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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 | [문화비평]
【김선남의 문화비평】낙태 권하는 사회
문화저널(2004-02-19 13:15:42)
성폭력 발생률 세계 3위, 네 집 걸러 한 집 당 일어나는 가정 폭력, 20대 여성 10명당 1명 꼴의 유흥업소 종사, 20초당 1명의 낙태로 세계 2위… 이상은 성과 관련된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우리 사회는 IT 산업과 관련해서는 "선진국이네", "세계적이네" 라고 그 수준을 목에 힘주어 자랑하지만, 성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암흑 속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사회를 가리켜 우리는 '성의 미개국'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급증하는 온라인 상의 여성 억압을 더한다면, 이 땅은 여성들에게 그야말로 '위험한 사회', '폭력사회'가 되는 셈이다. 최근 '낙태'에 관한 논쟁으로 장안이 시끄럽다. 서울 지법은 지난주 임신 28주 된 태아를 유도 분만하여 약물주사로 낙태시킨 모 산부인과 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겠다는 판결을 내렸다. 평소 이 의사는 미성년자를 포함하여 미혼여성들에게 불법 낙태 시술을 하였고 또 인터넷상으로도 공공연히 낙태를 유도하였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처음으로 그 동안 비밀 아닌 비밀로 자행되었던 낙태시술의 책임소재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해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60만명 가량의 새 생명이 만들어지는데, 한편에서 약 150만명의 태아가 낙태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낙태는 약 20초당 1건씩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논쟁의 발단이 된 낙태 시술 의사에 대한 실형선고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사건이 있었던 다음날 필자가 담당한 '여성학' 시간에는 이와 관련하여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수강 학생들의 논쟁 주제는 '낙태'를 허용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금지해야 할 것인가였다.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학생들이 서로 언쟁하였다. 낙태의 부분 허용을 주장하는 측은 수강 학생들의 상당수를 차지하였는데, 이들에 따르면 원치 않는 임신을 할 경우에 아이를 낳아서 고통받고, 또 이것이 또다른 사회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차라리 낙태를 선택하여 야기될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소수의 목소리는 '낙태'는 엄연히 생명을 경시하는 신념에서 나오는 것으로, 낙태로 인한 '최선의 선택'이란 결국 자신의 이기적인 판단의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낙태에 관한 학생들의 찬반 논쟁은 종교적인 신념에서부터 자본주의 및 가부장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이루어졌는데 결국 이들 사이에서는 '낙태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들은 이에 우리 사회도 낙태 근절을 위한 과감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낙태문제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기인한다. 첫째, 낙태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경험하는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일반화되고 보편화된 일상행위로 이 사회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기혼여성의 약 60%는 낙태 경험이 있으며, 18세 이상의 전체 성인여성의 약 40%가 경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특히 태아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이루어지는 낙태는 약 3% 미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 미혼 여성뿐만 아니라 10대의 낙태율이 점차로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전체 미혼여성의 낙태(전체의 30%)건수 가운데 10대의 건수는 이것의 8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정부가 자랑하는 미혼모 감소 역시 이러한 미혼 여성의 낙태증가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한 남자 고등학생은 자신이 임신시킨 여중생과 낙태 문제로 다투다가 그 여중생을 살해하여 구속되었다고 한다. 10대는 낙태를 대수롭지 않은 선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은 데, 한 조사에 의하면, 미혼이면서 낙태를 경험한 여성의 약 92%가 피임을 선택하지 않으며 오히려 '낙태는 쉽지만 피임은 어려운 일'이라는 사고가 이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셋째, 낙태는 기혼여성들의 남아 출산을 위한 조절법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의하면, 15-44세의 기혼여성 40%가 낙태수술 경험이 있으며 이것의 주된 요인으로는 성별감별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연간 2만 8백여 건의 낙태가 성별감사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남녀 출생 비율이 첫아이는105:100, 둘째 아이, 121:100, 셋째 아이 141:100, 넷째 아이 242:100의 수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낙태의 원인에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이것이 매우 편리하고 쉬운 선택으로써 보편적인 가치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절제한 낙태 행위가 우리 사회에 야기할 수 있는 개인적·사회적·문화적 충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엄청나다. 우리가 이 사회를 '낙태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낙태하지 않는 사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관심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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