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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 | [문화저널]
【문윤걸의 음악이야기】 노래방, 그 뼈저린 경험
문화저널(2004-02-17 16:08:57)
나이 사십의 문턱에 걸터 앉아 있는 난 그동안 내가 한번도 '젊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난 여전히 젊고 생동감있으며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가득차 있어 늘 푸른 청춘이며, 뜨거운 햇살아래에 반짝이는 은빛 비늘의 물고기같다고 믿고 있었다. '나이 사십'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언어들은 내게는 눈꼽만큼도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신념'마저도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게 며칠전 한밤중에 있었던 경험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우스운 공상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깨닫게 했다. 요즘 난 팔팔한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매일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일차, 이차, 그리고 피날레는 노래방으로. 노래방. 참으로 오랜만에 들른 곳이었다. 언젠가부터 좀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일차, 이차를 거치면서 오른 취기는 노래방에 대한 아른한 기억을 되살려 주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가득 퍼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마저 생겨났다. 그러나 이 곳에서의 체험은 놀라운 것이었다(최근 몇 년간 난 젊은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본 적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노래방은 내가 경원하는 장소 중 하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난 이곳에 머무르는 그 순간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한때는 나도 노래방을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건만... 평상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세대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하면서 내가 젊은 친구들과 정말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이들과 다르다는 것. 그것만으로 꼭 중늙은이가 되어있다는 것이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이미 중늙은이가 되어간다는 믿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난 그들의 노래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토록 즐거워하며 목청을 높이지만 난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노래를 강권했지만 누구도 내 노래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내 노래가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닌데도 말이다. 그들의 노래는 더 이상 내 노래가 아니며 내 노래는 더 이상 그들의 노래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노래를 하면서 서로를 비웃을 뿐. 동지의식을 더욱 돈독히 하고자 찾아 왔던 노래방에서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다른 인간인가를 확인하는 의식을 거행했던 셈이다. 참 씁쓸한 경험이었다. 함께 숨쉬면서도 공유할 수 있는 노래가 없다는 것.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내 또래의 다른 분들은 노래방에서 내가 겪은 경험을 어떻게 모면하셨는지 매우 궁금하다. 어떻게든 '젊은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노래를 찾아 애써 노래를 공부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그들과의 공유를 포기하고 그들이 원하든 원치않든 내 노래만을 고집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김유신이 천관녀의 집 문턱에서 말의 목을 내려쳤던 것처럼 노래방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노래방 문턱에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하시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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