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8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디즈니를 넘어선 슈렉
문화저널(2004-02-19 11:40:20)
<진주만〉을 집으로 말하면 오크장에 파스텔 톤의 식탁, 양주병이 든 장식장(요즘 이게 유행인가 보죠)과 말구유에 니스칠한 앤티크 그리고 한 색깔의 오디오 '세트'를 채운 거실이 아닐까요. 이 영화가 계속 박스오피스의 상위를 유지하는 것을 보니 상처에 인두질을 아니할 수 없네요. 허술한 내러티브를 폭탄장면의 비주얼로 극복하려고 애만 쓰다만 '미국판 배달의 기수'가 진주만이라면 그 생산자인 디즈니도 더 이상은 꿈을 주지 못하는 거죠. 더 세고 더 큰 것, 그래 더 이상 인류의 재앙이 뭐가 있을까요?〈타이타닉〉〈포세이돈 어드벤쳐〉〈타워링〉〈붉은 시월〉〈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다 마지막에는 친구의 아빠가 돼주는 것은〈우나기〉까지 닮은 종합선물이네요. 하여 꼭 할 말, 비디오로 출시될 진주만은 반드시 18세 이상可, 왜?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주기에. 차라리 아드리해를 배경으로 공중전을 보여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를 추천합니다.
겨우내 땐 군불로 방바닥은 시커멓게 타 있고 벽지는 바르지 않은 채 책꽂이는 누군가가 버린 나무들로 짜 만든 오두막이 있습니다. 누워서 손을 뻗으면 뭐든 잡히죠. 그런 집, 겨우 서너 평되는 모악산 시인의 토굴같은 영화가 바로 드림웍스에서 만든 〈슈렉〉입니다. 손을 내어밀면 우리가 어려서 본 수많은 동화와 만화가 그리고 쉽게 지나쳤던 영화의 화면에 게임까지 손에 잡히는 이 애니메이션은 우리의 상상력을 비트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조금 째나는 말로 하면, 패스티시(혼성 모방 장르)를 통해 서로 교감하는 소위 텍스트의 상호성이라는 것이 우리를 어린애의 세계로 인도하지요. 같은 종합선물이라도 공들여 가꾼 꽃밭을 보는 느낌입니다.
성숙한 내면을 몰라주면 마음에 얼음장을 까는데 슈렉도 그런 경우죠. 그러나 그는 못생긴 공주를 사랑하게 되면서 마음의 군불을 지핍니다. 매트릭스풍의 이단엽차기를 하는 피오나 공주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풍의 내숭쟁이가 아닙니다. 패스티시를 통해 하나의 당당한 현대적 전형이 탄생했다고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그래요, 사랑에 빠져 별을 보며 이야기하는 대목이나 다양한 형태의 이끼낀 나무의 공들인 화면을 보면 이게 만화인가 싶어집니다. 아무리 마음에 서리장을 깐 사람일지라도 노래하다 몸이 터져버리는 새의 장면이나 뱀으로 강아지 풍선을 만드는 모습에선 그 기찬 상상력에 무릎을 칠 것입니다. 키스를 통해 추녀와 괴물이 선남선녀로 태어나길 기대하던 속마음이 여지없이 배신당할 때는 디즈니적 얕은 수를 들켜버린 부끄러움과 동시에 장마철에 불을 땐 장판 방에 누운 것처럼 고슬고슬함이 느껴질 거예요.
그런데 이 영화, 절대로 혼자 보지 마세요. 여럿이 보아야 자기가 읽고 경험한 것들의 패러디를 발견하면서 귓속말을 하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애니는 극장용이 아닌 비디오용이라는 편견을 가진 분들, 그리고 사람은 미모보다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꼭 보세요!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