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 [저널초점]
청소년이 없는 '청소년 정책, 공간, 축제'
뒷전에서 생색내기에 머무는 청소년 정책
글 장세길 문화저널 기자(2004-02-19 10:12:44)
"전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며칠전 문화관광부에 올라가 수련시설 추가요청을 했더니 그렇게 많은데 왜 또 신청하느냐고 말하더라구요. 부족한 지역을 먼저 지원해야 한다면서요."
'자랑스럽게' 던지는 전주시 청소년복지과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의 말처럼 이 지역 청소년생활권수련시설은 전국 평균에도 월등히 앞선다. 전국에 있는 99개의 관련시설(문화관광부 홈페이지 참조)에서 '전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곳은 8개. 직할시 권역을 빼면 순위안에 들 정도다. 여기에 문화관광부에서 포함시키지 않은 상담실, 공부방, 수련실을 더하면 전주시만 해도 16개나 된다. 지하1층, 지상3층 규모의 청소년복합시설인 덕진청소년복합수련센터도(예산 24억원) 2001년 8월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교육청에서 마련한 전북학생종합회관도 청소년시설로서는 전국적인 규모.
속빈강정, 목표점 없는 청소년 정책
말 그대로 청소년 시설에 관한 한 '모범적인' 지역이랄 수 있다. 물론 양적인 면에서 그렇다. 청소년 관련단체 관계자들이 전주시의 말을 "곳이곳대로 믿을 수 없다"고 잘라말하는 이유도 이래서다. 전주시 16개 시설 중 상당수는 한건물내에 한단체가 공동관리하고 있으며, 공부방 5개소, 비정규학교지원(야학) 5개소도 전주시 운영시설이라기 보단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공간에 운영비 일부를 지급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전주시가 내놓는 양적인 성과도 결국은 자랑스러울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운영은 더 어렵습니다. 말이 '청소년은 미래의 일꾼'이지 지자체의 지원을 보면 생색내기 정도랄까요?" 청소년 수련시설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의 참담한 심정이다.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청소년시설 지원정책이 어느 수준인가를 실감케 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콜라텍의 형식을 빌어 마련한 청소년놀이마당은 청소년이 찾지 않는 마당이 된채 유명무실해졌고, 일반고등학교로 전환된 비정규학교지원 대상인 모학교의 경우도 여전히 지원대상에 올라 감사에 걸렸다는 뒷얘기도 귀뜸해 준다. 공부방도 마찬가지. 열악한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간으로 계획됐지만 운영의 어려움으로 곤란을 겪는 곳이 한두곳이 아니란다. 대부분의 수련관도 경영난으로 '경제논리'를 내세울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 '청소년 비전 2001' 계획을 내놓은 충남은 이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북도의 올해 청소년 관련 예산은 31여억원. 지난해보다 9억원이 증가했지만 충남이 수립한 계획은 이를 무색케 한다. 충남도는 모두 6개 부문 사업에 111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그러나 청소년 관계자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예산때문만이 아니다. 청소년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이 수립됐다는 점이 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마스터플랜은 고사하고 청소년 관련 부서만 하더라도 꿔다논 보릿자루 같아요. 독자적인 구조도 없이 어느 부서에 딸랑 붙어있는 정도랄까요"라며 한 관계자는 불만을 터뜨린다. 그의 말대로 이 지역 청소년 관련부서는 독자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전북도의 경우 체육 업무를 담당하는 체육청소년과에 소속돼 있다. 전주시는 올해 초 구조개편을 통해 체육에서 따로 떼어놓는 성과를 얻어냈지만 여성정책과 산하의 청소년복지계로 개편되면서 완전한 독립성을 부여받진 못했다. "청소년이야 투표권도 없으니까…"라는 불만이 쏟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나마 2명이었던 전주시 담당공무원이 3명으로 늘어난 것은 큰 수확이라고. 청소년 관련 단체협의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업무폭주로 관리가 어렵다는 공무원의 불만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란다.
청소년 없는 청소년 정책
전주고등학교학생회연합은 지난해 수능고사가 끝나고 '고등학생축제'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전북학생회관을 대관할 수 없었다고. 알아보니 교육청이 인정하지 않은 단체이고, 학생회관 건물 사용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성인단체의 참여나 학교장의 허가가 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주청소년문화의 집이 나서서 해결됐지만 청소년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청소년들이 건물사용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고, 공공건물의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도 십분 이해되는 대목. 하지만 언제고 자유롭게 드나들기 어렵다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울YWCA가 마련한 청소년 문화공간 '마루' 같은 공간을 꿈꾼다. '마루'는 작지만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 영화를 상영하든가, 연극을 하든가, 작은댄스파티를 하든가 저렴하게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 하지만 이 지역엔 그런 공간이 없다. 올해만 해도 무주, 진안, 김제, 고창 등에 청소년수련시설과 문화의 집이 건립되지만 노래공연과 연극을 올릴 작은 공간은 올해도 마련되지 않을 전망이다.
청소년들이 꿈꾸는 또 다른 소망은 청소년이 있는 청소년 축제.
"무늬는 청소년축제지만, 청소년들은 구경꾼에 불과한 그런 축제는 더 이상 싫어요.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해 기획도 하고 진행도 하는 진짜 청소년축제를 꾸려보고 싶습니다."
4월 8일 전주청소년문화의집에서 전주댄스릴라이트라는 댄스축제를 기획했던 아이들의 꿈이다. 그래서 그들은 댄스축제를 기획했다. 광주, 진주, 고창, 정읍 등 전국의 댄스 아이들이 함께 했고 그래서 그들은 즐거웠단다. 그러나 현란한 조명과 귀청을 울리는 서라운드 음향시설이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해야 했다.
이들의 말처럼 지자체가 마련하는 청소년 축제는 어른들이 기획하고 아이들은 참가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이벤트 업체의 난립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YWCA 한 관계자는 "이벤트 업체가 청소년행사를 거의 도맡다시피 하는 곳은 전주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행사가 댄스대회, 시서화전, 노래자랑 등 판에 박힌 듯한 일회성 이벤트 행사로 채워지는 이유가 이래서라는 얘기다. 또한 전주시가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전주종합경기장 내 청소년문화의 거리도 일부 단체와 이벤트 업체의 사업계획을 받아 위탁할 계획이지만 이 역시 일회성 이벤트 행사로 그칠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다.
자기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하고,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하는 등 사이버 공간에서도 청소년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요즘. 어른들이 마련한 청소년 정책이 눈에 보이는 것에만 머무는 일회성 문화행사는 아닌지, 축제마다 판에 박힌 듯 똑같은 댄스경연대회를 보며 뒤새겨봄직 하다.
10대 스스로 준비하고 만드는 문화텃밭, '마루' - 박스 기사
집에서 제일 넓은 공간, 가족과 함께 하는 공간, 막힌 곳 없는 탁 트인 공간 마루. 서울YWCA가 마련한 청소년 문화공간 '마루'는 그 말대로 청소년에게 탁 트인 공간이다. 지난해 7월 15일 개관한 이곳은 조명과 음향시설을 갖춰 청소년에겐 더할나위 없이 반가운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150석 규모의 무대도 안성맞춤. 노래를 하고 싶은 아이, 춤을 추고 싶은 아이, 만화영화를 상영하고 싶은 아이, 연극을 공연하고 싶은 아이…. 그 누구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공간이 마루다.
저녁 시간에는 주로 아이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하고, 낮 시간에는 학교 특별활동반들이 찾아와 부족한 학교공간을 대신하고 있다. 학교 특별활동반들이 교육의 연장선에서 마루를 이용하면 무료로 빌려준다. 아이들이 외부 강사를 원하면 연결해 주고 그 비용을 반반씩 부담한다. 아이들끼리 마루를 빌려 공연하기를 원하면 5시간에 9만원만 받는다. 코스프레 카페, 우리반만의 특별한 졸업식, 마루 우당탕 파티 등은 청소년들이 직접 준비한, 마루만의 행사들이다.
턱없이 크고 대관조차 힘든 전북학생회관, 무료로 빌릴 수는 있지만 공연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는 다른 청소년수련시설에 비하면 마루는 전북지역 청소년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