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1.8 | [문화시평]
성사되지 못한 관객과의 만남이 못내 아쉽다 전국무용제 전북예선
글/정경희 전주예고 교사·무용과 정경희/1962년 출생. 조선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중앙(2004-02-19 12:18:25)
이왕이면 삶의 질을 위한 무용제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날이면 날마다 무수한 공연과 페스티벌이 열리고있는 뉴욕의 예술거리며 유럽 등의 축제거리들, 그런 선진국가들의 문화예술공간을 떠올려 보았다 . 우리고장도 늘 예술문화공간이 축제의 분위기로 열려지는, 그래서 숨 쉴틈 없이 관객의 발길로 공연장적 충족을 통하여 이 꽉 메워지는 꿈을 그려보면서 발길은 전북예술회관으로 향했다. 인간의 상위 욕구삶의 질에 기여하는 영역으로서 예술공연은 당연 주도적 입장이라 할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은 문화예술 공간의 이용을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이 늘 아쉽기만 하다. 전국 무용제 전북예선 출품작의 출연자, 안무자들이 이 지방에서는 권위 있는 대학교수들의 무용단이었기에 공연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공연이 될 거라는 성급한 생각을 했었나보다. 이 지방의 열악한 현실을 무시한 채 공연에 대한 내 기대만으로 관객석에 앉게 되었다. 너무나 소극적으로 대처한 탓일까? 객석 구석구석은 텅 비어있었고. 무용과 관계되는 우리 식구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집안 잔치치고도 너무도 썰렁했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무용공연은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또다시 도전하려는 예술가들의 희생정신은 어떤 열정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아무튼 우리끼리 북치고 장고치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 어떤 사진작가는 무용공연은 진정 미술가들로 하여금 또는 연극이나 음악가들로 하여금 공연장을 메워 작품을 평가받기에 가장 적당한 분야라고 했다. 전국 무용제 지방 예선제도 무용을 전공하지 않는 예술가들이 객석마다 자리하여 매서운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며 평가하는 그러한 공연장으로 좀더 저변확대 시켜야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더구나 객석에 앉은 관객마저도 예선제에 누가 어떠한 평을 하는지도, 그래서 선정된 작품이 어떤 과정으로 전국무용제에 대처하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한편으론 답답하기만 했다. 형식적인 공연자체가 중요했던 것인지, 과연 작품의 질을 재고하는 것이 먼저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또한 출연단체들의 수준을 논하기에는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너무도 미약했기 때문에 작품을 안무한 분에게나 무용수들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술은 답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용제에 나가는 작품들은 형식적이면서 돌아가며 나갈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 더 이상 다른 어느 누구도 선뜻 작품을 올려놓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전국 무용제에 출품하는 작품들이 개인과 단체의 성공의 행복의 결과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는 앞에서 잠깐 말했던 예술공연을 통해 삶의 질이 경험의 만족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내재적으로 동기화된 활동의 의미와 기쁨을 창출하는 자유와 창의적 능력발휘의 요소가 존재하므로 사람들은 욕구를 충족한 후에는 삶의 질을 위하여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자기실현의 욕구충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전국 무용제 전북예선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끝났다. 전국 무용제 뿐 아니라 공연은 일반적인 문화적 삶의 한 부분이며 그러므로 무용제는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절대 전유물이 아니다. 그저 문화생활의 한 부분으로서 정신적, 문화적 풍요로움을 어떠한 규정에 의해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용제를 포함한 모든 공연들이 국민의 삶속에 깊숙하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본다. 무용공연이 정신적, 문화적 풍요로움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공헌할 수 있는 역할을 명확히 밝혀내는 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되어야한다. 아마도 이번 공연은 흥행이 목적일 수 없어 시민들이 보기에는 더 좋았지 않았을까. 그럼으로써 출연한 무용수들과 안무가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하여금 용기를 가지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또 다시 예술문화 공간에 혼을 다하지 않을까? 더 많은 무용인들로 하여금 무용 제에 출품작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의 용기를. 그래서, 특히 강명선씨 같은 용기 있는 무용수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이 지방 젊은 무용수들이 하루속히 자생력을 길러 직업 무용단들이 스스로 형성되어져 뉴욕의 예술거리처럼 늘 아비뇽 축제장의 무용공연처럼 늘 북적거린다면 예향의 도시인 전주는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의 삶이 예술가들의 삶이 윤택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해본다. 예선제라지만 훌륭한 작품들이 무용의 관계자만으로 막을 내린 것이 무엇보다도 아쉬웠기 때문에 관객에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흥행이 목적이 아니어서 시민들이 보기에는 기회가 더 좋았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무용공연이 누구나 쉽게 다가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되기 때문이다. 무용은, 음악이나 미술처럼 저변인구가 없어 저변확대의 이해도 힘들기 때문에 공연을 자주 접하는 대중예술로서도 한몫 해야 된다. 공연을 자주 마련하기에는 아마도 터무니 없는 예산에 적극적 홍보가 어려웠을 것이다. 전북은 전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곳이기에 무용공연에 투자할만한 기업도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전국 무용 제에 출품한 작품들이 부단 선정된 한 작품으로 만족할게 아니고 이 고장 예선제의 무용공연들이 여기저기서 계속된 공연으로 부흥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여러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도록 그래서, 누구나 전주시민이면 전국무용제, 지방예선제 정도는 어떠한 작품들이었는지 만족스러운 표현들을 보고 싶다. 춤만 추고 살기에는 턱없이 어려운 고장일지라도 전주 이곳을 그야말로 예향의 도시며 끝없이 예술인이 솟아나는 토향적 기질을 공연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알리고 젊고 많은 무용가들로 하여금 무용공연 문화가 더 멀리보고 더 높은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길. 그리고 더욱더 무용공연이 풍요로워지길 기대해본다. chung_art@hanmail.net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