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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 | [저널초점]
대규모의 임의적 역사 만들기는 안된다 전북인 동산 조성을 위한 공청회
글/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2:17:44)
전북도가 역사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전북을 빛낸 인물을 기리기 위해 기획한 사업의 조사 보고회 및 공청회가 지난 7월 3일 전북도청 2청사에서 열렸다. 전북도는 전북을 빛낸 인물들을 선정, 60억의 예산을 들여 소리문화의 전당 뒤편 3천4백여평의 부지에 '전북인 동산' 조성사업을 계획하고 이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전북경제사회연구원에 의뢰했었다. 이날 공청회는 전북의 인물 선정과 기념을 위한 도민의식조사와 역사기념의 의의, 기념조형물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주제발표에 이은 토론회에서는 '전북인 동산의 조성이 필요한가'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날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내린 결론은 "인물중심의 기념사업은 부적합"하다는 것. 전북도측의 이미 기획된 사업의 '타당성'문제가 논란의 핵심이 된 것은 연구팀의 조사 당시의 문제의식에서 부터 출발했다. 연구팀은 조사를 시행하면서 두가지 문제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또는 한 시대를 기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과 그동안 기념사업이나 기념공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시대와 상황과 주체에 따라 얼마든지 상대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게 되는 점을 인식, 조사작업 자체에 대한 난항이 적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조사작업을 진행한 원광대 사학과 강사 원도연씨는 "이번 설문조사가 상당부분 '인기투표'의 성향이 짙다고 보고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많은 논의를 거쳐 전북인 동산의 본래적 의미를 추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결국 전북을 빛낸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이른바 '빛냈다'는 것의 기준과 관점을 설정하는 일에서부터 지역별, 장르별, 시대별 등등의 온갖 변수를 가장 객관적이고 엄정한 척도로 구성해야 하는 작업을 포함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기초 조사작업 시행이 사실상 처음으로 실시되는 작업이라는 데 그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전북도의 이번 사업에 대한 목적과 의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라 조사작업에 대한 토론이 아닌 사업 추진에 대한 원론적인 토론이 이날 공청회의 중심을 이뤘다. 전주문화원장 송영상씨는 "전북인 동산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사업에 대한 개요, 계획, 홍보가 없이 조사작업 결과를 가지고 공청회를 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기록보존소 연구원 홍성덕씨 역시 "어떤 공간으로 할 것인지, 도대체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근거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공청회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 용역 조사 작업 이전에 이번 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컨셉에 대한 논의가 우선됐어야 했다는 것이 중론. 이에 전북도에서는 "지방자치제하의 뿌리찾기와 인물 키우기에 여념이 없지만 실제로 전북도민들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전북의 인물이 누구인지 한번도 조사된 바 없으며, 전북인을 기념하고 기리는 작업이 어떤 조건과 기준을 갖고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토론된 바가 없어 이번 조사를 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토론회 내내 문제를 제기했던 사업의 목적이나 추진배경이나 과정 등에 대한 '속시원한' 사업 설명이 이뤄지지 않아 공청회라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한 자리였을 뿐만 아니라 이번 조사 자료는 앞으로 도 문화행정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사업의 타당성 여부와 함께 논란의 또다른 축을 이룬 문제는 바로 '무엇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하는 문제. 조사작업을 진행한 전북대 사회학과 이성호씨는 "몇 사람의 인물 발굴로 전북의 이미지나 정신자체를 이어간다는 발상자체가 잘못됐다"며 "숨어있는 인물 발굴이 오히려 더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을 제시, 조사결과를 통해 보더라도 어떤 상징물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인위적인 것에 머무를 소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전주대 문화학부 이재원 교수는 "여론조사에 대해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도가 역사적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역사적 인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못박았다. 인물선정에서는 역사적 평가가 선행될 필요성이 있다고 전제, 이 사업 자체가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해 그 데이터를 구축하고 전라도가 어떤 곳인가를 먼저 규명한 후에 구체적 사업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은 만약 역사적 인물이 이 공간에 들어가야 한다면 잊혀진 인물들을 발굴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것이라며 눈에 보이는 가시적 조형물이 아닌 정신적으로 살아있는 사업, 전북인이 예향을 누릴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지 않고 이번 조사작업을 토대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면 이미 대다수 인물들이 기념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는 중복투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공청회를 통해 전북인 동산 사업은 '인물중심의 기념조형물을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더 많은 논의와 토론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결론만 얻은 채 막을 내렸다. 어떤 경우이든 인물선정사업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과정과 절차를 거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논란과 후유증을 남기기 때문이다. 전북도의 기획아래 '전북인 동산' 조성에 관한 조사작업 및 공청회가 제대로 성사되진 않았지만 이번 자리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전북인 동산 조성 사업에 대한 원론적 논의의 과정부터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은 구체적인 사업에 대한 타당성 여부와 사전 토의 없이 일방적 추진을 일삼는 행정의 부실함과 비민주성의 전형이 다시한번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뿐만 아니라 어찌됐든 이번 공청회를 통해 드러난, 현재 전라북도에 있는 거의 모든 기념조형물이나 기념사업 등이 획일화, 화석화 돼고 있다는 토론자들의 지적과 조사작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시적인 기념물 제작이나 사업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기념하는 문제 못지 않게 '어떻게' 기념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대규모의 임의적 역사 만들기 보다는 작지만 다양한 내용을 담아 생활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역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기념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물을 일이다. '전쟁은 승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는 유태인 학살기념관에 적힌 말처럼 기념과 추모는 건축의 장대한 기념성을 도입하거나 상투적인 전시(展示)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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