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 | [서평]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이론과 실천, 그 부조화의 내면
글/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신문방송학과(2004-02-19 13:30:20)
'작은 언론들' 사이에서 장호순 교수는 거의 영웅적 대접을 받는다.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월간 <말>과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소위 풀뿌리 지역신문의 활약상을 꾸준하게 알린 덕에 그 존재가 화려하게 부상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장 교수는 이 점에서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지역신문, 즉 시 군 단위의 소지역에서 주로 주간으로 발행되는 '작은 언론'의 역사와 역할, 실상, 애로, 대책, 외국의 사례 등을 조목조목 담아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모두 14장으로 구성된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는 '언론개혁'의 빈자리, 왜 지역신문인가, 중앙집중의 '등잔 밑', 민주사회의 시금석, 지역불균형 해소의 3단계, 작은 소리 큰 울림, 독자가 원하는 것, 지역신문만의 장점을 살리는 전략, 지역신문도 기업이다, '낮은 곳'에 머물러 이룬 성공,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일군 터밭, 전국지를 밀어낸 지역신문, 뉴 미디어 시대 위기이자 기회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언론자유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기형적인 서울공화국 사회에서 언론의 구조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소식 위주로 제작된 중앙일간지가 전국을 제패함으로써 소위 지방지는 빈사상태를 헤매고 있으며 '작은 언론'은 고개를 들이밀 수도 없었다. 전국적으로 500개에 달하고 있음에도 그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시설기준이라는 구시대적 법의 제약으로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받는 풍토에서 씨가 뿌려지고 싹을 틔워 작으나마 비로소 언론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참으로 척박한 토양에서 잡초처럼 살아남았다. '풀뿌리 언론'이란 별명은 이 점에서도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지역신문의 경영자와 기자, 언론학자, 그리고 '거대언론' 종사자들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하겠다. 제10장의 '옥천신문 방문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사회에서 바른 언론의 존재가 끼치는 영향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전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언론이 바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작은 언론의 역할에서 역설적으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자는 작은 언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려다 보니 스스로 운신과 사고의 폭을 좁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뜻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지나쳐서 자기가 하는 일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은 가볍게 여기고 때로는 깎아 내리는 독선과 좌충우돌을 저지르기도 한다.
저자인 장 교수는 언론개혁의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흠을 찾아내 지적하는 데 능하고, 한겨레신문에 대해서도 선입견에 의한 맹목적인 비난을 하기도 한다. 장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민초의 희망이 담긴 풀뿌리 지역신문 속에서 언론개혁의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건강하게 설 수 있는 입지가 만들어질 때 언론개혁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35쪽) 라고 하는 데서 잘 읽을 수 있다.
언론개혁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정확하게 진단을 하는 가운데 올바른 처방을 내리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것이 독립변인이고 종속변인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실을 거두지도 못한 채 고생만 하면서 세월을 허송하게 될 것이다. 신문개혁의 핵심은 언론권력인 족벌신문의 편집권 독립을 위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있다. 정간법의 개정과 시장의 규제, 그리고 독자의 각성이다. 여기에서 지역신문의 문제는 부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목표의 실현을 위해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우선적인 과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저자는 지역신문의 지원 육성에 역점을 두어야 언론이 개혁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지역신문이 언론개혁의 대안일까?
소수 거대언론의 횡포를 막기 위한 공정거래질서의 확립, 소유구조 개편, 편집권 독립 등의 해결책은 실제 병세에 비해 너무나 미약한 처방이며, 따라서 저자는 거대 공룡 언론이 축소되거나 해체되도록 "궁극적으로는 풀뿌리 지역신문처럼 거대 언론을 견제할 만한 군소·대안 언론매체가 활성화되어 누구나 자유로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290쪽)고 강조한다. 기존의 언론개혁운동의 진단과 처방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지역신문의 활성화가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미래의 주류 미디어가 될 전망인 인터넷 신문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대안언론이라 했으므로 틀린 이야기라 할 수는 없으나, 지역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지나치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장 교수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 개혁운동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의 지역신문 사례를 소개한 것은 참고할 만 하나 여러 가지 조건이 다르므로 우리가 무조건 모방해야 할 전형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모범적인 지역신문들이 다수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500개에 육박하는 지역신문들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약하다. 바른지역언론연대에 속해있는 30여 개 지역신문을 제외하면 '작은 언론'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정부가 지역신문들에 대한 지원 육성을 해야 한다고 할 때 어떻게 선별할 것인가?
거대언론 개혁도 해야 하고 지역언론 육성도 해야 한다. 풀뿌리 지역신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언론개혁운동에 나선 이들 치고 지역신문의 중요성과 장 교수의 노력을 깎아 내리는 이는 없다. 학구적 관심사에 더하여 보다 열린 자세와 실천, 그리고 구체적 대안의 제시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