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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5 | [문화저널]
외로운 사람의 봄노래
이희중(시인, 문학평론가, 전주대 교수)(2004-02-19 10:40:50)
고재종은 새 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는 길었던 지난 겨울의 끝자락에 나왔지만 꽃피는 계절에 읽는 게 제격이다. 시종 꽃과 나무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외로운 자는 소리에 민감하다>([달밤에 숨어])고 했다. 외로운 자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면 그는 문소리나 발소리에 마음이 쉬 움직일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귀만이 아니라 눈과 코와 살갗인들 그렇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들판과 산밑과 나무 곁에 서서 시야 가득 그리움의 증거와 서러움의 체취를 느끼는 그의 독백은 바로 <외로운 자>의 노래이다. 세상에 이미 있는 대부분의 시에서처럼, 그의 새 시집에서 자연은 이법과 섭리를 깨우치게 하는 말없는 스승이기도 하지만, 속마음을 비추어내는 거울 즉 비유적 상관물이기도 하다. 고재종이,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그 가지들이 가는 것이나 굵은 것이나 아예 실가지거나 우듬지거나, 모두 다 서로를 훼방놓는 법이 없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한 허공을 끌어안고, 바르르 떨거나 사운거리거나 건들대거나 휙휙 후리거나>([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라고 쓸 때 자연은 말없는 스승이다. 같은 나무의 가지들은 제멋대로 뻗은 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보면 그렇지 않다. 가지는 잘 설계된 기구같이 배열되어 있다. 봄날 그 가지에 돋아날 잎새들은 사람들 눈에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의 절실한 효용 때문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한 줄기의 햇빛도 허비되지 않도록, 애써 마련한 이파리가 다른 형제의 그늘에 가리워 쓸모 없이 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나무의 품 가운데에는 이파리가 없다. 시인은 가지들이 <서로를 훼방놓는 법이 없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한 허공을 끌어안>고 있음을 안다. 하나의 질서와 원리는 아름다움과 다르지 않다. 자연 속에서 순정한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람과 조화의 원리를 간결하게 그린 [유월의 동요]도 같은 길 위에 있다. 한편 고재종의 자연은 <그리움>과 <서러움>과 <상처>와 같은, 화자의 절박한 마음자리에서 멀리 벗어나지도 못한다. 그는 <푸르른 한 때 / 애인의 이름을 나무둥치에 새기며 / 소리 죽여 운 적이 있>([전각·2])는 사람이다. 여기서 <애인>은, [은어떼가 돌아올 때]와 [길 끝의 둥근 원] 등의 시에서 부재로 존재하는 <은어>와 함께, 시인의 삶과 세상을 뜻깊게 하는 무엇이다. 그러나 지금 이들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바로 <상처>이며, 그를 서럽고 그립게 만드는 이유이다. <그 맑고 생생한 서러움>([꽃 터져 물 풀리자]), <서러움조차 잘 걸러내어>([세한도]), <몸의 상처론 환히 열리는 서러움들>([상처에 대하여]) 등 도처에서 발견되는 <서러움>은, [상처에 대하여], [감골 차씨네 집의 등불],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등의 시에서 보이는 <상처>와, [감나무 그늘 아래], [구례구역의 사랑노래], [겨울 남한강 길] 등의 시에서 보이는 [그리움]과 함께 시인의 비극적 인식을 구성한다. 이처럼 고재종의 시에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기록한 듯이 보이는 시편들도, 사실 비극적인 마음과 태도를 숨기고 있는 수가 많다. 이를 굳이 말하자면 목월 쪽이기 보다는 지훈 쪽에 가까울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연은, 시인과 닮아서 상처와 그리움과 서러움을 지닌 존재로서 동료이자 위로자가 된다. 특히, <외로운 날, 느티나무의 너른 둥치에 기대면 / 나무는 제 가슴 열어 수만 상처를 보여주네 // 설레는 날, 강물에 나가 물수제비를 띄우면 / 강물은 몸 뒤채어 금은비늘떼 반짝여주네 // 서러운 날, 또 잿등에 올라 목이 메이면 / 하늘은 그 울음 쓸어 남빛 만리를 보여주고 // 그러나 또 가슴 애리도록 그리운 날엔 / 앞산도 제 능선 위로 멧비둘기떼 띄워주네>([自尊])에서 이런 사정은 뚜렷하다. 나무의 위로 방식은 외로운 시인에게 제 몸속의 상처를 보여주거나, 서러운 시인에게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것이다. 새 시집에서 따로 독자의 주의를 끄는 것은 육체적 사랑을 빗댄 낱말과 이들이 이룩하는 장면들이다. 이들 역시 자연의 두 갈래 의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볼이 달아오를 대로 올라선 / 그 능금알을 따는 처녀들과 / 그것을 한 광주리씩 들어올리는 / 먹구릿빛 팔뚝의 사내들>([능금밭 앞을 서성이다])에서 보는 숨찬 인간들의 풍속과, <황홀한 교접에 빠진 그들>([二重舞의 꿈]) 등의 곤충들의 귀여운 짓은 건강한 음양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불끈 솟은 만월이거니! 그것의 애액을 칠한 댓잎들>([보름밤, 그 어둡고 환한 月光曲]), <그대는 / 수밀도 같은 젖가슴 언저리거나 / 백설기빛 허벅지 속살이겠는지>([聯臂]).<아직도 시멘트 속에 못 가둔 / 그 날것의 음핵들>([상강 이야기])와 같은 구절들은 더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선정성을 드러낸다. 이는 비극적 세계관의 믿을 만한 알리바이가 된다. 고재종은 자연을 노래하지만 그것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보기에 따라 그의 관심은 오히려 사람에게 더 있는 듯한데, 이 <사람>은 대부분 시인 자신이다. <온다던 너는 끝내 오지 않>([마음의 홍시])은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외로움과 그리움과 회한은 그러므로 그의 새 시집 전체를 감싸고 돈다. 다시 그의 시는 외로운 사람과 아름다운 자연의 대비가 각별한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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