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1.5 | [문화와사람]
문화의 샘물 퍼 올린 순창문화의 지킴이 순창고등학교 장교철 교사
김회경 기자(2004-02-17 16:38:18)
목련이며 개나리꽃이 한창인 순창고등학교 교정. 아이들에게 이것 저것 '잔소리'를 해가며 걸어 내려오는 장교철 교사(47)의 발걸음이 유난히 소박하고 정겹다. 순창 문화를 일궈 보겠노라 동분서주했던 열정과 에너지가 바로 저 작은 체구에서 분출된 것일 터였다. 순창 토박이는 아니지만 청소년기와 장년기를 이곳에서 보내는 동안, 마음의 공을 쏟은 덕인지 순창은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렇게 새록 새록 정이 붙어갔다. 순창 유일의 언론지 '순창 신문' 초대 편집국장이면서 순창 문학회와 순창 문화예술단체 연합회, 할머니 한글 기초 과정반의 토대를 닦은 이. 척박하기만 하던 순창 지역에 '문화'의 샘물을 퍼 올린 이가 바로 장 교사다. 그 자신 문학 애호가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지만, 그가 앞장서 걸어왔거나 혹은 '기웃거렸던' 문화 사업은 문학과 교육 분야에서부터 순창 문화인들의 결집과 교류 등에까지 폭넓게 닿아 있다. 11년전 순창신문을 만들어 보자며 선뜻 의기투합 한 것은 순창 문화와 문학 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서부터 분출된 것이었다. "지금은 전북농촌개발원에 계신 이태영 목사가 지자체 출범을 앞두고 선거 감시부터 시작해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낼 언론사 하나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하시더라구요. 신문과는 대학 학보사 편집장을 지내면서 이미 인연이 있었던 터였고, 글 쓰기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적잖은 애착을 갖고 있어 쉽게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저널과의 인연 역시 장 교사에겐 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어설프게 문화저널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배운게 참 많았습니다. 척박한 여건에서 문화운동이라는 한가지 목표 아래 젊은 편집위원들이 패기와 열정을 쏟아 붓는걸 보면서 자극도 많이 받고, 도전의식도 키울 수 있었죠. 저에겐 참 고마운 곳입니다."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남의 사무실에 곁방을 얻어 '가난'하게 출발 했지만, 이후 뜻 있는 사람들이 무보수 '자원 봉사자'들로 참여해 지금의 순창신문을 일궈냈다. 11년동안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재정도 그렇거니와, 당시엔 안팎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신문사가 막 태동했을 무렵, 회문산 개발 붐이 일면서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자, 순창 신문은 곧바로 저지운동을 벌였고 그 덕(?)에 장 교사를 비롯한 순창신문 식구들은 곧바로 '빨갱이'로 몰리는 고초까지 겪어야 했다. "이해당사자들에겐 방해꾼이 나타났으니, 관에 달려가 그 사람들 이상하다, 신원조회 해봐라 하면서 쑤석거린거죠. 그런 시절도 있었네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순창 신문은 지역 문화의 토대를 닦아온 초석이 됐고, 지역민의 의식수준을 끌어올리는데 상당 부분 공헌했다. 장 교사는 지난 1992년 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애착을 담아 순창 문학회를 꾸리기도 했다. 10년째 사무국장직을 맡아오면서 글 쓰기에 대한 오랜동안의 갈증을 그렇게 풀어온 것이다. "한해에 한번씩은 동인지를 발간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직은 회원들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지만, 문학과 시에 대한 열정은 대단합니다. 저도 뜻하지 않게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을 했지만, 시에 대해서는 일종의 결벽증이 있어 쉽사리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편이에요. 책 한권 정도는 묶을 만한 작품이 모아지긴 했지만, 선뜻 내놓기가 부끄러운 거죠." 장 교사는 그의 말대로 시 한편 쓰는데 수십번의 탈고를 거듭해야 하는 문학적 '결벽증'이 있어, 여태 그 '흔한' 책 한권 엮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시와 문학에 대한 향수는 그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손 대고 있는 일이 많아 어떨땐 이도 저도 다 정리하고, 오직 아이들 가르치고 시 쓰는 일에만 몰두하고 싶을 때가 많죠. 다른 일 다 접는다 해도, 시는 끝까지 놓지 않을 겁니다." 장 교사는 끊임없이 샘솟는 호기심 때문에 여기저기 관심 두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지만, 사회를 보는 따뜻한 시선은 늘 사람들 속에 머물러 있다. 순창고 학부모 한글 기초반을 운영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따뜻함이 사람들 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늘 길을 지나다 보면, 할머니들이 글을 몰라 버스 타는데 곤욕을 치르는걸 많이 보아왔습니다. 기사들한테 면박 받고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본인들은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래서 이분들한테 글을 가르쳐 드리면 어떨까 하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고, 교장 선생님도 선뜻 그렇게 해보자고 승낙을 하신 겁니다." 2년간 한글 기초반을 운영하면서, 낮엔 아이들 수업에 저녁엔 '야학 교사'로 일하면서 그와 동료 교사들의 부담은 결코 적지 않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지난 3월 수료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글 기초반을 그만 접을 생각이었지만, 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부활'해 달라는 호소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동료 교사들이 많이 지쳤었고, 조금 쉬었다 다시 시작해 볼까 했는데 할머니들 자제분들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더라구요. 군에서 일정 부분 도와 주기로 약속하고, 다시 한글 기초반이 가동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참 다행스런 일이에요. 스승의 날이면 할머니들의 스승의 은혜를 불러줬던 일은 두고 두고 가슴 설레는 경험이었고, 큰 보람이었죠." 지난해 12월에는 순창 문화예술인들을 모아 '순창 문화예술단체 연합회'까지 출범시킨 장 교사. 20여년을 순창 사람으로 살았으니, 이제는 순창 읍내에서도 장성한 제자들부터 웬만한 주민들까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순창 사람, 장교철. 이제 그를 그렇게 부르는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