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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 | [문화저널]
편집자주
문화저널(2004-02-17 16:04:56)
땅을 한자만 파도 길어올릴 수 있을 만큼 지하수가 넉넉하다 해서 이름 첫머리에 언제나 '우물 정(井)'자가 따라다닌 '정읍'. 전주와 광주의 중간쯤에 서서 전라도의 또다른 거점지역을 자임하던 이곳은 물자가 모여든 곳이었다. 백제시댄 고사부리성이 있었던 만큼 불교의 흔적이 오늘날에도 곳곳에 담겨져 있고, 통일신라시절 최치원의 학문이 무르익던, 그래서 지금도 유교문화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읍사람들은 불교문화나 유교문화의 고장이라기 보단 갑오년 동학농민군의 역사가 서린곳으로 불려지길 원한다. 정읍은 바로 그 전봉준의 땅인 것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새장을 연 갑오년의 역사, 동학농민혁명은 황해도 이남 전지역에서 일어난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를 높이둔 농민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정읍이다. 한때 '동학난'으로 왜곡되면서 '동학비도'로 매장됐던 정읍사람들. 그래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피어린 항쟁의 역사를 쉬쉬 감출 수밖에 없었던 그네들의 가슴앓이는 백년의 세월을 뛰어넘었고, 그 세월만큼 그들의 가슴엔 '한'이 서려 있다. 그리고 그 한을 풀어내듯 요즘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바로세우고 기념하기 위한 갖가지 사업들을 내놓고 있다. 정읍의 또 다른 상징 '내장산'과 '정읍사'도 정읍이 자랑하는 3가지 보물 중의 하나다.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내장산 단풍이야 말할 것도 없고, 유일한 백제노래인 정읍사, 그리고 최초의 가사문학으로 통하는 정극인의 '상춘곡'의 고향이기도 한 정읍. 그만큼 정읍은 전통 속에서 묻어나는 문화예술을 향기와 시대에 맞섰던 저항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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