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문화저널]
【문윤걸의 음악이야기】
김광석 <서른 즈음에> 일상에 사랑을 느끼다
문화저널(2004-02-19 11:21:40)
김광석이 새롭다. 포크 음악의 끝 무렵에 앉아 하모니카 하나 입에 물고 기타줄 튕기며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그가 그립다. 훌쩍 세상 버린 지 어언 다섯 해. 잠깐 사이에 그는 세간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런 그가 그럴싸한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다운 모습으로 부활했다. 절규를 해도 시원찮을 만큼 숨막히는 남북한의 현실을 '파르라니 슬픈 머리의 이등병이 뒷동산에 올라서서 눈길로 더듬는 우리 마을' 같은 청아함으로 말이다. 좋은 영화 한편도 반갑지만 김광석이 되돌아 온 것이 더 반갑다.
김광석은 많은 노래를 남겼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고 여러 번을 들어도 그때마다 늘 새롭게 들린다. 달라지는 내 삶에서 늘 다른 노래로 들리는 것. 그의 노랫말은 아름다움을 가장하거나 감상을 꾸며내지 않는다. 그저 삶의 주변을 재구성할 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이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그렇게 양식이 되고 싶었나 보다. 요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자주 듣게 된다. 일부러 찾아 듣기도 하지만 우연인지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 뿜은 담배연기처럼..."으로 시작해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로 끝나는 순간까지 어느 한 구절 숨막히지 않는 곳이 없다. 난 이미 서른을 훨씬 지났다. 내 서른 즈음에는 '잔치가 끝났다'라는 화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잔치를 계속하고픈 욕심에, 그리고 잔치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나름의 '사명감'으로 지나온 날들을 성찰할 기회가 없었다. 서른을 훌쩍 넘겨버려 이젠 서른이라는 감흥마저 퇴색해버린 지금, 이 노래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많은 날들을 지나보내면서 매순간 붙잡고 싶은 것들에 욕심을 낸다. 하지만 김광석은 그런 우리를 보며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권한다. 그저 앞만 내다보며 줄곧 달리는 동안 "머물러 있을 것 같던 청춘도 가버렸고", 많은 것을 채우고 손에 붙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비어가는 가슴속에서 무얼 찾을 수 있느냐"고 날카롭게 질문한다.
그러나 우리라고 지나온 세월의 소중한 것들을 그냥 내버리려 했겠나? 김광석은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하며 우릴 달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떠나가는 하루 하루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일상과 이별하며, 일상은 우릴 떠나 그렇게 또 멀어져 간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일상은 그렇게 매일 우리를 떠나 멀어져가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이 노래가 깨우쳐준다.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 발견한 일상에 대한 애정을 나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 의미를 깨우치지 못한 채 매일 이별만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