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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 | [문화저널]
【특별꼭지】 '작고 정교한 영화제가 아름답다' 전주국제영화제 2001, 무엇을 남겼나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0:58:20)
전주국제영화제 2001이 선택한 '래디컬'이 '영화가 우리 삶에 무엇이었나'를 묻는 의미지향적 성찰이라면, 전주국제영화제가 걸어온 2년여의 발자취는 '영화축제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뒤돌아 보게 하는 목표지향적 과제를 남겼다. 김소영·정성일 두 프로그래머의 사퇴로 개최여부마저 불투명했던 전주국제영화제 2001이 퀴어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서동진씨를 긴급 투입시키면서 천신만고 끝에 두 번째 항해를 시작했던 것이 지난 2월. 불안한 출발이었던 만큼 새 프로그래머 어드바이저인 서동진씨의 능력과 스텝, 자원봉사자들의 노하우가 더욱 긴요했던 영화제였다. 지난 4월 28일~5월 3일까지 영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전주국제영화제 2001. 잦은 영사사고와 티케팅 지연, 홍보 부족 등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지난해에 이어 그대로 재현되었지만, '대안'이라는 컨셉에 걸맞는 차별화된 섹션과 독특한 색깔의 상영작들을 내놓아 내용면에서는 한 단계 성숙된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특히 영화 안에서의 '대안'을 내세우며 여타의 국제영화제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던 전주국제영화제. 그 구체적 외피는 '디지털'과 '아시아 독립영화' 등으로 드러났고, 올해의 경우 '래디컬(Radical : 급진성)'이라는 컨셉을 도입, '대안'이라는 모호한 구호를 보다 구체화시켰다는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이같은 평가는 다소 버겁고 어려운 주제가 될 법한 '급진 영화'가 일반인들에게는 새로운 영화 영역을 만나는 독특한 체험의 기회로, 영화 전문가와 마니아들에게는 기억의 뒤안으로 밀려나 있던 값진 필름들을 새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으로부터 이어진 것. 이 가운데 '포스트 68'이나 독일의 파스빈더 감독 회고전, 오가와 신스케 감독 회고전 등은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장 인상 깊은 섹션이면서 좋은 기획으로 꼽혔다. 영화가 갖는 예술적 가치와 미래적 대안을 고려할 때,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2001의 선택은 영화의 현재를 묻고, 영화인들의 자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영화제가 추구해야할 또 다른 한 축에 충실했다는 것이 영화 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이같은 평가는 영화제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당면했을 때에는 그 결과가 상당 부분 엇갈릴 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져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1회 영화제를 치르는 동안에도 전주국제영화제가 시민을 선택할 것인지, 영화 마니아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쟁점은 남아 있었고,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2001의 화두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는 시민 프로그램이나 지역 문화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들이 영화의 거리 메인 무대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풀어지면서 지난 1회 대회가 남긴 '권위적 영화제(?)'로서의 부정적 이미지를 적잖이 불식시켜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지역의 문화인력을 메인 무대 행사를 통해 다양하게 활용한 점이나 시민들이 직접 준비했던 시민영화제가 올려졌다는 점 등은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대내외적으로 드러내 보인 기회가 됐다. 영화 외적 요소, 시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로서의 내실은 지난 대회보다 그 가능성과 역량면에서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시민 참여형 행사의 다양한 시도에 힘입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예매문화의 정착이나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관람객들의 진지한 '영화 보기' 역시 이번 영화제가 남긴 또 다른 교육적·체험적 성과물로 보여진다. '래디컬'이라는 급진영화가 주류를 이룬데다 '다큐멘터리'라는 다소 무거운 장르를 주요 섹션으로 배치하면서 일반 관객들에게는 이번 영화제가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온게 사실이지만, 각 섹션과 연계된 포럼이 마련돼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접근의 기회를 제공해 줬다는 점에서 '관객 서비스'에 충실한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포럼에 대한 참여율 저조나 홍보 및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해 의도했던 바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적잖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많은 영화인들과 지역 문화인들은 210편에 달하는 상영작들이 오히려 각 섹션의 정교함을 해쳤다는 점에서 '작지만 내실 있는 영화제'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특히 '대안 영화제'에 맞춘 다양한 모험과 시도는 영화전문가와 마니아들을 위해 전문 프로그래머가 새롭고 참신한 섹션으로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만큼, 메인 프로그램은 보다 대중적으로 낮춰 '시민성'을 보완해 가자는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전주국제영화제 2001이 시민들의 참여와 객석 점유율 면에서 지난 1회 대회보다 약진했다는 분석이다. 열악한 상영 시설과 이로 인한 수차례의 영사사고가 이어졌음에도 객석점유율은 지난해보다 3% 가량 증가한 전체좌석 대비 86%로 나타났다. 영화제조직위원회가 잠정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입장객수는 8만2천7백17명. 총 좌석수가 지난해(13만 4천9백84석)보다 적은 11만 5천6백13석이었지만, 실제 객석 점유 비율은 지난해보다 높아졌다고 밝혔다. 지난 1회 대회의 관객 점유율 면에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우리 지역에서 '영화제'가 열린다는 단발적 호기심이 관객 유도에 적잖이 기여하지 않았겠느냐는 조심스런 우려도 제기된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2001의 관객점유율이 지난해에 비해 약진했다는 점은 영화제를 지속적으로 즐길만한 '알짜 수요층'이 일정 부분 확보됐다는 것으로도 풀이해 볼 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2001이 여러 가지 성과와 한계를 재 확인한 채 막을 내렸지만, 무엇보다 전주영화제만의 정체성과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 목표점, 그리고 영화제를 치러낼 만한 하드웨어의 구축 등은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선명한 과제로 떠올랐다. '대안'을 앞세워 기존 영화제와의 차별화 전략이 어느 정도 주효했다는 것과 디지털을 앞세워 영화의 미래적 이미지를 굳혔다는 점에서는 이번 영화제의 성과가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추구해야 할 목표점은 분명히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시민에 대한 문화 서비스 제공과 한국 영상 산업에의 파급력 제고, 도시 이미지 구축 등 영화제가 추구해야할 다양한 지향점들이 있지만, 전주영화제가 무엇을 우선 순위의 목표로 설정해야 할 것인지는 전주시민과 영화 조직위, 서울과 지역 인력간의 충분한 교감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통을 앞세운 전주라는 도시에서 왜 하필이면 '급진 영화'가 상영되어야 하느냐"라는 한 시민의 극렬한 물음에서부터 "영화산업 발전에 전주국제영화제의 위상은 무엇인가. 영화 제작자 및 배급업자들과 구매자들을 연결하는 마켓으로의 역할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라는 한 영화 전문가의 불만, 그리고 "영화전문가와 비평가들의 어려운 구호가 난무해야만 영화제인가. 이해하기 어렵다면 시민은 그저 '무식'해서만인가"라는 한 시민의 성토. 영화제에 대한 이같은 불만과 회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무엇을 지향하고 목표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여기에 낙후된 상영시설과 티케팅 지연, 교통 및 숙박시설 등 영화제를 치를 만한 인프라 구축 역시 전주시가 장기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시급한 과제로 남았다. 또한 영화제 조직위의 인력이 대부분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체결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투입된 인력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갖지 못한데서 오는 잦은 인력 교체 등은 '영화제 전문가' 양성이나 노하우 축적 등에도 적잖은 손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드러낸다. 부족한 인프라를 보완하며 장기적으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데 투자하지 않는다면 영화제는 해마다 인적 구성과 행사의 성격이 바뀔 수 있는 위험요소가 언제 어느 때 돌출될지 모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전주국제영화제 2001이 막을 내린 시점에서 전주국제영화제만의 위상과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운영과 내용을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채워갈 것인지를 뒤돌아 보는 다분히 목표지향적 성찰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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