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3.7 | [교사일기]
들풀꽃 향기 속에 살다
김호경 군산 발산초등학교 교사 김호경/1967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전주교육대를 졸(2004-02-19 14:11:20)
발산리 오층 석탑과 석등 그리고 키 큰 은행나무들이 둘러싸인 아담한 이 학교에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신나는 음악 줄넘기와 순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교과 전담으로 아이들의 체육을 맡아 가르친지도 벌써 2년이 되었다. 출근하자마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과 신나는 음악에 맞춰 줄넘기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전교생 남자아이들과 함께 모여 구슬땀을 흘리며 축구를 한다. 까맣게 그을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천진하고 순수한 게 바로 아이들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받은 편지 중 8년 전에 경기도 포천에서 가르쳤던 제자 지혜의 편지가 생각난다. 김호경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1995년도 경기도 포천 영북초등학교 1학년 2반 31번이었던 박지혜랍니다. 제가 선생님께 말도 잘 걸지 못하고 워낙 조용했던 아이라서 선생님이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오래전부터 선생님 찾고 싶었는데, 찾을 방법이 없어서 연락 못하고 지냈어요.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선생님 홈페이지를 들어가게 되어서 이렇게 메일을 띄워요. 얼마나 반가웠던지. 선생님 잘 지내셨죠? 헤헤 제가 처음 만났을때는 8살 꼬마였는데 지금은 많이 커버린 중 3소녀랍니다. 저는 계속 운천에서 살았구요. 지금은 영북중학교에 다녀요. 그리고 고입시험 준비하고 있구요. 홈페이지에서 선생님 사진 봤어요. 선생님의 인자하신 그 미소는 여전하시네요. 1학년때 선생님께서 주신 편지랑 책받침 그리고 우리반 문집 '요람에서 꿈나무로' 모두 다 잘 간직하고 있어요. 선생님 보고 싶어요. 이제 스승의 날인데 저를 가르쳐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구 행복하세요 저를 기억하신다면 답장 보내주세요. 이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그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내가 선택한 이 교사의 길을 나는 끝까지 가리라 다짐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가슴 뿌듯한 느낌을 어찌 다 나타낼 수 있을까. 내가 교사로 처음 발령을 받은 곳은 경기도 포천이었다. 고향에 형제 자매를 두고 낯선 곳으로 향하는 서글픈 마음과 군대가 있는 곳인지라 밤마다 울리는 대포, 총탄 소리에 잠을 뒤척이곤 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고 보니 그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날마다 초롱한 눈동자로 나를 맞이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차츰 고향생각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의 기억들이다. 한 학년을 맡아 일년을 지내고 나면 울고 웃는 재미있는 기억들이 참 많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고 나면 제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가물거리고 추억들도 한줄기 바람처럼 스쳐만 갈 뿐이다. 이 소중한 추억들을 함께 공유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나는 학급문집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는 컴퓨터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아서 일일이 깨끗하게 옮겨 써서 복사를 하고, 그림을 오려 붙여 일일이 제본을 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하나의 문집이 탄생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탄생된 아이들과의 첫 문집이 바로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아이들과 함께 문집이름을 공모하고 글을 다듬고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몇 년 만에 만난 제자들이 "선생님, 저 아직도 문집 가지고 있어요." "문집에 나와 있는 주소 보고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하는 말들을 듣노라면 내 마음은 너무 기쁘기만 하다. 누구나 다 학창 시절을 겪지만 그 날이 그 날인 기억들 뿐이라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남들보다 조금만 더 바쁘게 살고, 일 하나만을 더 한다고 생각하면 또한 그것이 아이들 가슴에 평생 남을 추억이 된다면 나는 결코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벌써 아이들과 함께 만든 문집이 15권 탄생되었다. 우리가 공부하고 배우는 목적은 무엇 때문인가. 나 하나만을 위한, 나 뿐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정 배운 자 라면 배운 것을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교사로서 이 땅에 선다는 사실이 힘든 때에도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많은 선생님들이 계신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날들 속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빚진 그 많은 은혜와 감사를 내가 만나는 수많은 아이들의 인연 속으로 나는 다시 되돌리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학습자료가 내가 만난 아이들만을 위해 쓰여지기보다는 보다 많은 선생님들의 손 가까이 다가가 그 선생님의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여지길 바란다. 오늘 만들어진 자료는 어쩌면 내일이면 죽은 자료가 될 수도 있다. 비록 부족함이 있을지언정 그 자료들을 하나씩 모으고 정리하여 CD에 저장하여 자료를 필요로 하는 선배 선생님들과 후배 선생님들께 보내는 일들을 계속하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를 먹고 세월의 울타리 속에 생각이 굳고 마음이 굳고 몸이 굳어 갈 것이다. 그러나 또한 나는 결코 나이를 먹지 않는 영원한 아이들의 친구가 될 것이다. 그들 곁에서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밝음과 싱싱함 그리고 천진함을 먹고 살 것이기 때문이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이들 곁에 영원히 서기로 한만큼 마음은 피터팬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 나의 젊음도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금낭화, 매발톱, 벌개미취, 자주괭이밥, 개아마, 초롱꽃, 부처꽃, 섬말나리 이런 들풀꽃들이 아름다운 속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도 들풀 꽃으로 피어 들풀꽃으로 살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