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문화저널]
【 특별꼭지 】 풍남제
절반의 성공, 그러나 갈길이 멀다
'난장' 이미지 구축…집단 정체성 확보는 미흡
글 장세길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1:04:06)
오랫동안 걸어왔던 길을 버리고 새길을 찾는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여행에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길은 어느새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고, 익숙한 일상이 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43년이라는 시간동안 걸어온 길이라면? 올해 풍남제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이유도 그래서다.
과거와 현대의 딜레마?
전주풍남제는 단오날 열리던 전통축제임에도 불구하고 강릉단오제에 밀렸던 것이 사실. 그렇다고 전주시민의 날이나 전면에 내세운 전통문화의 큰잔치라는 이미지도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대신 시민들에겐 '풍남제는 곧 난장'이라는 생각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난장은 난장판'으로 전락했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급기야 "획기적인 대안이 나올때까지 난장을 열지 않겠다"며 강한 의지도 보였지만 지난해 선을 보인 난장은 기대이하라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였다. 여기에는 풍남제의 방향을 선회시키기엔 '43년이라는 역사가 너무 크다'는 점도 무시못할 이유중의 하나였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관성의 법칙'이 축제에도 적용된 셈. 결국 난장에서 번진 불만의 불씨는 풍남제 전체로 옮겨 붙었고, 대대적인 개혁의 목소리는 그만큼 드세질 수밖에 없었다.
풍남제전위가 '메스'를 가장 먼저 댄 곳이 이점이다. 전주시민의 날, 단오제, 전통문화축제, 관광축제, 난장이라는 중구난방식의 컨셉을 '난장'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엮어낸 것. 그리고 일단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전북대 이정덕 교수(문화인류학)는 "풍남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는데, 그 이미지를 '난장'으로 특성화시켰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축제의 시대에 차별화를 이끌 이미지 구축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일부에선 "전주의 색깔을 잃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시조병창이나 서화와 한시백일장 등 2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행사 대신에 "이벤트만 남았다"는 비난도 불거졌다. 성황제를 없앤 것에 대해서도 시비가 엇갈렸다. 일부 관계자만의 형식적 행사를 없앴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풍남제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혔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았다. 이는 축제가 가지는 '제(祭)'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은 채 '볼거리 중심'에만 매몰되고 말았다는 '축제' 원론적인 접근에서였다.
축제의 기원은 종교적 특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카톨릭의 절제주간을 앞두고 벌이는 브라질의 삼바축제도 그렇지만 일본만 보더라도 축제마다 마을 신에 대한 기원과 주민들의 집단의식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성황제는 이런 '제(祭)'의 의미를 담은 풍남제의 대표격이었다. 이를 없앤 것은 창포물에 머리감던 풍습이 풍남제가 양력으로 날짜가 고정되면서 사라진 것처럼 역사를 간직한 풍남제의 정체성을 "내팽개친 꼴"이라는 비판을 불러오게 했다. 이에 대해 제전위는 "종교적 집단의식도 없고, 시민들의 실질적 참여도 없는 형식적인 과거의 의미보다는 현대축제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비판하는 이들은 결코 형식적인 '과거로의 여행'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들의 주장은 그 뜻을 잃어버린 '성황제'를 대신할 현대적인 '뭔가가' 있어야 함에도 아무런 대안없이 전통만 사장시킨 것은 아니냐에 모아진다. "전주시민의 집단 정체성을 위한 뭔가가 필요한데, 올해 풍남제는 가족과 함께 민속촌을 다녀온 것 이상은 아닌 것 같다"는 일부 평가도 이런 맥락에서 꼼꼼히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내년 풍남제 준비는 지금부터
이정덕 교수는 "남원시민들은 춘향이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풍남제나 난장에 대한 전주시민의 인식은 극히 미약하다"고 진단한다. 이 차이가 춘향제와 풍남제에 대한 평가를 갈라놓는 결정적 이유라는 얘기다. 이는 전주시민의 집단적 정체성을 엮어낼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올해 풍남제는 저자거리 난장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늘어났다는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냈다. 풍남제전위가 실시한 설문조사(4월 30일-5월 6일, 561명 대상)를 보면 지난해에 비해 나아졌다는 응답이 58.3%로 나타났다. 저자거리 난장 등 체험프로그램이 한몫 '톡톡히' 했음을 보여준다. 개장시간을 늘리고, 야간 공연과 섹션별 행사를 활성화시킨 점, 그리고 퍼레이드 등 전통에서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볼거리도 시민들의 발길을 풍남제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이 '떡메치기'나 '투호던지기' 등 단편적인 참여에 머물렀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 대표격이 4월 26일 전주문화축제 전야행사로 열린 '온거리맘판'. 당초 주최측은 형식적인 전라감영행차 대신 전주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퍼레이드, 온거리맘판을 준비했다. 한달여만의 준비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고, 결국 전라감영의 '썰렁함'을 극복했다고 보긴 어렵게 됐다.
전문가들은 올해 풍남제가 비교적 '성공'이라는 평가를 얻어냈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다고 말한다. 전주시민의 자발적 참여뿐만 아니라 컨셉으로 정한 '난장'이라는 이미지 작업은 지금부터라는 얘기다. '헤쳐 모여' 식으로 3∼4개월 전에 행사준비팀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그리곤 이렇다할 활동이 보이지 않는 제전위의 조직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주장도 그런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