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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 | [문화시평]
창작극회 제100회 정기공연 {오월의 신부}
글/정초왕 전북대 교수·독문과(2004-02-19 10:44:55)
'오월 광주',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특별히 내가 뭐랄까 양심적인(?) 사람임을 드러내보고자 하는 의도는 정말 털끝만큼도 없지만, 하여간에 떠올리기만 해도 그 무슨 끈끈한 점액질로 된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그 21주년이 되는 올 봄, 창작극회는 제100회 정기공연으로 '오월 광주'를 소재로 한 황지우의 시극 {오월의 신부}를 각색하여 창작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100회 째의 정기공연이라면 좀 더 거창한 기획으로 큰 극장에서의 공연을 시도해볼 만도 한데, 어쨌든 창작극회는 일반의 통속적인 기대에 대해서는 의표를 찌르는 대응을 시도한 셈이다.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들'의 현실이 이렇듯 남루하기 이를 데 없을진대 큰 극장에서의 잘 치장된 외양이 뭐 그리 중요할 것인가. 문제는 보다 낮은 목소리의 진솔한 대화일 터인데. {오월의 신부}의 중심점에는 당시 "들불야학"을 둘러싼 인물들이 위치한다. (물론 연극 속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실제의 이름도 다 알려져 있는 그런 인물들.) 1980년 5월, 광주에서 들불야학을 함께 해오던 이 사람들도 도리 없이 사태의 와중에 휩쓸려든다. 시위를 주도하던 강혁은 계엄군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학살하는 위급한 지경에 피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김현식은 시민들의 우상인 강혁 대신 그의 이름으로 투사회보를 만들며, 오민정은 광주 시민들을 향해 가두방송을 한다.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집단발포를 하고 시민들은 자위 차원에서 무장을 시작한다. 시민들의 서슬에 눌린 계엄군은 일단 퇴각을 하고 시민들은 해방감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앞날에 대한 어떤 전망도 불가능하다. 도청을 사수하는 시민군의 일원이 된 김현식 앞에 피신해 있던 강혁이 나타나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되돌려 달라 요구하지만, 김현식은 강혁에게 오민정을 데리고 밀항선을 타도록 종용한다. (이들은 설명이 다소 필요한 관계이다. 즉 강혁은 오민정을 사랑하지만, 오민정은 그를 동지로서 존경할 뿐이다. 오민정의 마음은 김현식에게로 향해 있다. 그러므로 오민정을 강혁과 함께 보내려는 김현식의 계획은 의당 또 다른 방식의 사랑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장신부는 김현식에게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총을 거두자고 설득하고, 김현식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 가운데 여자와 어린 학생들을 내보낸다. 그런 와중에 강혁을 따라갔던 오민정이 전말을 깨닫고서는 다시 도청으로 돌아온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시민군들에 둘러 쌓인 채 장신부의 집전으로 혼배성사를 치른다. 이제 도청 상공에 헬기가 뜨고 탱크가 진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 극의 마지막 장에서 장신부는 살아남은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도청에 쌓여 있던 다이너마이트의 뇌관을 뽑아버렸던 허인호는 미쳐버린 상태에서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잠자는 것이다'라며 다른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오월 광주'는 꽤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우리 예술이 소화하기에 여전히 너무 무거운 주제인지 모른다. 장선우의 영화 "꽃잎"은 거의 '자학적'이라 할만한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한 듯 했지만, 최근의 "박하사탕"은 그래도 여러 생각거리를 주기는 했다. '오월 광주'를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의 인생을 갈라놓은 주요 원인으로 그것을 짚은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묘하기도 한 것이 어긋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과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 자신 모두에 대해 알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이 일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영화가 '비굴하게 살아남아 개판으로 이어온 목숨'에 일종의 '면죄부'를 제공해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조차 일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카타르시스'이며, 또 그에 이어지는 '망각'이 아닐까.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이라는 명제를 통해 아도르노는 과거의 고난에 천착하는 예술의 딜레마를 논한바 있었다. 그에 의하면 '그럼에도 저 고난은 그것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줄 그런 예술의 존속을 필요로 한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고난은 자신을 즉각 배신해버리지 않을 그런 자기자신의 목소리를, 위안을 거의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황지우의 '오월의 신부'는? 창작극회의 공연은? 극을 관람한 것이 5월 10일 저녁, 글을 쓰는 지금은 5월 18일 밤. 며칠 묵혀두고서 생각을 가다듬어 보자 했던 것이 하필이면 '오일팔'에 쓰게 되었는데 여전히 가닥이 잘 안 잡힌다. 오늘은 신문과 방송에서도 관련 기사와 프로그램이 눈에 띄고, 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축제 기간에 '오일팔' 관련 행사가 부실한 것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글을 물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무책임한 생각도 슬쩍 올라온다. 도리 없이 그저 연극 공연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공연이지만 '오월의 신부'라는 핵심 모티브가 오히려 부차적인 다른 이야기들에 묻혀버린 인상이다. 물론 광주항쟁의 경과를 보여주는 것도 나름 의 의미가 있겠고, 여러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몇 다른 인물들의 묘사가 충분하고도 남았다면, 오히려 김현식과 오민정, 그리고 강혁에 대해서는 얼개 밖에 제시되지 않았다고 보인다. 그저 애정다툼에 불과할 수는 없는 풋풋한 그 무엇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 장면도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았을까? 이른바 '미학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비극 속에서만 인간적인 것이 피어난다는 '모호한 형이상학'을 주장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어쨌든 결혼식 장면을 비롯한 몇 장면에서는 본디 '시극'으로 쓰여진 원작의 묘미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다한 음향의 사용도 귀에 거슬렸고, 슬라이드의 활용은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극의 흐름만 이완시키지 않았나 싶다. 길지도 않은 연극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과욕을 부린 것이 아니라면, 좀 더 압축하고, 여백으로 넘길 것은 과감히 넘기는 작업도 필요했다고 보인다. 특히 에필로그는 너무 길었다. 되풀이하지만 문제는 결국 '오월의 신부'가 아니었을까? 마음 가난한 시절에 너무도 가난해 보이는, 그렇지만 용감한 연극 {오월의 신부} ... 오일팔을 전후하여 막을 내릴 즈음에는 소극장이 미어 터지게 관객들이 몰려들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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