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1.6 | [문화저널]
【 특별 기획 - 전북의 땅과 문화, 사람들 】 남원 춘향이와 국악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이곳에서 국악은 먹고 사는 문제다
글 장세길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0:52:04)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포근히 내리던 날. '사랑의 도시', '춘향의 고장'이라는 남원은 축제가 한창이었다. 우산을 받쳐든 이가 무색할 정도로 남원 시내 곳곳은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춘향제의 열기로 넘쳐났다. 시내 한복판 사거리를 떡하니 막고 벌어진 판굿은 춘향제와 남원의 관계를 실감케 하는 대목. 도시에 비해 좁은 시내도로 곳곳이 막혔지만 행인이나 운전자의 불평은 들을 수가 없었다. 춘향제는 그들의 자랑이며, 그 자랑을 위해 불편함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춘향제의 겉과 속 춘향제는 남원을 대표하는 축제이자, 이미지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춘향이 모르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며 자신만만해 하는 한 촌로의 말처럼 춘향은 정절의 상징으로 우리들에게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춘향은 다시 남원이라는 도시와 이어져, 남원과 춘향은 동일한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여기에 어느덧 춘향제가 70살을 훌쩍 넘긴 '원로급' 축제니 그 명성이야 오죽할까. 여기저기 쉽게 보이는 외지 관광버스와 외지차량 번호를 보며 춘향제가 끌어들이는 외지 관광객의 발길의 정도도 능히 짐작케 된다. 최근 3∼4년 전부터는 '정절'로 통하는 춘향의 이미지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남원사람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일부종사'는 오늘날에도 그 순수성을 받아들일 순 있지만, 세계적인 관광축제로 승화시키려는 남원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화'에는 어딘지 모를 부족함이 느껴졌을 터. '정절'이라는 정서가 세계인의 머리속에선 '우매함'(?)으로 비쳐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랑'의 이미지는 지난해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과 남원 어귀나 관광책자를 제외하곤 실상 현실에선 만나기 어렵다고들 얘기한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라곤 하지만 춘향제 행사 면면을 들여다보면 어느 축제에서나 볼 수 있는 판에 박힌 행사들의 나열이라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점이 최근 남원시의 고민이자 남원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목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관광객, 머무는 관광이 아닌 그져 스쳐 지나가는 관광, 춘향이 곧 남원이지만 그런 이미지를 '팔아야' 할 문화상품의 절대적 부족 등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 비해 남원사람들이 갖는 이런 우려는 상대적으로 더 크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듯 남원은 말 그대로 '관광도시'이고, 1931년 읍이 된 이후 70여년을 줄곧 춘향이를 '팔아왔고', 지금도 문화정책이 관광으로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줄어드는 관광객'은 남원사람들의 한결같은 고민거리인 셈이다. 이에 대해 남원문화원 이석홍 사무국장은 이 이유에 대해 한 신문의 글에서 관제화의 문제점을 꼽는다. 시립국악단 황의성 단무장은 "남원사람들은 학생시절 대여섯번은 춘향제 퍼레이드에 동원돼 그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전북대 이정덕 교수의 설명처럼 은연중에 춘향제에 대한 의식이 남원사람들의 머리에 아로새겨지고 그것이 춘향제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원동력도 이제는 더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석홍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관제화는 남원사람들의 혼이 담긴 축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국 "전국최고의 연륜을 자랑하고 남원 최고, 최대의 행사지만 대중에게 얼마만큼 접근해 있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외국대사들이 참석하고, 텔레비젼에서 떠들어대고 해서 남들이 보기엔 크게 성공한 것 같아보이지만, 실제론 속빈강정이다"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할 정도다. 그러나 그이는 한편으로 "남원은 어느 도시보다 몇 갑절 많은 문화적 잠재력과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며, "이것을 개발만 하면 관광도시로서의 남원은 급성장할 것이다"고 희망에 찬 목소리를 던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남원을 대표하는 또 다른 이미지는 많다. 가짜가 판을 친다는 남원 목기, 춘향제와 함께 그 태생지로 일컫어지는 흥보전과 변강쇠전, 신비의 물 고로쇠 약수, 4백년전 일본에 전해진 남원도자기, 남성적인 힘과 빨치산의 아픔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지리산과 철쭉, 또 다른 별미 추어탕 등 전통문화에서부터 수려한 자연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그 중에 대표격이 판소리와 풍물이다. 동편제의 탯자리에 더해지는 풍물가락 판소리의 중시조로 일컫어지는 가왕 송홍록이나 강도근 명창, 춘향전·흥보전·변강쇠전의 고향. 하지만 굳이 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 곁에서 판소리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남원과 끈이 닿아 있다. 동편제의 탯자리로 다른 고장사람들은 남원사람들이 "판소리 한 대목은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남원사람들이 갖는 판소리의 애정은 춘향제에 버금간다. 풍물은 최근들어 활성화된 장르다. 남원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더해져 23개 읍면동에 하나 이상의 농악단이 활동하고 있어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다. 여기엔 개꼬리 상모돌리기의 명인 유명철씨의 활동과 국립민속국악원, 그리고 시립농악단의 역할이 컸다. 당초 남원 산동굿이 자생하고 있었지만 '춘향'이나 '판소리'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존폐기로에 섰었다. 그러던 중 유명철씨가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서 그의 탁월한 실력은 순식간에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고 남원농악이 사람들에 오르내리게 됐다. 또한 온누리 신협과 새마을 금고 풍물단의 지속적인 활동과 강습, 그리고 국립민속국악원과 시립농악단의 상설공연은 남원사람들에게 풍물의 진수를 유감없이 선사했다. 많이 접할수록 그 매력이 더해지는 법. 그렇게 풍물은 남원의 또다른 자랑거리가 됐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판소리의 대중적인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1년동안 국립민속국악원이 60∼70회, 시립국악단이 130여회의 공연을 펼치는 반면, 일반인에 대한 교육의 자리는 부족하다. 판소리 교육기관은 시립국악단의 12주 교육프로그램과 유영애, 이난초, 박양덕 명창과 두어개의 개인 강습소가 전부란다. 그나마 풍물은 나은 편.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청소년 풍물교실이 열려있고, 국악단과 남원농악보존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육이 열리고 있다. 국악은 또 다른 소외를 낳고 시립국악단 황의성 단장은 "남원에서 정치하려면 국악계의 힘을 얻지 않으면 실패한다"고 말한다. 다른 고장과 달리 관광도시를 지향하는 남원에서 국악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원시가 국악진흥계를 별도로 설치한 것만 봐도 능히 짐작이 간다. 또한 관광단지 음악분수대 무대에서 마련되는 야외공연에 적게는 8백명에서 많게는 2천명까지 남원사람들이 모일 정도니 이들에게 차지하는 국악의 위치는 실로 엄청나다. "추임새 모르는 사람이 없고, 손장단 정도는 누구나 한다"고 말할 정도로 모든 이들이 국악에 접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국악의 열기와 본의 아니게 드러나는 '문화편식' 때문에 다른 문화예술이 기지개를 못편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탯자리이지만 최명희 기념사업을 벌이는 것 외에 남원에서 만날 수 있는 문학의 열기는 극히 미약하다. 매년 열리는 남원예술제도 2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지만 예술인들의 1년 농사를 시민에게 보여주는 예술축제라기 보다는 외면받는 행사라는 지적이 많다. 예술인의 문제도 없지 않겠지만 그보단 국악중심의 문화정책이 드리우는 그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국악을 제외한 문화예술을 만나고 싶은 이들은 전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단다. 다른 고장에 비해 인근 대도시의 영향을 덜 받는, 자생력을 갖춘 도시지만 국악을 제외한 문화예술에 관한한 다른 고장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는 얘기다. 특이한 것은 1998년 10월 있었던 '한국도자기 일본전래 400년 불씨 나눔' 행사를 통해 도예문화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유재란때 일본에 끌려간 80여명의 남원 도공 중 43명이 오늘날 일본 미야나에 정착해 일본 4대 도자기 문화중의 하나인 사쓰마야키를 일으켰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그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심수관 도공(15대손)이 남원을 찾은 것은 그 결정적 계기였다. 하지만 이도 밑으로부터 키워진 자생적 문화라기 보다는 한때 쏠리는 '붐'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생겼다가 사라지는 연극단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극문화를 꽃피우려는 극단 둥지와 남원의 여러문화를 체험하고 보존, 연구하는 남원향토문화연구회, 그리고 '예향' 남원의 맥과 혼, 문화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문화원의 노력은 이런 문화편식에서 값진 활동으로 비쳐지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