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 | [문화와사람]
주위를 떠도는 문화적 '관계'에 주목하라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하는 전북대 이정덕 교수
글/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3:13:58)
쉽지 않게 성사된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다시한번 당부한 것은 자신의 전공을 꼭 기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몇 년 사이 부쩍 증가한 각 지자체의 크고 작은 축제나 문화행사에 문화인력들과 연구자들의 활동이 속속 눈에 띄는 요즘, 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어서 일까. 자신의 여러 활동들이 결국은 자신의 전공을 연구하는 일의 일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때문일 게다.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이정덕 교수. 그의 전공은 '문화인류학'이다. '문화인류학'안에서도 문화의 내용 못지 않게 이리저리 그물을 엮어내고 있는 문화의 '관계'들에 집중하는 '문화정치'는 특히 그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문화'와 '정치' 언뜻 생각해보면 그리 연관이 있을 법하지 않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자면, 특히나 요즘같이 '문화의 시대'를 운운하는 분위기안에서 우리가 그 관계를 읽어내는 일은 중요하다.
"문화는 그저 흘러 다니는 가변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체계속에서 의미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러한 체계를 파악하지 않고는 우리 주위를 떠 다니는 많은 의미들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알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파악해야만 제대로 문화적 맥락을 읽어낼 수가 있게 되는 거죠. 서울과 전주, 어린 아이와 노인에게 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작용하는 의미는 제각각이기 마련입니다."
문화의 의미와 상징, 태도들이 우리 생활안에서 어떤 정치적인 작용을 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조사와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런 탓에 많은 부분 그의 연구활동의 근거지는 '현장'이 우선이다.
그가 이런 생각으로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많은 체험들을 위해 현장으로 나서기 일쑤다. 지난 전주세계소리축제 현장에서는 이교수를 비롯해 그의 학생들이 현장 곳곳에서 많은 문화들을 체험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이번 소리축제 평가작업을 진행, 발품을 팔아 꼼꼼히 축제의 이모저모를 기록하며 평가작업을 진행했다.
"많은 문화행사들은 '평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는 잘잘못을 따져 책임을 묻는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다음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인데, 아직도 평가에 대해 소홀하게 여기는 분위기여서 같은 문제들이 계속 돌출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평가를 형식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만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행사가 열릴때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그의 모습도 그러하지만 이번 소리축제 평가의 경우 조직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작업이었지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교수가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월간 『열린 전북』 역시 이런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11월호 특집 제목이 '강준혁 감독이 망친 전주세계소리축제'. 사람들은 그의 이런 '직격탄'에 놀랐고, 그 또한 사실 마음이 편치만은 안았다고 털어놓는다.
"실은 어제도 꿈을 꿨는데, 그 제목때문에 심리적인 부담감이 컸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리축제를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드러난 많은 문제점들 등 그 관계를 따져볼 때 한 개인에 대한 일종의 '테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기획자라는 강준혁감독과의 잘못된 관계가 많은 부분 소리축제를 망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저의 이런 발언이 제 개인적인 욕망인지 문화적으로 기여가 될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꿈에서 그 제목 때문에 고민을 하나 봅니다."
그는 부실한 행사로 평가되어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손해'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평가작업은 그 행사 자체를 평가하기 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떤 문화적 효과가 있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창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평가에서 설문조사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과의 직접 조사를 통해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에도 충실함을 보였다.
그의 '직격탄'의 또다른 이유는 {열린 전북}의 역할이다. 과감한 '파괴자'의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찾아서 비판적으로 점검해 적극적인 공론의 장을 열어가야 합니다. 사회에 긴장을 불어넣고 그것들이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우리 사회가 특정인맥으로 형성되는 '마피아'집단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연줄'을 타파하고 공평한 사회를 위해서는 감시의 눈이 많이 필요한 법입니다. 미약하나마 {열린 전북}이 또하나의 감시의 눈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그가 이런 활동들을 통해 진정 바라는 '문화'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희열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그가 주민들의 문화적 향유도를 우선으로 한 평가작업이나 지역의 많은 문화적 유산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 문화적 쓰임새를 궁리하는 일 모두가 여기에 연유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문화행사들이 각 지자체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는 걸 막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문화적 관계와 맥락에 초점을 두고 있는것입니다. 주민들의 문화적 향유를 근거로 해 전북의 문화를 찾고 이해시켜 독특한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싶은 것이 저의 목적이고 바람이지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얕아서' 고민입니다."
아직은 자신의 모든 것이 '얕기만'해 얼굴 내밀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이 쑥스럽다는 이정덕 교수. 허나 쏟아져 내리는 문화 '홍수'속에서 이론과 '현장'이 결합된 활동으로 지역문화를 일구는 튼실한 '문화' 전문가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다행스럽고도 든든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