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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5 | [문화비평]
전라북도 도립오페라단 제6회 정기공연 오페라 <카르멘>
문화저널(2004-02-19 10:22:30)
"사랑! 사랑! 사랑은 자유로운 것.. 나의 사랑은 자유로운 들새와 같아 길들여지지 않아...... 내 사랑은 내가 결정하리니.... 내가 만일 당신을 사랑하게 될 때 그땐 나를 조심하세요!" 정열의 화신으로, 자기 욕망의 확고한 주체자로서의 상징적 대명사인 카르멘이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 '하바넬라'의 한 구절이다. 수동적이고 헌신적인 여성상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도발적이며 자기 삶의 적극적 운영자로서의 여성으로 우뚝 선 카르멘. 그녀에 대한 해석은 요염한 독부라는 고전적 해석에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페미니즘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러 해석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오페라 <카르멘>은 더욱 매력적이다. 오페라 <카르멘>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우선 이 작품의 스토리가 많은 다른 작품들처럼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남녀주인공들이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숱한 난관을 뚫고 마침내 사랑을 이루며 행복하게 된다는 결말을 가진 일반적인 작품들에 반해 <카르멘>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밀수꾼, 투우사 등 다양한 현실적 에피소드들을 배치하면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강렬하게 그려내면서 극을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긴박감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오페라들이 갖는 관행, 신화나 전설, 또는 낭만적 사랑을 주된 테마로 하던 관행에 일대 혁신을 불러 왔다. 보통의 오페라들에서 인간이 갖는 야만성이나 잔혹성을 희석시키며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로 꾸며내는 스토리 전개를 비제는 철저히 거부하고 충실한 현실의 이야기로 꾸며내고 있는 것이다(이 작품 이후로 인생의 어두운 측면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당당하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카르멘>은 사실주의 오페라의 선구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음악 또한 화려하다. 스페인 민요나 무곡, 그리고 집시음악을 차용한 강렬한 반음계의 사용은 어두운 스토리 전개에 화려한 음악적 색채를 흠뻑 덧씌운다. 전라북도 도립오페라단(단장 김용진)이 이 매력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 4월 5일부터 8일까지 전북대 문화관에서 매일 한 회씩 총 4회 공연을 했다. 1998년부터 매년 두차례씩 빠지지 않고 정기공연을 치루어 오면서 도립오페라단은 최소한 한가지 면에서는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갖춘 듯하다. 오페라 무대가 그리 많지 않은 지역적 조건 때문에 그동안 많은 오페라 공연들이 지역의 유명 음악인 중심으로 캐스팅되어 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런 저런 잡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도립 오페라단은 네임 밸류에 상관없이 능력있는 신인을 발굴한다는 원칙을 가진 것 같다. 이번 공연 역시 이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 듯해 막연하지만 신뢰감이 생겨난다. 신인을 과감하게 주역에 세운다는 것. 사실 이건 굉장한 부담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관객은 실험적인 무대보다는 충분히 숙성된 무대를 제공받고 싶어하며 이는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도립 오페라단이 그들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관객들의 이 당연한 권리 또한 충분히 고려해 주길 바란다. 난 이번 공연중 마지막 공연을 보게 되었다. 마지막 공연이어선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공연이 시작되었고, 무대 안팎의 그 어수선함은 공연 내내 계속되었다. 보다 집중된 밀도있는 연주로 극에 더욱 긴박감과 생동감을 불어 넣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공연내내 가지고 있어야 했다. 또 여러 배역들 또한 각 인물의 성격을 보다 치밀하게 연기해 주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불만도 들었다. 카르멘은 열정의 화신이며 매우 요염한 여성으로 사랑에 대한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자의식은 그녀의 유명한 아리아 '하바넬라'에서 잘 표현된다). 남자 주인공인 돈 호세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여인이 있지만 갑자기 나타난 카르멘의 성적 매력에 눈이 멀어 욕망에 지배당하고 마는 인물이다. 그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몹시 우유부단(그의 우유부단함은 카르멘으로부터 유혹을 뜻하는 꽃 한송이를 던져 받으면서 시작되어 카르멘을 감옥에서 놓아주는 장면에서, 그리고 파스티아 주점에서 귀영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들으면서도 카르멘의 유혹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미카엘라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돌출적 인간(장교, 투우사와 결투를 벌인다든지, 카르멘을 죽이고 자살한다든지)이다. 또 투우사인 에스카밀로는 패배를 모르는 승리자이며 최고의 투우사로 모든 사람의 선망을 받는 당당하면서도 거만한 인물이다. 그 외에도 호세 주변의 사관들, 밀수꾼들, 술집 작부들, 담배공장 여공들 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처럼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악인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 한사람. 호세의 약혼녀인 미카엘라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며 서구의 모든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의 화신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성격이 명료하게 살아나야 극 전체가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면 미카엘라가 순수한 여성이어야만 그녀를 버린 호세의 비극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번 공연을 보면서 비록 오페라가 음악 장르에 속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관찰이 함께 동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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