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1.6 | [문화저널]
【여성과문화】 고단한 농촌의 삶,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정읍 여성농민회
글/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1:35:45)
지금 농촌의 들녘은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우리의 먹거리 생산을 위해 한결같은 손들이 정신없이 오가는 1년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바쁜 일손을 잠시 뒤로 하고 모여든 정읍여성농민회 김수경 회장을 비롯해 김성숙, 박연희, 강윤정, 김정희, 박정인씨. 농촌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농민. 실제로 여성농민은 노동에 있어 생산주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만 여전히 농업활동의 보조자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 녹록치 않은 현실속에서 각 읍면지회 2백여명 회원들로 구성된 정읍여성농민회는 올해로 창립 12년을 맞고 있다. 지금은 오랜 역사와 많은 회원들을 자랑하지만 정읍여성농민회의 출발은 참으로 작은 모습으로, 쉽지 않게 시작되었다. 80년대 후반 1군 1조직이라는 경직된 사고 아래에 놓인 농민회안에서 또다른 조직을 건설한다는 것이 분파적인 행동이라는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절도 있었지만 분명 여성농민으로서 고유한 영역의 존재는 그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읍여성농민회는 얼마전 ‘정읍시 농촌지역 가정 폭력 실태 및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도시 여성들의 각종 실태 조사는 종종 있어왔지만 여성농민의 삶에 근접한 조사작업이나 토론회 등은 드문 것이 사실. 그런 탓에 이번 조사와 토론회는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농촌은 오히려 도시에 비해 뿌리깊은 봉건성이 남아 있어 남성의 폭력이 당연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어서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무방비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여성농민이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정도나 대응 등에 관한 조사나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죠." 이번 조사작업은 정읍시 15개 읍·면 지역 여성농민 3백33명을 대상으로 1대 1 면접을 통해 회원들이 직접 조사를 했다.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발품을 판 덕에 이번 조사작업과 토론회는 반응이 좋았다. 그렇다해도 조사기간 "요즘 누가 맞고 사느냐"며 구박(?)을 해대는 남편들과 정작 토론회 자리에 남성농민들의 참여가 적었던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예견했던 것보다 실제 가정폭력의 골은 깊었고, 여농에서는 후속작업으로 정읍에 성폭력상담소 개설 추진을 건의, 공동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자살이나 가출로 이어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쉼터' 운영이 절실하지만 현재로선 참여 인력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번 조사나 토론회도 그렇고 창립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지방농정과 여성농민' 정책토론회 등은 주로 농업문제에만 주력해온 그간의 활동과 함께 여성문제로 접근한 여성농민회만의 고유한 영역이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함께 한 결과들입니다." 이밖에도 정읍여성농민회의 사업은 다양하다. 유기농법을 비롯해 환경농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환경수련회'를 개최, 환경농업장 방문과 교육을 통해 우리 땅과 먹거리를 살리는 일에도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원들을 비롯해 여성농민들의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자녀들의 보육과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백방'으로 뛰어보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토로한다. 초등교육 이상은 지역안에서 해결하기 힘든 것이 현실일뿐더러 농촌학교 통페합으로 그나마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여건속에서 아이들과 소중한 땅을 함께 일구며 살아가고 싶은 희망은 좌절되기 마련. 보육시설이나 학교 시설에 대해 수차례 건의를 해도 관계기관에서는 매번 어렵다는 대답뿐, 어쩔 수 없이 큰 돈 들여 아이들을 도시로 내보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굵직굵직한 성과들을 낳아가고 있지만 활동을 하는데 어려운 문제들은 쉽사리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 1인 다역을 해야하는 여성농민의 삶은 이들의 활동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농민회 일로 외출한번 할라치면 며칠전부터 가족들에게 못을 박아두어야 하고, 모임 자리에는 품에 안긴 아이들이 어김없이 함께 한다. "눈치 보면서 아이들 줄줄이 매달고 모임에 한번 나오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여성운동과 농민운동이 결합된 이런 활동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든 서로 나누고 있고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에서는 찾기 힘든 희망이 보이는 거죠. 다들 안그래요?"라며 한껏 웃음을 보이는 정읍여성농민회 회원들. 꽤나 무거울법한 짐이 놓여있을 몸과 마음이어도 '우리한테도 희망이 있는 거 맞지?'라며 서로에게 말은 건네는 사이, 다시 태어나도 우리 먹거리 거두며 농민회 활동을 할거라며 기세좋게 장담을 하는 사이 고단한 농촌 들녘에서는 작은 희망들은 이미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