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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5 | [서평]
『우리말 우리글』(전국국어교사모임, 나라말, 2001) 국어 교과서도 이렇게 만들면 안 되나?
글/김규남 전라북도언어문화연구소장 김규남/1962년 전북 완주군 삼례 출생. 전북대 국문(2004-02-17 16:51:44)
『우리말 우리글』이란 책의 서평이라기에 '써 보마'고 대답했다가 막상 책을 받아 보니 작은 글씨로 적힌 '중학교 1학년을 위한'이란 부제가 있어, '아차'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한시바삐 우리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소박한 즐거움의 까닭을 풀어내는 것으로 서평을 대신할 생각이다. 이 책은 중학교 1학년 국어 참고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책이 범상하지 않은 이유는, 종래의 교과서와 참고서에 지쳐,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타인 혹은 외부세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이 '양호실'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중학교 1학년을 위한'이라는 부제를 단 것도 입시 준비로 멍든 중·고등학교 국어 교육에 새로 첫 단추를 끼워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이 책은, 입시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 혹은 공부 자체가 두려운 아이들에게, 책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동시에 사고의 깊이와 다양성을 경험하게 하는 기발하고 효과적인 대안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 책에서 읽을 거리로 제공하고 있는 글감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소재를 찾은 것들이어서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 글들을 읽고 나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가 시킬 것도 없다. 그저 흥미롭게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정체를 발견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이해하며, 그와 조화를 이루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게 하는 점이 바로 이 책의 백미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각종 매체와 더불어 성장해 왔다. 온갖 동화책은 말할 것도 없고,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등과 더불어 의사소통 방식을 익혀왔다. 그런 아이들에게 글씨만 빼곡하게 적힌 교과서는 그 자체가 벽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책의 표지와 종이의 질이 양호하며 편집이 다채롭다는 점이다. 다양한 삽화, 만화, 사진 그리고 적당한 여백 등은 공감각적 의사소통에 익숙한 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는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다. 좀더 욕심을 낸다면, 동영상으로 된 자료들도 함께 제공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오직 말과 글로만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손짓, 발짓, 표정 등 온몸으로 말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표현과 이해 즉 의사소통의 관점에 선다면, 우리말과 글에 대한 공부도 말과 글뿐만 아니라 그에 동반되는 온갖 시청각적 요소를 함께 고려하여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교과서 이외에도 비디오, 영화, 신문, 광고, 잡지, 만화, 그리고 인터넷 등이 모두 국어 공부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우리말 우리 글 공부에 그러한 시각적 요소들을 비로소 고려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이 주는 현장성은 글감의 소재가 일상적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광고, 텔레비젼, 만화 등을 하나의 공부 소재이며 자료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방식 즉, 교과서 하나에 분필 하나로 아이들과 호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옛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향수인가, 배운 게 그것뿐인 기성세대의 아집인가. 이미, 어려서부터 온갖 재미있는 학습 방식으로 무장된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공부 방식이 무엇인가. 당의정이 필요하다. 아니 당의정보다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필요하다. 우선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저절로 학습 능력이 배양되도록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겉은 달콤하게 감싸고 쓰디쓴 약은 그 속에 감추어, 쉽게 먹게 하지만 효험은 좋은 당의정, 이 책이 시도하는 방식이 그와 같다. 그렇게 재미나게 먹여 놓은 약의 효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방식을 습득한, 그리하여 생존을 위해서는 매우 약삭빠르며 결코 손해보지 않는 인간 그러나 그것뿐인 인간. 그런 인간들이 지도층이 되고 실력자가 되는 세상을 우리는 지금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치르며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의 약효는, 자신과 외부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당당하게 말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을 지향한다. 그 또래들끼리 어울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말하게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결코 '중학교 일 학년을 위한'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상급 학년용 『우리말 우리글』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부와 생활을 별개로 두지 않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삶이 풍요로워지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공부의 재미와 가치를 동시에 누리게 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을 추구하는 것, 그게 진정 교육의 실사구시이며 교육 백년대계이지 않겠는가. hopeches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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