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사람과사람]
아름다운 날개짓, '소통'을 부르는 손짓 사랑
전북농아인협회 최현숙 운영실장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0:54:54)
털어버리면 그만인 것이 마음의 빚이라고 하지만, 깊은 속내에서 두고 두고 사랑의 불씨를 지펴 올리게 하는 것도 마음의 빚이 지닌 묘한 힘이 아닐까.
갚아 나갈수록 가득히 채워지는 마음의 빚. 전북농아인협회 최현숙 운영실장(39)은 그렇게 십수년 동안을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농아인들과 부대끼며 함께 울고 웃은지 십팔년. 만약 '천직'이 있어 하고자 하는 일,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모두가 누군가의 삶에 자연스레 인연을 맺어 주고, 그 누군가가 그 인연에 충실해 왔다면 아마도 최 실장의 일과 삶이 그러할 것이다.
2남 5녀 가운데 앞뒤로 언니·동생 세명이 모두 농아인. 소설같은 '가족력'이지만 그의 삶을 농아인 곁으로 끌어당긴 것도 이 기막힌 사연 때문이었다.
"어릴땐 못된 언니였죠. 위로 언니 둘은 나이 차이도 많고 떨어져 살았지만, 동생은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에 저한테 괴롭힘을 많이 당했어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농아인 동생이 창피해 방안에 문을 잠궈 가둬둘 정도였으니까요. 화장실을 못 가 하얗게 질려있던 그 얼굴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아요."
철이 들면서 그는 동생에게 진 빚을 갚는 마음으로 그렇게 농아인들과 자연스레 인연을 맺어왔다. 서울신학대를 다니며 목회자의 꿈을 키워오다, 우연히 휴학기간을 이용해 수화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랄 수 있을 터였다.
"그때가 아마 84년인가 그랬을 거에요. 몸이 아파 잠깐 전주로 내려왔다 우연히 전국 농아인 축구대회 수화 자원봉사로 일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제 일이 된거죠. 목회자의 꿈도 소중했지만 장애인을 둔 가족의 한 사람으로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전북농아인협회와 인연이 닿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농아인들을 위한 통역과 수화·문자·컴퓨터 교육 등의 기본 교육에서부터 일반인 수화 강좌, 농아인 자녀들을 위한 유아원 운영 등 때론 달고 때론 쓰기도 했던 숱한 열매들을 영글게 했다.
특히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자랑스러운 수화 통역사 월급제 도입이나 농아인 자녀들의 유아원 개설, 수화 교육용 CD 제작 등은 전북농아인협회가 일궈놓은 큰 수확이자 그에겐 더없이 소중한 '훈장'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보람도 컸지만, 안타까움도 적지 않았다. 그가 부대끼며 느낀 농아인들의 삶은 일반인들이 미루어 짐작하는 불편함 이상의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농아인들 모두가 수화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들 중 60% 이상은 수화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어요. 일반인들은 단지 듣지 못하는 것 뿐인데 그게 그리 큰 장애가 되느냐고 하지만, 평생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걸 한번도 제대로 표현해 보지 못한다는게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 저린 일이겠어요. 저희 통역사가 소통을 도와주긴 하지만, 그 사람의 의사를 100% 전달하지는 못하잖아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이 현재 전라북도 지역에만 5천여명. 늘상 소통이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수화 통역사들은 교통사고 현장이나 병원 등 다급한 때에 주로 투입된다.
"혼자 시작한 일이 지금은 일곱명으로 늘었어요. 여기에 비상근 통역자가 30명 정도인데 이 인원 가지고도 5천명을 다 커버하기가 무척 벅차죠. 하지만 직원들 모두 필요하다면 한 밤중에도 군말 없이 달려가곤 해서, 제가 다들 '천사'라고 불러요. 하지만 가끔 농아인들과 오해도 생겨요. 특히 교통사고 현장에서는 수화 한 토막 잘 못 전달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니까요. 농아인들은 마음이 틀어지면 눈을 감아 버려요. 수화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고, 이것은 곧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표현이거든요. 일반인들은 말로 오해를 풀지만, 농아인들이 눈을 감아 버릴 때에는 정말 답답하죠."
어려운 길이지만 그는 누구보다 농아인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일반인들 사이에 수화 배우기 열풍이 점점 가열되고 있어 무엇보다 다행이지만, 그는 몇 가지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고 말한다.
"초중고등학교, 관청, 대학 등 수화열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건 정말 다행이에요. 하지만 호기심으로 시작하는건 곤란해요. 수화는 농아인들의 언어니까요. 강좌나 강의에 나가서 저는 늘 이 점을 강조해요. 언어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진지하게 배우는 자세로 임해 달라는…"
농아인들에게 수화 통역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늘 곁에 있어야 할 벗이기도 하다. 늘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들의 진정한 벗이 되겠노라 말하는 그에게 몇 가지 꿈이 있다면 그것 역시 농아인들을 향해 있다.
수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 통역사 없이도 농아인들이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는 사회, 계약기간에 따라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될 농아인 전용 복지관 건립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도 미워했던 동생 미경씨의 행복이다.
"미경이가 행복하면 모든 농아인들이 행복할 거에요." 가끔 수화로 꿈을 꾸기도 하고,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온 가족이 수화로만 얘기한다는 그. 농아인들 속에서 사람됨을 얻었다고 말하는 그의 손짓 사랑은 지금 어딘가에서도 '소통'이라는 아름다운 날개짓으로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