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8 | [문화저널]
【문윤걸의 음악이야기】
견고한 전선, '드디어' 균열이다
문화저널(2004-02-19 12:04:29)
문화저널 지난 호에서 전쟁광 이야기라는 시평을 읽은 뒤 주위를 좀 둘러 보았더니 대체나 도처가 전쟁터에 다름 아니다. 신문 이야기가 그렇고, 정치인들의 앞서가는 대선 다툼이 그렇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전쟁 하나가 진행중이다. 문화방송과 한국연예제작자 협회간의 전쟁인데 문화방송의 한 시사 프로그램이 연예인과 소속 기획사간의 불공정 계약 관행에 대해 보도한 것이 불씨를 던졌고, 이후 사태의 진행이 예사롭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차제에 TV 대중음악의 관습이 혁신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다. 한국연예제작자 협회 소속 기획사에 대부분의 인기 가수들이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을 곰곰이 들여다 보면 우리 대중음악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중음악은 생산-유통-소비(수용)의 과정을 거치는데 과거에는 이 전 과정에서 방송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방송에 의지하지 않고 인기 가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대중문화 전체가 방송에 절대 복종했지만 이제 상황은 확실히 역전된 듯하다. 이번 사태는 기획사들이 방송의 권위와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인데 기획사는 더 이상 다윗이 아니다. 이미 방송은 숱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시청자 보다는 인기 연예인에 의지해서 시청률을 높이는 전략을 지금껏 고집해 왔다. 이 과정에서 방송은 기획사에 스스로 덜미를 잡힌 것이다.
그렇다면 방송이 보도를 통해 도와주고자 했던 연예인들은 누구 뒤로 줄 설 것인가? 상식적으로는 방송과 한편이 되어야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은 치명적 '자기 살해'와도 같은 문화방송에 대해 출연 거부를 선언함으로써 소속 기획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건 또 무슨 작태? 기획사가 대중문화 현장에서 갖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이것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기획사는 이미 연예인을 완벽하게 장악하였고, 이제 방송마저도 그들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 정도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방송-가수-기획사 삼자 연합으로 망쳐오던 TV 대중음악의 견고한 전선에 드디어 균열이 생겼다. 한때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모색하던 삼자가 문화방송의 2차 보도로 인해 다시 전면전에 나섰다. 드디어 개혁의 기회는 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TV 대중음악에 대해 충고를 해 왔으니 이를 재탕할 필요는 없겠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질 일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부추겨야 한다. 절대로 적당한 선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은근 슬쩍 넘어가서는 곤란하다. 싸움은 말리랬지만 난 이 싸움이 그렇게 고소할 수 없고 뒤에서 살살 부채질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