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 [교사일기]
교사일기
글 이상훈 장수고 교사(2004-02-17 16:43:49)
전주에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제 전주에 나올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 아닌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예'하고 말을 흐리면 상대방이 알아서 판단해 준다. 진안에서 터 잡아 살 생각이라는 등 여러 유형의 추측이 나온다.
진안에 와서 생활한지도 10년이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줄곧 읍내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했다. 초임지는 부안고등학교, 여기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진안고등학교, 진안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은 장수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살고 있는 곳은 진안이다. 진안에 사는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민속과 풍수분야 관한 나의 관심을 이 지역이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또 진안에 살다보니 졸업생들도 자주 만나는 편이다. 군대에 가 있는 녀석, 대학생이 되어 학교에 다니는 녀석, 기술 배워서 보일러 사업을 하는 녀석, 택배회사를 운영하는 녀석, 어느새 결혼하여 애기를 데리고 다니는 녀석 등 다양하다. 그런데 졸업생 중 진안에 와서 처음 담임을 맡았던 한 녀석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 이유는 내가 그 녀석의 주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보다 그 격을 높여주는 분이 주례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은사님, 목사님, 신부님, 스님, 저명인사 등을 주례로 부탁한다. 주례는 말 그대로 예를 진행하는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함부로 주례를 부탁하지도 않는 것이며. 또 스스로 주례를 서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 어려운 자리라 생각하는 주례를 36세에 서게 되었다.
지난해 여름 방학 때 진안고등학교 졸업생 종영이를 만났다. 종영이는 졸업을 한 후 곧바로 군대에 다녀온 후 택시기사를 거쳐 우체국에 근무하다가 늦게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교 때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말이 없고 고민이 많은 그런 녀석이었다. 술을 하면서 친구들의 근황을 물어 보았다. 졸업한지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잘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물었다. 상원이는 택배회사를 하고, 기곤이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사업하고, 정수는 지금 컴퓨터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한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반월리에 사는 정수였다. 녀석은 바빠서 찾아뵙지 못함을 이야기하면서 대뜸 주례를 맡아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술 몇 잔을 한 탓인가? 기세 좋게 "그래 내가 주례를 해야지" 몇 번이고 대답했다.
그 후 주례를 본다는 것에 대해 잊고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담으로 말했던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달 후 정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할 사람하고 같이 와서 인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 그러면서 주례에 대한 확답도 받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어째든 만나야 되지 않겠는가. 진안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학교 때에 비해서 훨씬 통통해진 모습인 정수는 학교 때처럼 활달하게 같이 온 사람을 소개했다. 장계가 고향인 신부였다. 친근감이 들었다.
"그래 언제 결혼하니?" 청첩장을 꺼내면서
"다음 주말에 해요".
청첩장을 확인했다. 정말로 신랑 원정수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이렇게 빨리 하니?"
"예."
"선생님께서 주례를 해 주셔야지요"
"어, 그래 아직 주례를 정하지 않았니? 다음 주말이라면서". 내 마음이 오히려 바빴다.
"선생님께서 해주시기로 하셨잖아요".
"정수야, 내가 어떻게 주례를 보냐? 나이도 젊은데......"
"뭐가 어때서 그래요? 나이가 중요합니까? 저를 가르친 선생님이기 때문에 주례를 부탁한 거죠".
참으로 난감한 문제였다. 전에 처에게 주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정중히 거절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고 오늘 만나는 자리에서 다른 분께 부탁하라는 말을 하려 했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한담.
그러던 차에 내가 주례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자, 그 녀석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도 그런 분이라면 소개받을 분이 많습니다. 선생님을 제가 학창시절부터 알고 따르던 선생님이기 때문에 부탁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으로 하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너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음을 후회했다. 그래 이제 고등학교 때의 학생이 아니구나. 결혼하여 한 가정을 꾸밀 가장이 아닌가. 마음속으로 든든하게 생각되었다.
녀석은 확답을 해달라고 했다. 서서히 내 마음도 주례를 서는 쪽으로 기울었다. 마음속으로 "그래 한번 서 보자. 주례를". 집에까지 와서야 주례를 서겠노라고 말했다.
주례를 보기로는 했지만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처는 구두와 넥타이를 새로 사왔다. 녀석 덕분에 구두와 넥타이를 선물로 받은 셈이다. 무엇보다도 주례사가 문제였다. 어떤 내용을 담아 신랑 신부에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주례사를 작성하고, 최근에 결혼한 선생님의 결혼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절차도 익혔다. 이제 주례를 보기만 하면 되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예식장에 가게 되었다. 신랑, 신부보다 더 긴장을 하고 주례를 보았다. "신랑 원정수군의 주례를 보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담임을 맡은 인연으로 생각됩니다..." 로 시작한 주례사는 오히려 나에게 앞으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학생들을 사랑하고 함께 생활하라는 다짐처럼 나 스스로에게 들렸다.
PURM1@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