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8 | [문화와사람]
'고향의 노래' 멈추지 않는 노 시인
장수 향토사 연구가 고두영씨
황경신 기자(2004-02-19 11:43:21)
"잡초 투성이의 고향 들판에 / 흔해 빠진 고향초 한 떨기 / 그 자리 / 눈여겨 주는 이 없어도 / 혼자서 계절따라 / 피고 지는 변치않는 고향의 노래"
40여년동안 교직에 몸담아 오면서 향토사 연구에 열정을 바쳐온 고두영씨(73)의 시 '고향초 2'의 한 구절이다. 시인으로, 향토 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장수 문화의 중심인물이다. 논개 사업을 지금의 현대화 작업으로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이나 역사적 근거와 토대를 마련한 것도 그의 공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논개에 대한 그의 애정은 무척이나 깊고 넓다. 70년대부터 향토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도 바로 논개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열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훌륭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논개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그때 비로소 향토사를 연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거죠. 당시만 해도 장수 군지나 논개 사적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무척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각종 문헌을 찾고 논개와 관련된 인물이나 지인들을 찾아 하나 하나 기록들을 정비해 가면서 적잖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빛을 본 것이 『장수 절개』를 비롯해 『이매미 주논개』『논개의 생애와 충절(공저)』『전해산 장군 전기』등 수권의 값진 책들이다. 이밖에 교사의 일상을 담은 수필집이나 논개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은 시집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교직에 있으면서 논개를 중심으로 한 장수의 얼을 담은 영상교육자료를 직접 제작, 교육부를 통해 전국 교육기관에 수만부가 배부되기도 했다.
논개 생가터 복원이나 기념관 건립 등을 일찍부터 준비하고 건의하면서 지금의 논개사업을 정착시키는 데에도 그는 일등 공신이다. 지방지와 중앙지에 지속적으로 투고를 함으로써 논개의 정신과 업적을 알리는데 일조했으며, 전두환 정권 때에는 직접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논개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예산을 따오기도 했다.
"장수의 전통문화를 후대에 남기고 싶었던게 가장 큰 욕심이었지요. 향토사를 연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장성한 아이들이 도회지에 나와 함께 살자고 제안해 와도 그는 꿈적하지 않는다. "고향을 지키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김회경 기자
사무실 한 켠 없어도 빛을 발하는 소박한 문화활동
장수 문인협회
문화의 맥이 좀처럼 닿기 어려운 장수에 문학의 향기를 솔솔 피워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이 없는 이곳에 10년 넘게 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장수 문인협회 사람들.
지난 91년 그저 책읽기와 글쓰기가 좋아 하나 둘 모여든 이들이 모두 20명. '장수 문학회'로 모임을 시작한 이들은 매월 정기 모임을 갖고 창작에 대한 나름의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다음해 회원들의 작품을 모은 문학지 발간을 시작으로 장수 문인협회는 회원들의 작품활동 만이 아닌 지역의 문화를 가꿔가는 일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여유롭지 않은 많은 여건속에서도 지역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시 낭송회를 비롯해 문학강좌를 개최, 목마른 문화의 샘물을 조금씩 퍼올리기 시작했다.
장수 문인협회가 무엇보다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복원하는 일이다. 삶의 기준이 물질의 양과 힘의 작용에 맞추어져, 자연과 맞닿은 이곳 장수라고 해도 날로 기울어가는 정서적인 면을 극복해가는데 '펜'끝을 모으고 있다.
95년부터는 문학기행을 시작, 경남산청 덕천의 조식 남면선생의 산천재와 덕천서원, 지리산 청확동,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과 윤선도 기념관, 전남 벌교와 낙안 읍성 등 해마다 회원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기행을 진행, 문학의 현장을 직접 찾아 나서고 있다.
장수문학회로 몇 년간의 활동을 이어오던 이들은 좀더 체계적이고 튼실한 활동을 위해 장수문인협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그리 큰 일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문화환경안에서 놓인 이들에게는 좀처럼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법인 설립을 한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사무실 한 켠 마련하지 못하는 여건속에서 여러 프로그램이나 조직 정비 등을 진행하는 일이 쉽지 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다할 문화단체 한 곳 없는 이곳에서 저희들의 활동은 더욱 소중할 수 밖에 없지요. 소박하게 치러지는 강좌나 기행이지만 군민들이 함께 참여해 모처럼 문화예술의 면모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니 말입니다."
사무실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이들의 모임은 주로 회원들의 집이나 동네 작은 식당에서 치러진다. 옹기종기 모여든 회원들은 저마다의 작품을 돌보는가 하면, 나름의 비평도 아끼지 않는다. 이만큼 튼실한 문화단체도 드물어 장수의 문화행사에는 시화전이나 시낭송회 등으로 지역민들과 얼굴을 맞대는 '단골' 문화예술인이 된지 오래다.
장수 구석구석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이지만 문학의 열정을 품고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한몫을 하고 있는 장수 문인협회의 소박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