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 [문화저널]
【특별기고】언론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글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2004-02-17 16:39:32)
언론개혁이 드디어 사회적인 화두로 급부상 되었다. 이는 그 동안 그 필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해온 시민사회의 주장을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수긍을 함으로써 증폭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그에 앞서 MBC가 <100분 토론>과 <PD수첩>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언론개혁을 다룸으로써 전사회적인 쟁점으로 부상시켜주었다. 뒤를 이어 KBS도 토론 프로그램과 <일요스페셜>에서 언론개혁의 쟁점을 다루어 힘을 보탰다. 꾸준히 이 문제를 다루어온 한겨레신문은 3월6일부터 <심층해부-언론권력>이라는 이름의 기획연재를 시작해 계속 분위기를 돋우고 있는 중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언론개혁이란 족벌신문의 개혁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빅3' 혹은 '조중동'으로 불리우는 조선·중앙·동아 등 3개 신문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신문개혁국민행동은 세 신문사를 직접 겨냥하는 게 아니라 법의 개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한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신문의 족벌소유를 제한하고 편집권의 보장을 명문화하기 위해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정간법)을 개정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언론운동단체들이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찬성하고 규제개혁위원회의 개입을 지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문사의 주식을 한 집안이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족벌의 이해타산에 따라 사회적 공기(公器)여야 할 신문의 위상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따라 족벌의 주식소유를 30% 이내로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편집국이 소유주와 경영진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갖고 취재와 보도를 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또 세무조사를 철저히 해서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물량공세로 독자의 선택권을 왜곡시키는 시장의 불공정행위를 철저히 단속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조중동의 시장지배력은 70%를 넘나들고 있다. 보수세력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세 신문이 여론의 70%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게 독자들의 의지에 의한 합리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가지 살포와 강제구독, 경품 제공 등의 물량공세로 독자를 억지로 묶어두면서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국에 대한 파렴치한 착취와 독점 강요, 자원의 낭비와 생태계 파괴만 보더라도 개혁의 당위성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제도개혁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법과 제도의 개혁만으로는 언론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도의 개혁이란 외형적인 것이다. 족벌의 주식소유를 제한하고 편집권 독립의 장치를 만들어 놓으며, 공정경쟁을 할 수 있도록 시장의 질서를 잡아놓았다고 했을 때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우선 주식소유의 30% 제한이라는 부분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지금의 족벌이 대주주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편집권 독립이라는 장치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또 경영이 투명해지고 공정경쟁의 질서가 확립된다고 해도 보수성향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다. 다만, 독자들이 자유롭게 다른 선택을 해서 족벌신문들의 시장지배력이 감소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장담할 수는 없다. 언론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은 언론권력을 해체하여 저널리즘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고, 나아가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과 민족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제도개혁이란 하나의 출발에 불과하며 필요충분한 조건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길은 무엇인가? 결국 국민들의 각성과 의지와 행동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부도덕한 정권의 장기집권과 독재, 그에 유착하여 나팔수 노릇을 하는 대가로 단물을 빨아먹으며 어느새 대체권력으로 부상한 신문권력의 횡포의 뒤안에는 국민들의 묵인이라는 치부가 자리하고 있다. 정치와 언론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 정치와 언론만 탓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묵인해온 책임을 국민들이 깨닫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반성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판을 짜고자 하는 각오를 다지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당장의 현실을 보라. 시금치 한 단을 사더라도 값과 질을 꼼꼼히 따지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신문을 선택할 때는 그까짓 에어콘 선풍기니 믹서기 따위에 현혹되어 정작 물건의 질은 따지지 않고 기꺼이 독자가 되어주질 않느냔 말이다. 국민들이 계속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제도를 아무리 훌륭하게 만들어놓아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일부 독자들은 반발할 것이다. 자기들도 다 판단력이 있으니 건방지게 무시하지 말라고.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정작 좋은 신문을 가려내지도 못하면서 조중동을 좋은 신문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내 말이 옳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불매운동으로 가야 할 것이다. 신문개혁국민행동광주전남본부는 이미 빅3 신문 불매운동을 선언했는데 잘하고 있는 것이다. 불공정경쟁으로 확보하고 붙들고 있는 독자를 볼모로 하여 여론을 왜곡하는 구조를 깨서 바로잡는 길은 독자에게 있다. 자기가 구독하고 있는 신문, 기고하고 있는 신문이 낌새가 이상하면 두루 살펴 비교 검토해본 후 과감하게 끊어주어야 한다. 이것 이상 신문족벌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는 없다. 그들을 바뀌게 할 힘도 이 방법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신문권력은 계속 개판을 치면서 이 나라를 혼란으로 빠뜨리고 말 것이다.
신문고시 파동을 보자. 두 가지의 의미가 도출된다. 기껏 신문고시 하나 만드는데 족벌신문들이 난리를 치고 거의 누더기로 만들어놓은 위력으로 볼 때 정간법의 개정이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동안 신문고시와 관련한 족벌신문들의 허위 왜곡보도가 극에 도달해있으며 그만큼 독자들의 신뢰도도 떨어지고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불매운동의 적기라는 점이다. 운동도 운동이려니와 문화저널 독자들의 현명한 결단에 기대를 걸어본다.
wanju@hanil.ac.kr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