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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 | [문화저널]
전주 객사는 왼편 날개를 잃고 민족의 독립에서 사상의 독립으로
이진일 민주개혁국민연합 전북본부 사무처장 이 진일 (전북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민주개혁(2004-02-17 16:11:46)
전주 객사는 지난 수 십년 동안 일제에 의하여 훼손되어 한쪽 날개를 잃고, 둘러 싼 건물들에 위축되고 움츠러든 모습으로 도심의 한켠에 숨죽이고 있었다. 뒤늦은 전주시의 노력으로 정비되고 복원되었지만 아직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일제는 식민통치기간 동안 한국의 근대화를 앞당겼다고 강변하지만 근대화란 명분아래 전주성벽을 허물어 길을 내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고, '봉건적 통치기관'인 전주감영을 뜯어내고 '근대화된 식민통치기관'인 전북도청을 세웠다. 이제 우리는 도청을 옮기고 그 자리에 수 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라감영을 복원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게된다.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쓰여진 근대화는 그대로 놔두기만 했어도 관광자원이 될 빛나는 문화유산을 없애고 후손들이 두고두고 지불해야 될 빚과 과제만 남겼다. 그 와중에 객사도 동익사를 헐어내는 수난을 당했고 겨우 축소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 속에 균형과 긴장을 유지하는 조상들의 중용을 추구하던 건축정신은 사라지고, 왼쪽 날개를 잃고 서 있던 모습에서 오른쪽으로만 쏠리는 우리의 정신적 편향과 현실을 본다. 한때 이 땅에서 민족주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였다. 민족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 어떤 사상과 현실적 조건도 부차적인 문제였다. 사상, 연령, 성별, 지역, 종교, 계급, 어느 것도 작은 차이에 지나지 않았다. 민족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작은 차이를 논하는 것은 '몹쓸놈' 이거나 민족을 외면한 배반자쯤으로 치부되었다. 더욱이 1919. 3 .1 항일 독립만세운동은 '우리민족'과 명확히 구별되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하나로 뭉친 민족의 대사건 이었다.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62주년이 되는 오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광풍 앞에서 그 어떠한 '민족적'이라거나 '국가적'이라거나 '우리것'이라는 문구는 편협한 민족지상주의 이거나 현실을 무시한 철부지 취급을 받게 되었다. 한때 광고 카피로 인용되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라든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라는 글귀마저 글로벌리즘을 강조하는 풍조 앞에서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민족의 개념도 훨씬 풍부해저 "나는 독일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할 수는 있어도,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의미하기에 찬성할 수 없다."는 독일 대통령의 말처럼 자본에 기초하건 인간에 기초하건 간에 그 의미를 다시 규정해야 될 시점에 와 있다. 나는 민족의 개념을 풍부하게 하는 지름길은 사상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군국주의를 불러온다. 민족 간의 분쟁이 끊이질 않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지금, 역사와 지정학적 조건을 반영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세계사적 보편성을 불어넣는 것은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는 데 있다. 주권국가의 하나로서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반대하는 국가미사일 방어망에 대한 정당한 입장 표명조차 미국의 비위를 거스른다고 떠드는 '신 사대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남북한간의 평화선언보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신 정신자폐증 환자'들이 큰소리치는 우리의 현실에서, 아무리 국내정치상 밉기로서니 70말년의 노구를 이끌고 미국에 간 우리의 대통령이 40대의 미국 대통령에게 '뺨을 맞은 꼴'이라는 외신보도에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좋아하는 '쓸개빠진 사람'들이 제1야당인 이 나라에서 민족의 장래를 바로잡는 길은 보다 넓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닫힌 눈을 여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를 민족주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길을 모두 차단하는 국가보안법이야말로 가장 '반민족적 악법'이며 이를 철폐하는 것이야말로 민족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해야 할 시민운동 조직들이 '국가보안법철폐운동'이 시민들이 호응하고 함께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해서인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번듯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밤을 낮 삼아 다른 사람들의 인권과 이익을 위하여 밤낮 없이 뛰어다니면서 월급은커녕 자신은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는 못하는 활동비마저 몇 달씩 밀려있는 생활에서, 활동비는 고사하고 밀린 사무실 임대료와 공과금을 걱정하고 노동환경의 개선은커녕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하여 호호 손을 불며 일하는 현장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희생한 댓가나 공치사는 그만두고, 이런 것이 민주화냐 옛날이 훨씬 나았다고 애매무지로 비난받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기의 일상 생활에만 관심을 두고 작은 이익이라도 없으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시민운동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세이다. 그러나 노적가리가 타면 벼이삭도 타는 것이다. 노적가리 타는 데 튀밥 줍는 사람이 있을 수 없듯이 민족사적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이때, 모든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진영의 대응을 호소해 본다. 흐르는 역사의 파고에 따라 이리 쏠리고 저리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를 지켜 온 객사에서 예순 두 번째 맞는 3.1절에 일제에 의하여 제정된 '치안유지법'의 법통을 이어받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는 그 상징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감옥살이에는 이골이 난 문규현 신부님과 한상렬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모형감옥 안에서 명상시위에 빠졌고, 어린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묻어나는 장구가락부터 신세대 밴드의 터질 듯한 외침까지 그것은 하나의 축제였다. 80노구이신 강희남 목사님부터 남한에 남은 비전향장기수들, 80년대를 풍미했던 현장과 학교의 운동가들까지 두루 참석한 집회는 손에 손을 잡고 함께 한 가족들로 하여 더욱 빛났다. 우리의 운동이 어느 새 세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이 무엇이지?"라는 호기심 어린 물음과 "무섭다. 가자."고 대답하며 돌아서는 젊은이들의 손에 쥐어 준 국가보안법폐지라는 스티커가 붙은 달걀은 국가보안법을 깨뜨리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는 절규였다. 만물이 소생하는 눈부신 봄날에 억압의 질곡을 뚫고 피어나라 사상의 자유여. 민족의 사상 적 해방을 위해 전진하라 진리의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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