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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5 | [문화저널]
【여성과문화】 무대위, 그가 낚은 관객의 마음이 더해진다 전주시립극단 이현숙 단무장
글/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4-02-17 16:42:11)
연극무대에서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연 배우이다. 실제 대학 연극반이나 극단에 들어오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배우 지망생. 하지만 모름지기 어떤 일이건 뒤를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며 튼튼한 장막을 마련해주는 숨은 일꾼들이 있기마련. 전주시립극단 단무장 이현숙(34세)씨의 일이 그렇다. 극단의 휴일인 토요일 오후 전주시립극단 연습실. 며칠전 공연을 마친 작품을 위해 뛰고 구르던 연습실 마룻바닥에는 아직도 배우들의 훈김이 서려있다. 연습실 좌측에 마련된 조그만 사무실에 단무장 이현숙씨의 자리가 있다. 94년 '연극판'과의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관객을 향해 무대에 서본 경험이 전무하다. 줄곧 '기획' 일만을 맡아온 공연기획자의 '당연한' 이력으로 그가 주목을 받는 건 그만큼 지역 연극계가 변변한, 전문성을 갖춘 기획자 한명 갖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문학을 전공했던 대학시절에 원어연극이라는 걸 종종 했는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구 항상 배우가 아닌 스텝일을 했어요. 공연기획이라기 보단 학교 앞 상가에서 후원받기, 인쇄물 제작 그런 일들이었죠." 졸업후 출판사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연극에 대한 관객의 애정을 지니고 자주 공연장을 찾았다. 자연스레 알게된 연극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지금 돌이켜보면 간단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후 뜻하지 않은 기회로 전북연극협회 간사로 근무하게 된 그는 96년 '도제 1백년 기념사업'에 참여해 <서울로 가는 전봉준> 기획, 97년 같은 작품으로 '과천세계마당극축제'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연극판' 에서의 자유분방함과 그런 분위기를 고수하는(?) 연극인들에게 적응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창작극회' 기획실장을 제의받았을 때는 여간 고민스럽지가 않았다. "당시 창작소극장에 화재사건이 발생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해야하나. 크고 작은 손으로 동참해준 소극장 재건사업은 지금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가 기획실장으로 있었던 97년과 98년, 창작극회는 더욱 자리를 굳혔다. 물론 첫번째 이유야 단연 좋은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 것이겠지만 극심한 경제불황을 맞이했던 당시 극단이 자리를 굳힌데에는 그의 기획력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역연극계에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작품 <그 여자의 소설>. 이 작품의 포스터를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온통 빨간 배경에 김대중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힘들고 어려운 때…따뜻한 연극 한편…', 이 포스터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또한 1만원 티켓한장으로 2명이 관람할 수 있는 할인권 발매는 기존의 관람료에서 2, 3천원을 내린 것에 불과하지만 '단돈 만원'은 상대적으로 금액에 대한 관객의 부담을 줄이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작은 아이디어들 모두 백방으로 뛰며 고군분투하던 그의 세심한 기획력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금도 그는 공연티켓을 힘닿는 데까지 회수해 그 분포도를 일일이 기록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놓치 않는다. 장기성이 적은 공연이나 행사의 자료가 전무한 지역현실에서 이러한 그의 작업은 다음 공연을 준비할 때 집중공략 대상을 선정할 수 있을 뿐더러 일의 연속성과 축적을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배우로 연출자로 때로는 기획일까지 해야하는 열악한 지역 연극계에서 오롯이 공연기획자로 일을 해왔지만 그는 기획의 여러 분야를 아직은 도맡아 하고 있는 자신을 '공연 기획 전문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한다. "아직까지도 지역에서는 기획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해요. 단순히 홍보하고 표팔고, 광고잡는 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작품 하나를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포장을 해내고, 소비자, 곧 관객을 분석해 공략해야 하고, 이렇게 하려면 배우들이나 연출자들하고는 달리 기획자는 객관적 시각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작업인데 아직은 그 모든 일을 기획자 한명이 다 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구요." 그런 욕심에 지금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예술경영'을 공부하러 서울길에 오른다. 문화예술이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이때에 작품에 대한 마케팅 작업은 앞으로 더욱 요구될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생각이 또다른 고단한 생활을 마련했다. 시작한지 얼마 안된 공부지만 그의 마음이 요즘은 조금씩 조급해지기도 한다. 알면 알수록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좀더 여러 사람들과 이 일을 나누어 하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네요. 극단내부 사정도 있지만 기획일만을 하기 위해 연극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거든요. 기획일이라는 게 결국은 분석과 아이디어 싸움이어서 한 개인이 하는 데에는 한계가 많아요." 그래서 그의 꿈은 당연스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전문 공연 기획'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좋은 작품이 쥐도 새도 모르게 관객들에게서 빠져 나가고, 어려운 지역 연극계가 언제까지고 고전을 거듭하는 것은 그의 일과 꿈을 흔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라고 강조하는 이현숙씨. 그는 오늘도 긴장된 눈빛으로 무대에 오른 배우들과 관객들을 공략 혹은 읽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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