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7 | [특집]
파트너쉽 형성과 신뢰구축이 관건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
(2004-02-19 13:47:33)
전주시의 위탁을 받아 한옥마을 일대의 문화공공시설이 민간 전문가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된 지 1년을 맞았다.
민간위탁 방식은 IMF 체제를 전후해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 대부분 공무원 인력으로 관리·운영되던 공공시설에 대한 효율성과 전문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그 대안의 하나로 채택된 공공시설 운영방식이다.
전주시는 1999년부터 체육시설과 사회복지시설에 민간위탁 방안을 도입, 운영해오다 문화 공공시설로 그 영역을 확대했으며, 지난해 월드컵을 전후로 한옥마을에 들어선 문화시설과 전주역사박물관 운영을 민간 전문가의 손에 맡겼다.
2002년 4월부터 8월까지 전주시 공예품전시관을 시작으로 전주역사박물관,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전주전통문화센터 등이 차례로 문을 열고 운영 1년의 여정을 걸어오면서 문화계를 비롯한 여론의 관심을 모아왔다.
특히 한옥마을이 전통을 소재로 현대적 관광산업의 부가가치를 이끌어낼 전주시의 중요 프로젝트로 급부상한데다, 관이 아닌 민간이 참여해 재정적 지원 없이는 자립하기 어려운 문화시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됐다.
'민간위탁' 방식은 전국적으로도 그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실험성 짙은 제도여서 지역문화를 이끌어온 이른바 문화계의 '여론 주도층'과 핵심 문화 인력들의 역할이 민간위탁방식의 성패를 가늠하는 결정적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심은 전주시와 수탁기관, 시설 운영주체 모두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 거기에 세 주체들의 피로감을 증폭시키는 여러 가지 악재도 거듭됐다.
운영 초기부터 건물 시설문제가 심심찮게 불거져 책임 공방이 제기되거나 세 단체 사이의 미묘한 '힘 겨루기'가 감지되면서 여론의 지속적인 '흔들기'가 뒤따랐다. 올 초에는 이들 시설에 대한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돼 운영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도 했다.
민간위탁의 효용성, 우선순위가 엇갈린다
1년간의 위탁 경험에서 전주시와 수탁단체 및 운영자들 사이에 책임과 권한에 대한 합리적 결정과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주시와 운영자 양측 모두 서로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 점인데, 이 같은 견해 차이는 각 기관 사이에 갈등과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각 시설의 장·단기 목표와 멀게는 '민간위탁'의 기본 취지까지도 흔들 수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민간위탁 운영 1년을 맞은 시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민간위탁의 개념이나 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이 이를 입증해 주는 대목.
지난 6월 11일 정보영상진흥원에서 마련된 마당 수요포럼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그러나 민간위탁을 바라보는 전주시와 전주시의회, 수탁기관, 운영주체들의 시각은 거시적 관점에서는 한결같다. 경영효율성의 증대, 공공성과 수익성의 조화, 전문가의 역량을 활용한 자율과 탄력적 운영 등을 공통적인 지향점으로 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어떤 측면을 더 부각시켜 비중을 둘 것인지 각 단체의 입장과 시각차이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위탁자는 효율성과 비용절감에, 운영주체는 전문성과 자율성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금환 전주시 문화경제국장은 "민간위탁은 공공의 이익이 우선되는 사업으로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시스템 구현에 위탁자의 기대가 실려 있다"면서 "전주시는 전문가의 운영 노하우와 운영비 절감 효과만을 생각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운영주체들은 공공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현실적 지원과 함께 자율적인 운영을 최대한 보장해 줄 때 민간위탁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백옥선 공예품전시관 관장은 "민간위탁은 조직 경량화를 통해 민간의 전문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공공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라며 "조직 경량화는 전문인들의 적정인원의 보장과 적정 예산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전주시는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을 '비용 절감'에 두고 있는 것이고, 운영주체들은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한 여건조성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민간위탁의 목적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보다는 목표에 접근해 가기 위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와 그것의 실행 방식에서 오는 차이가 전주시와 운영자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지점으로 보인다.
갈등과 이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두 단체의 건강한 파트너쉽과 효율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갖추는 공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란 지적이 높다. 그러나 행정기관과 민간 운영자라는 근본적 입장차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갈등이 해소될 것이란 성급한 기대를 갖기보다 지치지 않고 서로의 견해차를 확인해 가는 인내와 성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 그리고 1년의 성과
문화시설 민간위탁 경험 1년을 맞은 시점에서 각 시설들이 이뤄놓은 성과에 대해 과학적 인 평가와 진단을 내리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높은 가운데 각 시설 운영주체들의 공공 마인드와 책임의식 등엔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적은 인력과 풍족하지 않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조직 안정화와 상설적인 사업 발굴 및 정착 등이 비교적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과 운영주체들의 자구 노력이 부지런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이는 수탁기관들이 지역 문화기여도가 높고, 운영책임자들이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지역 문화에 대한 경험과 애정을 쌓아온 인력들이라는 기본적인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
전주공예품전시관의 경우 한 해 지원금 2억 4천여만원으로 20만명의 방문객을 수용했고, 공예상품 납품 업체가 초기 20여개에서 최근 300여개로 늘어난 점 등이 가시적 성과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 꾸준한 테마기획전시나 공예산업의 실질적 전초기지로 자리잡아 나가기 위한 시장 개척 등 공예품전시관의 기능과 역할에 부합하려는 노력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전주전통문화센터는 국악 공연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월 평균 26회의 공연을 소화해내면서 '전주'라는 척박한 시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수요층을 확보해 나가기 위한 노력들을 펼쳐 나가고 있다. 한옥생활체험관도 산조 공연과 음식 강좌 등으로 단순 숙박 기능을 벗어나 전통의 향기를 심어주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나가기 위한 시도들을 벌이고 있다.
전통술박물관이나 전주역사박물관은 박물관으로서 기능하기 위한 기본적인 시설 보완이나 박물관 등록 미비(술박물관의 경우), 유물 구입에 필요한 예산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박물관의 공공성을 확보해 나가기 위한 시민참여 프로그램 확충 등으로 '경영'적 측면의 약점을 메워가고 있다.
그러나 절기에 맞춘 이벤트 프로그램이나 컨벤션 기능, 시민 강좌나 문화공연 등 비슷비슷한 사업들이 중복되면서 각 시설의 성격을 뚜렷이 하는 특화된 프로그램 마련이나 각 시설 별 차별화가 아쉽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주시의회 김남규 의원(송천1동)은 "각 시설이 갖는 기본적인 기능을 제외하고는 운영 프로그램이 대부분 비슷비슷해 차별화나 프로그램의 풍성함 등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전주역사박물관 우윤 관장은 "민간위탁기관을 설이나 대보름, 소리축제, 추석 등과 같은 행사에 동원시키려 하거나 그에 대한 부대시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각 시설들의 프로그램은 기관의 특성을 나타내는 사업을 제외하고 대동소이하지만, 가까운 문화시설을 찾을 수밖에 없는 지역민의 편의를 감안하면 각 시설들이 이를 조율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중복 사업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지역문화에 대한 운영주체들의 헌신과 노력이 후한 점수를 얻고 있지만, 문화 마인드를 가진 전문가들이 전주시 문화정책에 생산적 지원과 대안을 내놓고 문화정책 방향의 전반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높다.
전주시정발전연구소 홍성덕 연구원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지역문화의 비판세력으로 역할 했던 문화예술인들이 지금은 문화정책과 시설을 직접 실현하고 경영하는 주체의 자리에 앉게 된 만큼, 창의적인 제안과 구체적인 실천 내용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위탁 문화시설 운영자들이 불만이나 지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리에 앉게 된 만큼 방법과 대안을 제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
시설 운영자들은 이 같은 요구를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문화예술인들이 일자리 창출을 통한 일방적 '수혜자'라는 인식이 강조된다면, 건강한 파트너쉽 형성이나 수평적 의사 교환을 방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주공예품전시관 백옥선 관장은 "일부 공무원이나 문화예술인들이 시설 운영자와 직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줬다는 식의 시혜자와 수혜자의 입장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뿐 아니라 위탁자와 수탁자의 관계를 수직관계로 몰아 의견교환을 단절시키는 요소가 된다"고 밝혔다.
민간위탁 시설이 산업적 부가가치와 문화적 공공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장기간의 투자와 인내, 충실한 데이터를 토대로 한 과학적인 운영 매뉴얼의 확보 등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는 점에 위·수탁 기관 모두 폭넓은 교감을 갖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운영자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속에서 건강한 파트너쉽이 형성될 때 '민간위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에 보다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주시와 운영주체들 사이의 신뢰구축과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의 확보가 시급해 보인다.
열린 의사교환은 '공무원식 일 처리 방식'에 대한 운영자들의 불만, 모범 운영시설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예산과 인력 지원의 적정성 찾기, 파트너쉽 형성 등의 문제에서 빚어지고 있는 전주시와 운영주체 사이의 의견차와 오해를 해소하는 가장 빠른 창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민간위탁의 의미와 효용성, 한계 등이 제대로 타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