진단인가
최근 들어 지방분권이 전국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중앙에 집중돼 왔던 정책 결정 권한에 대한 지역의 분권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 들어 국가 경영의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지역문화도 팽창과 발전을 거듭하며 문화지형도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특히 예술인 내부의 전문성과 장르 확산 등이 이뤄지고 그 속에서 예술인들의 이해와 요구가 분산되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담보해 나갈 새로운 목표와 지향을 가진 조직체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날 포럼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새로운 예술인 조직이나 새 틀이 당장 눈앞에 떨어진 과제로 받아들여질 문제인지, 또 그것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차이였다. 이는 현재 시점에서 지역 문화판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무엇이 가장 절실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세 분석’의 차이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에는 80년대 저항적이고 진보적이었던 문화예술인 조직체의 시대정신과 역할을 급변하는 문화지형 속에서 어떻게 변용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한 축은 새로운 문화예술인 조직의 출범이 현재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모아진다.
이날 논의의 포문은 새로운 예술인 조직체 구성이 공론화 된 과정과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터져 나왔다.
사회를 맡은 이종민 교수는 “지방분권이 전국적인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문화분권 또한 중요한 이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문화예술인 조직으로 전북예총이 존재하지만 예총이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전북 민예총이나 전북문화개혁회의 등 그간 새로운 조직구성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논의가 중단되거나 중도하차 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기존의 문화예술조직으로 문화분권 시대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상당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화가 송만규씨는 “소위 보수적인 예술인 단체는 여전히 지방권력의 그늘에서, 오래된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지방의 예산을 쉽게 배정 받아 지역문화를 살찌우는데 쓰기보다는 자기단체의 위상을 높이거나 일회성 행사를 통해 변함 없이 자신의 세를 과시하고 있다”고 말해 문화예술계에 안겨진 예산의 합리적인 소비와 예술가 단체들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할 이른바 ‘문화 NGO'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민행동 21 이재규 공동대표는 “함성과 깃발의 시대였던 80년대에는 사회 정치적인 저항과 변혁의 바람이 거셌고, 문화예술 분야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해왔다. 지역문화는 이후에도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고, 이를 주도적으로 헤쳐나갈 문화예술인들이 존재해 왔다. 이들은 80년대의 감성과 운동성을 잃지 않고 문화의 주류로 떠오르거나 개인적인 역량이 성장했지만, 문화제도와 예산, 지역문화의 담론을 제기하고 유통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던 ‘주류’적 인물들이 문화적 거점을 세우고 문화예술인들의 건강한 긴장감을 조성해 내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지적. 이 대표는 “주류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여 시대정신을 잃지 않았던 문화예술인들이 자기 반성과 함께 지역문화가 처한 현재의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점에 대해 형식에 얽매인 상황 논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화가 유대수씨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문화전략본부가 필요하다는 논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우리가 조직이라는 틀이 없었을 때 무엇이 불편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새 틀이 생기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생길 것인지도 자문해 봐야 한다. 예술인 조직은 예술인 구성원들의 요구와 필요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와 그를 토대로 한 섬세하고 정확한 결을 맞추는 작업이 선행될 때 가능하다. 그리고 나서 깃발을 올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새로운 조직을 출범시키는 데 앞서 조직이 실제로 실행해 나갈 사업 영역과 역할의 규정, 그리고 조직원들의 자연스런 결속이 우선이라는 설명.
문화평론가 문윤걸씨도 이 같은 견해에 힘을 실었다.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문제는 조직의 당위가 반드시 그 조직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진보적 혹은 건강한 문화예술인 조직은 어찌 보면 위로부터의 조직건설이지 않았나. 이것이 소위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약화시킨 이유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문화예술인 조직이 균형을 맞추고 건강하게 발전해 가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이론가들의 활동이 활발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북지역의 핸디캡은 무엇보다 이론가나 비평가가 없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인조직 출범의 당위성을 아래로부터 획득해 나가면서 조직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이론가와 평론가의 역할이 탄탄해져야 한다는 ‘균형론’.
이날 포럼에서는 새로운 예술인 조직체 결성과 그 역할에 ‘문화 분권’이라는 현재의 상황이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있는 만큼 정책실행의 파트너쉽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새 조직 출범이 시급하다는 ‘위기론’이 부각돼 예술인 조직에 거는 기대가 또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영자 전북도의원은 “현 시점에서 우리 지역에는 문화분권 시대를 이끌어 갈 문화예술인 조직이 시급하다. 준비 과정에서 섬세하게 결을 맞춘 뒤 새 틀을 짜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광주도 문화수도 지정을 추진하면서 기획예산처에서 예산을 따오고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예술인들의 든든한 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북에도 이러한 사업에 힘을 실어주고 행정 분야와 발을 맞춰 파트너쉽을 발휘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해 예술인조직이 긍정적 행정 참여와 파트너쉽 발휘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직 출범은 ‘만능 키’ 아니다?
새로운 문화시대를 맞은 문화예술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일을 수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한 ‘역할론’과 새 조직 출범이 공론화 되고 있는 상황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일방적인 ‘의도’ 속에서 진행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미묘한 오해가 부딪히면서 포럼 현장은 뜨거워졌다.
유대수씨는 “정책적 파트너쉽을 발휘한다는 게 정부 정책과 같이 가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전북지역 문화예술인조직을 만들어 정부의 파터너쉽이나 실행하는 단위로 그 목적을 세운다면 새 조직 출범에 대한 당위로서는 약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화가 신석호씨도 “정책생산이나 정부 정책의 파트너가 상층의 필요만 있다고 그것이 조직 건설의 당위로 연결될 수는 없다. 조직의 소통과 내용의 장악이 가능해지려면 복지 혜택 면에서 각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무언가가 제안이 될 때 실제로 예술인들을 움직이고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업적 파트너가 필요해서 예술인조직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덧붙였다.
예술인들의 광범위한 요구의 수렴과 공감 없이 상층의 일방적인 요구나 필요에 의해 조직을 출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 그러나 전북지역 문화예술계가 처한 객관적 상황을 진단하고 점검해보는 기회를 갖거나 일방적인 정책 결정을 견제하는 수단으로서의 대안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종민 교수는 “예술인조직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범 예술인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통과의례나 시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왜 전북에서 이러한 조직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명쾌한 진단과 검토는 분명 필요한 작업이다. 기왕의 조직들이 일정한 포용력을 가지면서 다른 단체를 흡수했을 수도 있고, 예를 들어 예총이 민예총의 역할을 맡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전북 작가회의는 막강한 힘과 나름의 역할이 있어 새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희박했던 게 사실이다. 굳이 새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시점에서 문화예술인조직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점검해보자는 의미다”고 강조했다.
공공스튜디오 심심의 김병수 대표는 “예총의 성과를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으로 무력하거나 제도적 상황에서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창작인들도 달라진 상황에서 나름의 사회적 코드에 맞춰 장착행위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소집단이 실제로 그런 프로젝트나 작은 출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나 자신들의 발언 창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느냐의 부분은 회의적이다. 요구나 해야 할 것들은 드러나 있는데, 좀 더 반성적이고 냉정한 진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조직 출범을 ‘만능 키’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문윤걸 씨는 “거대 조직 속에서 정책을 생산 또는 제안하고 조직원들의 복지도 고려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려면 서로의 분야와 역할을 나눠 진행해야 할 문제다.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떻게 보면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조직에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고 반박했다.
유대수씨는 “관의 행정절차를 보면 일단은 지어놓고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내용물을 채워 넣으라고 요구한다. 이건 뭔가 거꾸로 된 것 아닌가. 새 틀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원론적으로 공감하지만, 그것이 시급하다거나 절차적 방식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만드는 일에만 급급하면 구체적으로 정책의 내용이나 해나가야 할 일에 대한 내용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사례가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만 출범시킨다면, 관의 방식과 다를 바 없지 않다”면서 신중하고 철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북일보 김은정 교육문화부 부장은 그러나 “예총과는 다른 위상에서 새로운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이 왜 필요치 않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예술인 정책도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이 목소리를 내야 압박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만, 반대로 개인의 이야기는 묵살되는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도에서 어떤 문화예술 정책을 추진하고 싶어한다고 하자. 그러면 도는 분명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받는 절차를 거칠 것이고, 예총은 예술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표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조직의 반대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예술정책을 검증하고 합리적으로 진행해 가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장치 중의 하나가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창한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실천할 것들을 찾아보자”고 맞받았다.
이날 포럼 현장은 역할론과 시기론에서 참가자들의 엇갈린 견해와 오해가 엇갈리면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지역문화의 상황변화에 대한 적절한 의식전환과 대응노력 등을 누가 어떤 창구를 통해 앞장 서 제기해 나갈 것인지 ‘주체’의 문제를 고민하게 한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 정리-김회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