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 | [교사일기]
동심에의 사랑과 감동
-첫 단추의 각오는 영원불멸하리
군산당북초등학교 교사 박 성 의(2004-02-19 13:26:05)
'이제 겨우 1년 8개월의 싱싱한 새내기 교사가 빠져가지구 말야...'
이른 아침, 푸근한 잠자리에의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꼼지락거릴 때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자각의 주문이다. 카풀을 하는 교무선생님의 부지런함 덕분에 나는 비교적 부지런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8시 30분 출근시간보다 20분이나 이른 시간에 학교에 도착해서 모닝커피 한잔의 여유를 거르는 일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지런한 카풀팀을 더욱 능가하는 아이들이 있으니...바로 작은 학교의 귀여운 아이들이다.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과의 통로인 본관 현관문 앞에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항상 우리를 반기곤 한다. 41명의 정원 중 10명이나 되니 매일 아침 전교생의 25%가 학교에 빨리 오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뜻이다.
전교생 41명에 전 학년 통틀어 4학급, 그중 복식 2학급, 단식 2학급으로 꾸려져 생활해 가는 우리 학교에서 내가 피부로 실감하는 학교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평소 말과 행동에서 수려한 재치 덕분에 '분위기 메이커'로 통하는 옆반 4·5학년 선생님이 건넨 A4용지 흰 종이 위의 글들은 누군가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우스개 소리로 주저리주저리 쉽게 적어 놓았음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내용들이라 차분하던 나의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아태지역 17개국 중 '스승에 대한 존경도' 17위의 나라, '학교에서 맞는 매는 폭행','학원에서 맞는 매는 사랑의 매', '특기적성계발이라는 명목아래 자유로워진 아이들에게는 학력저하가, 교사들에게는 무사안일주의가...' 이런 식의 글이었다. 그랬다. 언제부턴가 내가 몸담고 있는 교직사회의 사회적 신임도는 우리 나라 사람 누구나 이와 같이 비판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의욕에 넘쳐 팔팔해야 할 햇병아리 교사로서는 차라리 회피하고 싶은, 현장을 잘 모르는 문외한들의 험담거리였다.
문득 내가 보내온 1년 8개월 동안 나와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작지만 잔잔했던 감동과 그것이 나의 교육적 소신 형성에 도움된 시사점 몇 가지를 찾아내어 아침의 파장을 막음질 하려 애써본다.
에피소드 1-성선설과 통합설
올해 내가 맡은 반은 여자아이 6명, 남자아이 6명의, 그야말로 성비문제, 과밀학생수 문제 전혀 없는 아담하고 이상적인 반이다. 시내와 인접한 곳이지만 교통의 불편으로 외부세계의 나쁜 물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생활해 가는 저학년 아이들은 순수하기 그지 없다. 더구나 자폐아인 친구, 지현이를 일주일동안 순번제로 돌보면서 불평 한 마디 없이 걱정과 사랑으로 돌보는 따뜻한 마음씨는 거의 천사의 그것에 가깝다.
1학년을 마치고 우리 반으로 진급한 지현이를 담임이라는 자격으로 처음 대했을 때, 지현이는 보통 아이들처럼 노래도 잘 부르고 받아쓰기도 평균수준 이상이어서, 보통 교육이 가능한 아이였다. 다만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지 못하는 점, 늘 일정한 사물에 집착하고,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 학기 초부터 나의 마음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했다. 하지만 취학연령에 이른 딸이 '자폐아'라는 이유로 이 학교 저 학교 물색하다가 우리 학교에 입학시키고 이제야 한시름을 놓은 지현이의 부모님을 대할 때마다 나는 교대 4년 교육과정을 마치고서도 장애아에 대해 아무런 교육적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음의 마음 대신 자책감과 미안함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매일같이 학교에 상주하며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헌신적인 아이의 어머니와 점심식사 시간에 지현이가 좋아하는 반찬이면 제일 먼저 수저 위에 올려 떠 넣어주는 순수한 아이들의 배려심은 나의 되먹지 않은 이기심에 일침을 놓곤 했다.
또 지현이가 종례시간 직후, 친구들의 구호소리에 따라 자신도 오른손을 들고 작지만 또렷하게 '우리들의 다짐'을 메아리치듯 외치던 일, 칠판 위에 쓴 글씨들을 보며 자신의 노트에 베껴 쓴 일, 수업을 하던 중간에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일이 줄어드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던 일을 떠올릴 때면 잠시 느슨해졌던 마음도 더욱 조여지게 된다. 그리고 지현이가 친구들과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모습을 내일이라도 당장 보게 될 것처럼 설레는 마음이 커진다. 물론 지금처럼 자녀 이기주의를 초월한 지역 학부모들의 이해심도 동반되어야겠지만 말이다. 짧은 기간에 이미 나는 정상아와 장애아의 통합교육에 대한 사회적 난제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갖게 되었다.
에피소드 2-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고약한 진리가 있음에 '사랑의 매'를 지지한다.
교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던 작년의 4,6학년 아이들 6명과 달리 올해 2학년 아이들 중에 유독 그네들을 그립게 만드는 아이가 하나 있다. 학기초부터 유독 산만하고, 이제야 미운 일곱 살이라도 돌아왔다는 듯이 매사 불평 불만으로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였다. 그래도 어린 시절 복잡한 가정사로 1년여간 고아원에서 생활하다 그곳 생활의 험악함에 길들여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불신하게 된 이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측은한 마음이 앞서곤 했다. 자연스럽게 그 아이 앞에서는 허용적인 어머니가 되었던 것 같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돌아왔는데도 숙제나 준비물을 잘 챙겨오지 않고, 자신의 뜻과 맞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욕을 하고 손찌검까지 했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목소리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화를 내면 저보다 등치 큰 아이도 힘을 못 쓸 정도였다.
어느 날이었다. 그의 삐뚤어진 행동을 경미한 경고와 가벼운 매 몇 대로 끝내곤 했던 그간의 자세를 뒤엎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호통을 치고 다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엉덩이와 등을 마구 때려 주었다. 때리면서 말했다. "너는 그렇게도 선생님 마음을 몰라주니? 그 예쁜 입에서 어떻게 그런 험한 말이 나올 수 있는 거니?" "선생님이 너에게 이것 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니?"
그날 이후로 아이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조금의 후회는 남지만 나의 진정한 마음이 어린 그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리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아~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면 이 두 가지 일 밖에 없을까?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뜻하지 않는 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날 감동의 기회. '바른 인간성 형성'이라는 어렵고도 성스러운 숙제를 내 일생 앞에 던져 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