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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 | [시]
거미
이면우/1951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1991년 첫 시집 {저 석양}을 간행한 후 {창작과(2004-02-19 13:19:18)
거미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자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이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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