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서평]
『역사적 예수』신(神)이 된 사람 예수
글/ 양진규 전북기독교사회복지연구소 소장·목사
양진규/ 한신대 신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사(2004-02-19 11:33:37)
'역사적 예수'라는 책은 역사적인 책이다. 학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훌륭한 학문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저작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감히 '하나님의 선교'의 동역자가 되겠다고 간 신학대학의 첫 신약학 시간, 작고하신 안병무 박사님의 강의가 되새겨진다. "부활?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난 그런 부활은 안 믿어. 그런 부활 신앙에서 진정한 부활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어? 나와 당신들과 2000년 전에 죽은 예수를 논하고 있는 지금 이 사실이 부활의 확실한 증거지!" 엄청난 충격이었다. 단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정확히 말하면 한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받아들였던 교리(敎理)에 대한 생각을 부수는 파괴적인 도전이었다. 부정의 부정을 통해 증폭된 진리로 접근하는 방법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역사적 예수'는 독자들에게 내가 받은 엄청난 도전의 경험을 하게 해줄 것을 확신한다. 역사적 예수라는 용어 자체가 암시해주듯이 이 말은 '비역사적 예수', 즉 신약이후 기독교 전통 안에서 선포(케리그마)되어 왔던 예수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이 역사적 예수를 다루는 신학은, 모든 것에 우선하여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했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기독교의 모든 전통에 대한 철저한 비평이 가해지던 시기에 시작된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의도를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즉 부활 이후에 주님으로 숭배되기 시작한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며 은총을 내려주는 절대적인 권력으로 선포되었다. 역사적 예수의 인간적인 얼굴은 사라졌다. 예수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은 권위적인 하나님으로 변할 위기에 처해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는 자유주의 신학의 좌절된 시도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부에 일어난 새로운 신학 방향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고 예수가 누구였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참된' 예수에게 다가서는 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학문이 교권과 화석화된 교리의 속박에서 벗어나 학문의 비평적 기능을 강조함으로서 진리로 접근하려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복원으로 이해되어 그 연구 성과와 발전이 기대되어 진다.
이 책은 논의의 수준이 현실교회의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예수 탄생에 대한 성서 구절은 간단하게 '유아기 설화' 취급하고, 부활에 대한 논쟁도 몸의 부활은 전제하지 않는다. 다만 기독교의 소중한 교리를 업신여기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설화의 의미와 부활의 현재적 의미를 재해석하고, 역사적 예수와 고백되어진 예수사이의 간극을 무리 없이 메워간다. 누구도 쉽게는 무시하지 못할 방대한 자료(861쪽)와 짜임새는 저자의 주장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역사적 예수'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리인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成肉身)의 명제에 도전한다. 오히려 '사람의 아들'이 위대한 생애와 죽음을 통해 '메시아'로 추대되고, 부활사건을 거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됨(로마서1:3-4)으로서 제자들과 후대 예수 공동체에 의해 하나님과 동격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어 가는 과정을 학문적으로 증거한다. 여기에는 무조건 믿으라는 신비주의적인 강요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의 비이성적 경향에 대한 비아냥거림도 없다. 다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역사비평)과 관련된 자료(자료비평)연구에 대한 자신감으로 담담하지만 당당한 주장이 전개될 뿐이다. 비천한 신분인 사람의 아들 예수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메시아가 되고 하나님과 동격이 되는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신(神)이 된 사람 예수'와 독자인 '나'와를 동일화(同一化)과정을 밟게 하여 일반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비밀을 가르쳐준다. 역사적 예수가 예수 이전과 당시의 많은 예언자(=先知者)와 다른 점은 종말론에 대한 자세이다. 예수도 또 예언자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완성으로서의 종말을 선포함은 동일하다. 하지만 예언자들의 선포는 대중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어 희망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면, 예수는 '자신의 활동 속'에서 새 세상이 열리고 있음을 확신하고 하나님 나라의 주인임을 스스로 선포한다. 이 자세가 예수와 기존 예언자들의 구분점이고, 이 관점이 기존 교회의 교리와 '역사적 예수'가 다른 점이다. 하나님 나라가 초자연적 인물인 '메시아'가 와서 이루어지는 타율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 내 자신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여 이루어 가는 것으로 볼 것인가는 엄청난 차이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종말의 역사, 즉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다(고린도전서3:9). 예수는 우리에게 사람이 하나님과 동격이 되는 법을 죽음으로 가르쳐 주시고(요한5:18, 10:33), 그것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사(硏究史)이며 학술저작이다. 그러나 신학자들만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서문에서 밝히듯이 "신약성서 연구 집중과정"의 산물이고 모임의 지도자인 게르트 타이쎈과 모임에 참여했던 여학생 아네테 메르츠의 공동 저작이다. 이들은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 신학자나 평신도, 전문연구자나 학생 모두에게 비교적 합의된 내용을 전달할 것을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혼자서, 혹은 소그룹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교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책이 만들어 진 것이다.
이 책은 본격적인 신학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와 일반인들이 많이 읽어보기를 원한다.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또 목회현장에서 느낀 것은 신학적 내용들이 왜 정작 현장에서는 사장되고 신앙과 신학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교한 신학이 신앙을 더욱 뜨겁게 하고, 뜨거운 신앙이 신학적 통찰력을 높이는 상호작용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 뿐 아니라 평신도들도 신학을 공부해야 목회자도 살리고 위기 상황인 한국의 교회도 산다. '역사적 예수' 저자들이 보여 준 신학의 대중화 작업이, 중세 암흑기를 뚫고 나온 종교개혁자들의 사제에게 독점된 성서를 평신도에게 읽히기 위한 성서 번역작업과 같은 성과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책이 한국교회의 본질회복운동에 커다란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