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 | [문화저널]
【NGO 주장】
통일을 준비하는 쌀 대책 수립해야
글 조경호 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실장(2004-02-19 13:24:42)
쌀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각 종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다. 농민들이 시위와 야적 농성을 벌이고 정부가 여러 대책들을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추수가 끝나고 난 지금 산지 쌀값이 14만원 선에서 거래가 되고 그나마 일부 지역은 팔아먹기도 힘든 지경이다. 지난해 산지 가격이 156,000원 - 157,000원 이었음을 감안하면 1만 5천원에서 2만원 가까이 떨어진 셈이다. 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영농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농사 좀 진다 싶으면 수백만 원씩의 소득이 감소하는 것이며 전농이 자체 조사한 생산비 (165,859원)와 견주어도 쌀 1가마(80kg)당 1만원 정도씩 손해가 발생하는 결과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현상이 올 해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만성적이고 장기적일 것이라는 데 있다. 즉 농민의 입장에서는 양정에 관한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쌀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시장경제의 논리로 만 본다면 소비되는 양보다 생산되는 양이 더 많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생산을 줄이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농산물 특히 이 민족의 주식인 쌀을 단순히 시장경제적 논리로만 볼 수 없으며 더구나 쌀과 관련한 정치적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볼 수 없으며 대책 또한 내올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여러 차례의 대책을 통하여 정부수매와 농협을 통한 매입을 포함해 총 1,525만석을 산지에서 흡수하여 산지가격을 최소한 지난해 수준으로 잡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대책과 의지는 전혀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고 있으며 상황이 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할 일 다했다는 듯이 뒷짐만지고 있는 상황이다. 쌀값폭락으로 전국의 농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아우성을 치는 이 순간에도 농림부의 자문기구인 양곡유통위원회는 내년도 정부 추곡수매값을 4-5% 인하해야 한다고 건의안을 확정한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카타르의 도하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의에서 농산물 시장의 개방확대와 농업보조금의 감축을 선언하는 순간에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쌀값은 시장기능에 맞겨야 한다고 말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순간 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을 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고 거리로 쫒겨난 상황이 연상된다. 그렇다. 세게화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개방정책과 그로 인한 우리농업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정인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해서 2004년 WTO 재협상을 앞두고 국내 쌀시장을 개방하기위한 수순으로 쌀 값을 하락시키고 (연구자료에 의하면 2011년 쌀 가격은 10만원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 경쟁력이 없는 농민들의 경우 쌀 농사를 포기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 생산을 줄이고 그 몫(국내 소비의 약 20%)을 수입쌀로 대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속내인 것이다. 한마디도 말하면 강제적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쌀에 대한 인식은 쌀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시장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본 아주 천박한 사고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식량이 무기화 되고 국가주권을 유지하기위한 가장 중요한 기간산업이 되고 있음을 재론하지 않는다 하여도 오랬동안 배고픔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쌀에 대한 정신적 기대심리는 우리사회를 유지하는 지주가 되는 것이다. 또한 단순한 상품으로써만이 아니라 논농사를 통한 홍수조절 기능과 공기정화 기능 등을 돈으로 환산하면 년 간 19조원이 넘는다. 농민들이 국민의 재산과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가 지출해야 할 예산을 그 만금 절감시켜준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국제 국제경쟁력의 관점에서만 판단할 수 있는가? 결국 논의 형상을 유지하고 거기에서 쌀을 생산하는 것은 농민들의 생업을 위한 차원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보호. 유지해야할 국가의 전략산업인 것이다.
우리 농민들이 요구하는 "쌀 생산비 보장"도 단순히 농민들이 쌀 값 몇 푼 더 받자는 요구가 아니다. 본격적인 쌀 시장개방과 정부의 쌀포기 정책에 맞서 우리의 쌀을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이다. 쌀 값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현재의 시점에서 쌀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이에 기반한 양정정책의 근본적 개혁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몇 년안에 우리의 주식인 쌀의 생산기반은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의 표현이며, 이를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쌀을 비롯한 양정정책의 문제는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통일을 앞에두고 있고 이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민족이 추구해야할 최고의 과제이며 다행스럽게도 최근 이러한 분위기와 여건이 조금씩 마련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환상과 꿈이 아니라 현실이며 이에 수반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통일국가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정책들을 수반해야 한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절실한 문제가 7천만 겨레가 먹고 사는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통일의 과제도 한 낱 공상에 그칠 수도 있다. 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 바 그 부족분이 230만 톤에 이르러 통일이 된다면 전체 식량수급 사정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는 양정정책을 수립하기 이전에 통일을 대비한 전체적 식량수급 계획과 이에 필요한 생산기반 확보를 위한 안을 먼저 내와야 한다. 아울러 2004년 WTO 재협상에서 쌀 개방을 하지 않을 것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과 생산농민들의 생산비가 보장되는 소득보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추곡수매정책을 중심으로한 가겨지지정책을 포기하고 직접지불을 통한 소득보전방안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생산농민의 입장에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ha당(300평) 25만원의 금액으로는 추곡수매가 해왔던 가격지지 기능을 대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와 같이 쌀 값이 예상밖으로 폭락하는 현실에서는 직접지불금의 대폭적 인상(60만원선-이는 정부보조가 감축된 만큼을 농가에게 환원하는 차원)과 가격지지 정책이 동시에 병행이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WTO 가 허용하는 범위의 수매정책을 유지하는 가운데 농협을 통한 매입물량을 늘리고 이 물량을 통한 농가의 수취가격이 농가의 생산비가 보장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을 전제로 하여 수급조절과 소득보전에 대한 보완적 정책들을 실시할 때만이 주곡의 안정적 공급과 농가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쌀의 보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과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개방농정으로 인하여 농민들의 고통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이 때에 쌀 농사의 붕괴는 쌀로 그치지 않고 타 작목으로 연쇄적 영향을 일으켜 결국 우리농업 전체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따라서 지금의 문제를 단순한 상품으로서의 쌀 문제로 보거나, 우리 사회 구성원 중의 한 계층인 농민들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뿐더러 머지않아 심각한 농업의 위기와 사회문제를 초래한다는 인식을 국민모두가 공유하고 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질 때만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농업은 농민만이 아닌 국민 모두가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