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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 | [세대횡단 문화읽기]
"땀 흘리는 굿판, 신명나게 얼크러지는 축제의 굿판을 위하여"
좌우도 굿쟁이 유명철/이명훈(2003-04-07 09:31:36)
이명훈 / 선생님 참 오랜만에 뵙지요? 문화저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덕에 선생님과 함께 좋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유명철 / 10월까지만 해도 많이 바빴는데, 지금은 좀 숨통이 틔였어요. 여기저기 축제니 뭐니 행사가 많아서 정신없이 쫓아 다녔거든요. 요즘은 순창 국악원에 일주일에 두 번씩은 다녀야 되는 형편이고요. 이명훈 / 그럼 순창에서도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신건가요? 유명철 / 예. 나이 드신 노인들이나 가정주부들 중에 농악을 배우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제가 미력하나마 열심히 전수하고 있지요. 순창이 원래 좌도굿 터전인데, 아직 그 체계가 좀 미약하고 좌도굿이 제대로 정착이 안돼서 나를 그곳으로 초청을 한 겁니다. 순창에 농악을 제대로 한번 정착시켜 보겠다는 뜻 있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미력하나마 힘을 좀 보태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명훈 / 전라도는 우도굿과 좌도굿이 전라도 농악계를 이루는 든든한 두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서로의 고유 분야를 제대로 계승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로 교류도 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유명철 /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우도굿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반면, 좌도굿에 대한 이해는 아직까지 우도굿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근한 예로 좌도굿은 필봉굿이라는 인식이 아직 팽배하거든요. 한편으론 우도굿을 하는 사람들이 좌도굿을 굿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좌도굿의 다양하고 풍부한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그 점은 좀 아쉬운 부분이지요. 좌도굿이나 남원굿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을텐데, 우선은 선입견이 강한 것 같아요. 해마다 정읍에서 농악대회가 열리는데 저 역시 제대로 한번 가 보질 못했어요. 거긴 우도농악판이라고 생각되니까 잘 안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올해는 국악협회에서 참가요청이 많이 들어와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석을 했었는데, 저도 생각이 좀 달라졌지요. 정읍 김제 고창이 우도굿의 터전이긴 하지만, 그들에게도 좌도굿의 맛을 느끼게 해줘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판단이 옳았던게, 그곳에 계신 분들도 좌도굿을 보고 참 감명깊었다고들 얘기하시더군요. 이명훈 / 제가 보기엔 우도굿 하시는 분들이 좌도굿을 배척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유명철 / 직접 굿을 하는 공연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거기에 살고 계신 많은 분들은 대부분 그렇게 보는 경향이 짙죠. 아직까지도 그곳의 관객들은 "역시 우도굿이 최고다"라고들 많이 말씀하세요. 이명훈 / 젊은 사람보다는 어르신들이 그런 생각들을 많이 갖고 계시죠. 왜냐하면 어릴적부터 우도굿만 봐오고 익숙하니까 좌도굿이나 다른 굿판은 재미가 좀 덜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무엇보다 좌도굿을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요. 유명철 / 그런데 꼭 그런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대회나 행사 때 심사위원으로 여러 군데 참여해 봤지만, 그 심사위원들까지도 거의 다 우도굿하는 분들이예요. 그런데 좌도굿은 저 빼고는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분들이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심사위원들 중에 우도굿을 직접 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서, 심사할 때도 그런 영향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이명훈 / 그런데 저 같은 젊은 사람들이나 제 제자들만 보더라도, 좌도굿이 최고니 우도굿이 최고니 하는 구분이나 선입견은 거의 사라졌어요. 정읍이면 정읍, 남원이면 남원, 그 지역의 굿을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열정적으로 계승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지, 우리굿만 최고다 하는 생각은 실제로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서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좋은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유명철 / 그렇죠. 강원은 강원대로, 경기도는 경기도대로 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거니까요. 꼭 내가 친다고 내 굿만 선호하지 말고, 그 지역 나름대로의 굿판을 인정하고 굿만으로 평가를 해야지, 오로지 내것만 주장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의견들은 다들 인정하고 공감을 하는데, 결정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심사를 할 때는 그런 선입견이나 생각들이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명훈 / 그건 좌도굿 우도굿이 서로 배척하거나 인정을 못해서가 아니라, 경연대회에서나 나타나는 일부의 문제점이 아닌가 싶은데요. 유명철 / 그런 현실이 아직도 좌도가 우도에 묻혀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게 사실이지요. 물론 좌도보다는 우도가 전국적으로 많이 보급되고 전파된 이유도 있습니다. 예전에 전북의 여성농악단들이 우도를 많이 전파하고 보급을 했었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좌우도 모두 특색이 있긴 하지만, 다소의 차이는 있어요. 우선 우도는 상모도 그렇고 굿판 자체가 화려하고 멋이 있어서 눈으로 보는 재미가 많긴 하지만, 가락은 좀 단순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배우기도 쉽고요. 그런 반면에 좌도는 일례로 상모 쓰고 재주를 못 부리면 안되니까, 배우기에도 좀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지요. 이명훈 / 우도도 해보니까 그렇게 쉽지만은 않던데요. (웃음) 유명철 / 아, 물론 어렵지요. 농악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힘든 일이긴 합니다. 이명훈 / 어쨌든 저는 우도 농악을 하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우도나 좌도의 특징, 그리고 장단점 등을 논하기엔 제가 조금 부족한 면이 있을 듯 싶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자리에서 제가 가진 고민이나 선생님께 궁금했던 점을 묻고 싶었어요.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뵜던게 88년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요. 제가 그때 막 굿을 배우기 시작한 때였는데, 서울 공간사랑에서 공연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만 해도 선생님이 쇠를 놓아버리고 활동을 하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다시 쇠를 잡고 굿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뭘까 참 궁금했었습니다. 유명철 / 78년 전주대사습대회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임실 필봉의 양순용씨와 제가 팀을 꾸려서 대회에 나가 1등을 했어요. 그런 좋은 일이 있었는데도 그 이후에 집에 개인적으로 말 못할 우환이 생겨서 굿을 그냥 놓아버렸어요. 그러다 95년쯤에 남원에 있는 젊은 굿쟁이들이 좌도굿을 계승하겠다고 나름대로 연구를 하다가 힘에 부치고 한계가 있으니까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다시 굿판에 뛰어들게 됐고, 남원에서 굿을 가르치면서 다시 쇠를 잡기 시작한 겁니다. 제가 굿을 다시 시작한다고 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많이들 모여들더라고요. 이명훈 / 선생님이 그렇게 움직이시니까 젊은 분들도 따르게 되지요. 유명철 / 예. 어떨땐 이렇게 다시 쇠를 잡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중간 공백기를 갖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백기가 좀 있었다는게 지금 저한테는 많은 어려움으로 돌아오거든요. 다른 굿은 배척하고 내 굿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좌도굿이나 저를 인정하지 않거나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었지요. 이명훈 / 그건 잘 못 판단하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문제지요. 선생님께서 지적하시는 문제는 누구나 다 인식하고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대회나 굿판에서 보면 선생님이 제자들을 참 잘 키워놓으신 것 같아요. 남원굿 보면 입이 딱 벌어질만큼 아주 잘 하거든요? 든든한 제자들이나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그게 또 선생님의 힘이지요. 저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판이 하나 있는데, 97년에 선생님 고향인 남원 금지면 상기리에서 벌였던 굿판입니다. 아주 대단했었죠? 많은 분들이 그런 굿판을 한번 더 봤으면 좋겠다고들 말씀하세요. 유명철 / 지금 그 때 비디오 테잎을 보면 좀 엉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웃음) 이명훈 / 그런데 장장 6시간이 넘는 시간을 들여서 큰 굿판을 벌이고, 굿의 전 과정을 그대로 그 마을에서 재현해냈다는게 어떤 뛰어난 기능을 보여주는데 앞서 훨씬 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나 싶어요. 젊은 사람들은 그런 굿판을 갈망하고 있고, 선생님들께서 그런 굿판을 열어주길 소망하고 있어요. 그런 판이 굿을 전수하고 있는 젊은 굿쟁이들에게 큰 에너지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번 더 그런 굿판을 열어볼 계획은 없으신지요. 유명철 / 지금은 각처에서 발표 무대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그런 발표 무대 중의 하나로 그냥 묻혀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게 사실이예요. 발표 무대를 가보면 대부분 한시간 남짓하고 그냥 끝내버리기 일쑤거든요. 우리가 그렇게 큰 굿판을 연다고 하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 무대도 한시간 남짓하고 말겠지 하고 생각할까봐 우려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한번 큰 굿판을 열어보면 어떨까 계획은 갖고 있어요. 이명훈 / 그런 굿판을 적어도 일년에 한번씩은 벌여주셔야 저희 젊은 굿쟁이들이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굿의 전 과정 안에서 선생님의 개인놀이를 보면 감동이 참 큰데, 선생님들이 여시는 명인전의 굿판을 보면 개인놀이만 하시니까 조금 아쉽다고 해야할까요? 옛날 상기리에서 맛봤던 그런 감동은 아닌 것 같아요. 저희 윗대의 선생님들이 그런 굿판을 많이 벌여주셔야 젊은 사람들이 배워서 오래도록 전승도 시킬 수 있는 거구요. 젊은 사람들은 그런 큰 굿판을 접하기도 어렵고, 몰라서도 그런 굿판을 못 벌이거든요. 옛날 굿판을 알아야 옛날 굿의 정신도 알고 느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이야 사물놀이가 쌈빡하고 신명난다고는 하지만, 저희같은 젊은 굿쟁이들한테는 사실 그리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거든요. 유명철 / 사물놀이가 해외에 진출해서 국위선양을 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농악의 근본정신을 퇴색시킨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물놀이 하는 사람들도 그런면을 인식하고 인정을 하더군요. 이명훈 / 예. 그런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농악이나 제대로 된 굿을 전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졌는데, 아쉬운 점은 그런 큰 굿판을 보여줄 수 있는 분들이 자꾸만 돌아가시고 사라져간다는 사실입니다. 젊은 굿쟁이들은 윗대의 선생님 없이 굿을 친다는 것이 두렵고, 어떻게 해야될지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복이 많은 편이라 고창에 아직 선생님들이 많이 남아 계시고 그 분들을 10년 넘게 따라다니면서 굿판의 멋도 함께 배울 수 있었거든요. 그런 어른들이 안계셨다면 선뜻 고창에 뿌리를 내리고 굿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저도 최근에 여러 선생님들 모시고 문굿도 하고 풍장굿도 열어 봤는데 판굿만 할 때와는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그런 큰 공연을 하면서 뭔가 힘을 받았고, 여기에서 내가 뭔가를 해야되겠구나 하는 일종의 신념 같은게 생겨나더라구요. 유명철 / 이 관장 같은 사람이 전수 안하면 맥이 그냥 끊겨버리는 거예요. 내가 내 고향 찾아와서 이어야지 누가 할 수 있겠어요?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남의 것 좋다고 모방하고 기웃거리지 말고, 내가 해야 할 굿만 열심히 배워서 전수시켜야 된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남의 굿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이것 저것 갖다 붙이면 그건 이미 내 굿이 아니거든요. 이 관장이 고창에 들어가서 전수를 하기 때문에 고창농악도 계속 존속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계신걸로 알아요. 이명훈 /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웃음)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여러 공연이나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을 많이 해오신 걸로 아는데요.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느낀점이나 아쉬운 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 농악계의 현실도 그런 대회나 무대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유명철 /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크게 아쉬웠던 점은 심사 기준이나 방법에 관한 부분입니다. 20분 남짓한 시간에 굿패들이 가진 재주를 어떻게 다 풀어낼 수가 있겠어요. 농악경연대회가 오히려 농악을 말살시키고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이 됩니다. 이명훈 / 예. 맞습니다. 그런데 농악 경연대회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잖습니까? 그 짧은 시간에 심사를 하고 상을 주고 순위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가 따르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유명철 / 굿패들이 가진 기능이나 소질은 다양한데 매스게임하는 식으로 끝내버리고, 그걸 놓고 심사를 해야 한다는게 굿하는 사람으로서도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 경연대회에서 쓸 돈을 좀 아꼈다, 지역별로 굿패들을 모아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대로 한번 보여주고 교류하는 장으로 쓰여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명훈 / 정해진 기준으로 심사를 하는 것보다는 축제를 열 듯이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가 바람직하다는 말씀이신데요. 정말로 대회에 쓰여질 돈을 동네 굿을 찾아내고 육성해주는 쪽으로 투자를 한다면 농악도 많이 발전하고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유명철 / 그렇지요. 저도 여러 심포지움에서 그런 주장을 해왔는데, 그런 풍토가 쉽게 개선되지가 않더라고요. 그리고 굿을 하는 사람들도 잘 하는 사람들만 그런 판에 참가시키지 말고, 기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여러 동네 굿을 골고루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야 여러 팀들이 균형 있게 활성화되고 사람들한테도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거든요. 이명훈 / 선생님 연배, 그러니까 1세대 굿패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다른 지역에서는 젊은 사람들만 남아서 굿을 치고 전수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당연히 선생님들이 보여주는 굿판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텐데요. 요즘 젊은 사람들 굿판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유명철 / 각자의 선생님들한테 잘 배워서 어느 정도의 능력이나 기량들은 다들 갖고 있지요. 그런 굿은 은근한 맛은 없지만, 신선합니다. 옛날 분들이 하는 굿은 가락 하나에도 멋이나 진지함이 깃들어 있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기량은 다들 뛰어나지만, 훈훈한 맛은 좀 없지요. 한번은 영주에서 있었던 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충청도 팀이 다 노인들로 구성이 돼 있더라고요. 새끼를 꼬아서 전립을 만들었는데 얼마나 보기가 좋던지 넋을 잃고 봤습니다. 내가 느끼기엔 그런 무대가 아기자기하고 훈훈했어요. 그런 노인 분들로 구성된 팀이 있었던 곳은 전북에서도 고창뿐이잖아요. 그런 분들이 고창에 많이 남아 있다는건 이 관장에게 아주 큰 복이지요. (웃음) 이명훈 / 예. 맞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굿할 때는 어깨가 안 움직이는데, 노인들은 가락이 좀 빠지더라도 그 맛이 참 좋아요. 그런 굿판을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저한텐 큰 복이죠. 문제는 어른들한테 그렇게 맛나게 배운 것들을 관장으로서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이제는 저도 가르치는 입장이 돼서 장구채 쥐어주는 것부터 가르치고 있는데요.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가락을 단순하고 쉽게 가르쳐줘야 하니까 덩달아 제 가락까지 단순해지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입니다. 공연을 열고 굿판에 직접 뛰어들어 제 기량을 선보이기보다는 하루종일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까 저도 걱정이 되고,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지도 많이 난감합니다. 유명철 /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이야긴데요. (웃음) 배우는 사람들이 잘 받아서 배우면 그만한 보람이 없는데, 소질이 없는 사람들이 매달리고 있으면 답답한 노릇이죠. 내 가락이 틀린걸 아는 사람들은 가르치기가 쉽지만, 자기 가락이 틀린 것도 모르는 사람은 방법이 없어요. 그렇다고 그만 두라거나, 다른 악기를 다뤄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하기도 참 난감하거든요. 이명훈 / 어딜가나 상황이 비슷하네요. (웃음) 유명철 / 저는 그러니까 원박, 기초박만 충실히 가르쳐주고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비로소 잔가락을 가르쳐줍니다. 이명훈 / 농악에 처음 입문한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유명철 / 젊은 사람들이 배우겠다고 하면 달리 봐지고 고맙지요. 내가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한 가지 악기는 확실하고 똑 부러지게 배워서 자신의 특기로 살리되, 다른 여타의 분야나 악기도 조금씩은 다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나는 전공이 꽹과리지만 다른것도 기본적으로 다 할 줄 압니다. 언제 대포수(상쇠보다 우두머리, 판을 이끄는 총 지휘관)를 한번 해보고 싶은데, 거기 설 만한 굿판이 아직 없어요. 제자들 모아놓고 내가 대포수를 맡으면서 제자들의 판을 빛내주고 싶은데 말이지요. 이명훈 / 예.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되는데요. (웃음) 저는 앞으로도 고창에 남아서 고창농악을 열심히 배우고 가르쳐 볼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유명철 / 금지면 상기리에서 벌인 큰 굿판은 많은 사람들한테 좋은 인상을 남겼지만, 미숙한 사람들이 판을 열어서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아요. 조금더 보완해서 제대로 한번 굿판을 열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굿판을 열 장소가 마땅치 않아요. 시골도 예전 같지가 않고요. 그래서 남원에도 야외무대를 갖춘 제대로 된 전수관 하나 있었으면 하는게 제 바람이예요. 이명훈 / 많은 일을 계획하고 남원굿도 전수하시려면 무엇보다 건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여는 굿판을 여러번 접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주어졌으면 하구요. 선생님과 모처럼 좋은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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