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 | [문화칼럼]
휴대폰에 대한 변명
글 윤찬영 / 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사회복지학(2004-02-19 13:12:49)
핑계 같지만, 바쁘다 보니 휴대폰을 장만하지 못했다. 지난 연초에 내가 소속해 있는 각 단체들로부터 주소록이 배포되었는데, 과거와 달리 모든 단체들이 이름 바로 다음 칸에 휴대폰 번호를 넣었다. 대개 30∼50명 정도 되는 회원 중에 유일하게 휴대폰 난이 공란으로 되어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솔직히 충격이었고 배신감마저 느꼈다. 아니, 언제 세상이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나만 빼 놓고.
벌써 1년이 넘었다. 어느 날 아내가 불쑥 휴대폰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항상 바쁘게 다니니까 걱정도 되고 필요할 것 같아서 장만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나에 대한 그녀의 배려였다. 그러나 내 눈앞에 들이 민 휴대폰이 나에게는 수갑으로 보였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기면서 피하고 싶어졌다. 티격태격 한 끝에 휴대폰은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난 왠지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이 넘쳐나는 세상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강의실, 버스나 기차 안 여기저기에서 울려대는 휴대폰 소리는 짜증스럽기 그지없다. 심지어 생방송 중에도 누군가의 휴대폰이 울려대는 방송사고가 종종 생기곤 한다. 그런가하면 휴대폰으로 전화하면서 도로 1차선에서 천천히 가는 바람에 교통 흐름에 막대한 장애를 주는 운전자들이 있다. 부아가 치민다. 또한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 때문에 대화가 자꾸 중단되면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때도 있다.
게다가 이제는 휴대폰도 없다고 낙인을 찍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말도 안 된다느니, 무슨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느냐, 잘난 척 하지 말라느니,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희박하다느니, 왕따를 시키겠다느니 아주 성가신 힐난들이 쏟아진다. 혹여 내게 연락이 잘 안되다가 간신히 연락이 되면 휴대폰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사용하니 내가 거는 전화요금 역시 덩달아 인상되었다. 이런 것들은 휴대폰이 없기 때문에 내가 물어야 하는 비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자유 때문이다. 연구실에 전화 메모리 장치와 이메일을 통해 지금도 나는 폭주하는 연락에 많이 지치는 편이다. 너무 바빠 호흡조차 가쁠 때에는 메모리를 끄거나 아예 전화코드를 뽑아 놓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다 휴대폰마저 울려댄다면 나는 견뎌낼 자신이 없다.
성격 탓인지 나는 내가 주도하는 나의 스케줄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대개 타인들의 요구와 권유에 의해 스케줄이 마련된다. 이것을 쫓아다니다 보면 정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다. 그래서 내 꿈 중 하나는 내가 일시적이나마 실종되는 것이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부대끼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 이래 일거리가 너무 많아져 몸이 버티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아무도 연락할 수 없는 곳에서 고요함과 평화를 맛보고 싶을 때가 많다. 제대로 못 해봤지만 말이다. 따라서 휴대폰을 갖지 않는 것은 나의 자유를 더 이상 침해당하지 않으려는 아주 처절한 항변인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연락하고 대화하는 의사소통은 기본적인 욕구이자 권리이다. 따라서 이것은 억압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기술의 발전으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욕구가 과(過)충족되고 있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전화나 우편제도가 없을 때 어떻게 서로 교신하며 살았을까? 지금처럼 이동의 필요와 자유가 적었기 때문에 대개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끼리의 만남은 끊임없이 이루어졌을 텐데, 어떻게 만났을까? 시계도 없고, 전화도 없을 때 무엇을 가지고 사전 커뮤니케이션을 했을까? 멀리 거슬러 올라 갈 필요도 없다. 약 20년 전 내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었다. 그래도 친지들과 친구들과 다 연락하고 만나고 살았다. 특히 친구들과 만날 때나 데이트할 때 상대방을 만나기 위한 노력 자체가 일이었으며 대개는 다 성사되었다. 휴대폰 같은 것이 없었어도 말이다.
과거 인간들의 생활이 지금보다는 단순했기 때문에 그 때는 서로 예측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텔레파시가 발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 본다. 학창시절,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학교 근처에서 서성거리다보면 결국 만났다. 또한 그녀 역시 우리 학교에 찾아와 나를 만났다. 못 만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지만 대개는 만났다. 허탕을 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만난 것과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기다림 속에서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렵사리 만나게 되기 때문에 한 번의 만남이 매우 소중했다.
우리는 지금 기술의 과잉시대에서 과잉소비를 하며 살고 있다. 그 만큼 소비의 가치는 하락하고 인간을 대하는 것이 하찮은 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업무상 필요한 사람들 외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 과잉소비일 뿐이다. 휴대폰을 사용하다보면 없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고, 이것은 우리를 구속할 뿐이다. 텔레파시 같은 인간의 능력이 쇠퇴하고 있는 것 같다. 로버트 라이시가 말하는 "부유한 노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휴대폰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