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정철성의 책꽂이]
1894년
문화저널(2004-02-19 11:36:46)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전국 각지에 전해 내려온다는 이 파랑새 노래의 정확한 의미를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녹두꽃이 전봉준 장군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파랑새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또 청포장수는 누구를 지칭하는지 꼬집어 말하는 것은 무모한 시도인 경우가 많았다. 위험한 시대의 불온한 희망이 검열의 틈을 비집고 나와 이런 가사를 만들었을 것이다.
"새야새야 파랑새야"의 의미가 모호한 것처럼 1894년의 역사적 사건은 백년을 훨씬 넘긴 오늘에도 혁명과 전쟁 그리고 동학과 농민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원식이 지적하였듯이 우리는 이제 1894년을 기억할 때 일제의 간섭에 의한 갑오경장이 아니라 고부에서 불붙어 삼남을 뒤흔들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동학농민의 의거를 먼저 떠올린다. 동학농민혁명의 과정에 대하여는 상당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와 같은 업적을 바탕으로 전주에서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동학농민혁명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로 하였다.
역사소설의 테두리 안에서 문학적 형상화에 성공한 예로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과 송기숙의 {녹두장군}을 들 수 있다. 80년대와 90년대까지의 인식을 대표하는 두 소설은 동학농민혁명이 북한과 남한에서 각각 어떻게 해석되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박태원은 역사발전의 단계에 초점을 맞추어 농민의 역량이 당대 사회의 어떤 조건에 의해 축적될 수 있었던가를 묘사한다. 그의 작품에서 봉건통치배들은 예정된 몰락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희화화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한편 농민군 지도자들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변혁의 기틀을 닦아가지만 시대의 한계 때문에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 박태원의 시각이다. 송기숙은 인물과 현장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사건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추적한다. 그가 형상화하는 인물들은 역사 속에서 걸어나와 우리 앞에 서서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자신을 포함한 집단의 운명을 결정했는가를 보여준다. 가끔 해안 지방의 어투가 뒤섞이는 것이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송기숙에 이르러 우리는 전라도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하는 고부 사람들을 만난다.
박태원과 송기숙의 소설 이전에 다른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수준 높고 선구적인 작품을 들어보라면 나는 신동엽의 {금강}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사람 사랑을 서사시의 전개에 포함시킨 그의 통찰은 김지하의 생명사상으로 이어지며 민족시의 한 형태를 규정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껍데기는 가라]와 [4월은 갈아엎는 달] 같은 시들은 그의 시심이 어떤 지향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던가를 보여준다. "중립(中立)의 초례청"과 같은 구절이 생생하게 그려내는 정치와 성의 결합은 그것이 반정치적으로 사용되는 절묘한 역설을 통하여 냉전을 해소시키는 자주적인 행위로 승화한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는 중립의 의미를 처음 이렇게 풀어냈다는 조태일 시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신동엽의 성취는 냉전의 모순을 꿰뚫어 보았던 드문 시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서 이미 드러나지만 수운과 해월의 사상이 전봉준과 함께 봉기하였던 농민들을 이끈 실질적인 바탕이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대의 정신을 추적함으로써 변혁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백주년을 앞둔 1993년 겨울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는 시선집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를 펴냈다. 여기에는 1920년대 이후에 발표된 시 가운데 동학농민혁명과 관계가 있는 시들이 90여편 실려있다. 여러 시인들이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지만 조운과 김관식을 예외로 한다면 대부분의 시들은 신동엽 이후에 쓰여진 것들이다. 이것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강요했던 식민지와 해방 이후의 편견이 사건에 대한 언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민주화의 과정과 겹치는 것에서 민주화 운동의 영향이 여기에 미치고 있음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길게 보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반대의 흐름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선집에 실린 시들은 분노와 투쟁과 좌절의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양성우의 [만석보]가 그리는 것처럼 부분적인 승리의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이 시대의 독자에게 그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렇다면 사건의 발견이 아니라 정신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선집에 실린 시들은 상당수가 신동엽의 직관에 못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섣부른 일반화의 함정과 부족한 독서량을 두려워하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혁명은 사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파장에 의해 가치를 평가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또는 미완의 혁명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결정적인 계기로 받아들여진다면 적어도 시를 통하여 나타나는 동학농민혁명에는 인식의 전환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시선집을 보는 이렇게 볼 수 것은 최원식의 [발문] 덕분이다. 여기서 최원식은 분명하게 "포괄적인 시각"과 "장려한 서사시적 화폭"을 요구하고 있다.
전봉준 장군의 유작시를 가묘 앞의 비석에서 처음 읽었던 때가 떠오른다. 다시 생각의 변화와 흐름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의 죽음이 아니라 백성과 정의를 사랑했던 나라 위한 붉은 마음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상이다. 시선집에 있는 번역과 원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기념사업회의 웹싸이트(http://www.donghak.ne.kr)를 찾아가면 다른 시들도 읽을 수 있다.
때 만나서는 천지도 내편이더니
운 다하자 영웅도 할 수 없구나
백성사랑 올바른 길 무슨 허물이더냐
나라 위한 붉은 마음 그 누가 알리
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愛民正義我無失
爲國丹心誰有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