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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 | [문화저널]
【여성과문화】 양성평등 위해 펼치는 첩보활동 전북경찰청 기동수사대 권미자 경사
글/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2:12:06)
'정의감'이 남다른 소녀였지만, TV에 방영되는 드라마속 여형사의 겁없는 행동에 탄성을 보내곤 했어도, 스스로가 그 자리에 서리라는 마음은 먹지 못했었다. 전북경찰청 기동수사대 권미자 경사(34세). 군데군데 쇠창살이 굳게 입을 다문 건물안에, 온갖 범죄자들이 들락거리는 수사계 사무실 그 안에 꼿꼿이 그의 자리가 있다. 취직 준비를 하던 중 승진이나 급여면에서 비교적 차별이 적은 곳을 찾다보니 '경찰 업무'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발을 들여놓게 된 그는 남다른 책임감과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전라북도에서는 처음으로 전주 중부경찰서의 조사계에 근무하기도 했고, 지금 일하고 있는 기동수사대의 경우도 그를 포함해 여성은 단 둘 뿐이다. 그의 주된 업무는 성폭행과 가정폭력, 윤락여성 문제. 여성범죄가 급증하면서 험악한 남자 형사들의 전담구역이었던 기동수사대안에도 여성 형사의 노하우가 발휘되어야 하는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어요. 조사계 일은 주로 고소, 고발에 따른 내근조사가 주를 이뤘지만 이곳 수사계는 남자 형사들과 똑같이 사건을 찾아 다니고, 잠복을 서고, 밤샘 조사를 벌여야 되는 곳이거든요. 하지만 여성범죄를 주로 다루는 일인만큼 경험있는 여성 인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다 보니 힘든 것도 잠시입니다." 그가 사건을 찾아내는 첩보활동의 주된 정보망은 다름아닌 각종 여성단체를 방문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가해자를 적발해 조사, 처벌하는 일이 그의 업무. 범죄의 특성상, 그는 이제 상담사가 다 돼있었다. 여성범죄의 경우 가해자 처벌을 위해선 피해자 증언과 증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 그렇다보니 세세한 상담 수준의 조사가 필수다. 성폭행의 경우에는 가해자 열이면 열 모두 100% 부인을 하기 일쑤고, 증거가 빨리 소멸되기 때문에 피해자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사실 예전에는 여성범죄는 여성의 부주의로 인해 사건이 발생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 일을 전담해서 하다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성범죄의 가해자들이 100% 가깝게 남성들인데다, 특히 장애인이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일어난 범죄를 처리할때에는 같은 여성으로서 속상한 게 이만저만 아니예요." 여성의 부주의나 반항을 했느냐 안했느냐로 판가름나는 경우가 많은 사건들을 그는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싫다'는 말 한마디도 의사 거부의 중요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다 보니 권경사가 맡은 사건의 대부분은 가해자 처벌로 이어졌다. 또한 그만의 노하우도 발휘할 때가 많다. 장애인이나 지능이 정상적이지 못한 피해자들을 조사할때의 눈높이 맞추기, 재판과정까지 미리 염두에 둔 관련법규나 판례 조사하기, 증거 소멸을 방지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최소한의 시간을 주는 등 나름의 노하우가 피해자 진술에 많은 의존을 해야하는 여성범죄의 해결을 돕고 있다. 오히려 그가 근본적인 범죄의 근절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윤락여성에 대한 것들이다. "원칙적으로 윤락이라는 게 불법이지만 범죄 아닌 범죄로 만연돼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윤락은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윤락을 근거로한 사기, 공갈, 협박 등 제2, 3의 많은 범죄들을 또 양산해 내기도 하거든요." 검거돼 수사를 시작해도 윤락여성들은 포주와의 꽉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술을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럴때면 권경사는 조급해하지 않고 언니나 동생과 대화를 나누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구구절절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수많은 피해사례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그의 민간네트웍을 연결해 사건을 수집하는 첩보활동과 여성범죄 해결의 능력을 인정받아 얼마전 치러진 여성주간행사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상을 수상하는 보람을 얻기도 했다. 체력보강을 위해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유도 1단의 권미자 경사. 범죄는 주로 야간시간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기약없는 밤샘작업과 잠복근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 '정의감' 많았던 소녀는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다른 남자 형사들처럼 가해자들을 향해 큰 소리로 윽박지르지는 못해도, '강단'있는 그 앞에서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는 못베기기 때문이다. 꼼꼼한 심리파악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그에게 여성의 부주의로 치부돼 방치되는 여성범죄는 더 이상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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