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 | [특집]
문화예술기관 민영화의 허와 실
생산성과 전문성, 관과 멀어질수록 좋다
타 지역 사례를 통해 본 '민영화' 의 본뜻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4-02-17 15:41:29)
최근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에서는 앞다투어 민영화와 책임운영기관화가 시급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1998년 12월 정부로부터 내려진 제1차 정부조직개편 지침과 1999년 3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제2차 정부조직개편 방침에 따라 전국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에 '민영화'라는 거대한 회오리를 몰고 왔다.
민영화 추진의 배경과 목적은 관 중심의 극장 운영을 민간 전문인 중심으로 배치해 수익성과 전문성을 꾀해나가면서, 점진적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의존도를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 소비자 중심의 운영을 통해 공급자 위주로 진행된 관료조직의 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문화기관의 서비스 정신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같은 '청사진'은 오는 8월 개관을 앞둔 한국소리문화전당을 비롯한 전북 예술기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변화된 문화 환경이 현재의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문제는 '민영화'의 구체적인 경영 형태를 소리문화전당에 어떻게 적용해 나갈 것인지로 모아진다. 타 지역의 민영화 사례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민영화라는 개념은 우선 행정조직 하부 소속기관(사업소)을 법인화하는 절차를 통해 독립된 기관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운영 책임자에게 인사권과 예산편성, 사업의 독립성을 부여함으로써 경영 성과를 극대화 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법률적인 의미에서의 '민영화'란 국공립 문화기관의 대지나 건물 등의 모든 재산소유권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을 뜻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국 대부분의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에서 거론되는 '민영화'는 사실상 '민간 위탁 운영안'과 같은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위탁' 방안은 구체적으로 재산권(토지 및 건물 소유권)을 지자체나 정부가 갖고, 경영 및 운영은 기업재단이나 개인, 사단법인 등으로 위탁한다는 뜻이다. 일정정도의 보조금은 지자체에서 지원하되, 극장 경영 및 운영을 기업이나 개인, 사단법인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문화기관들이 대부분 재단법인화 방안을 선택 또는 검토중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해 정동극장 등이 민영화를 근거로 재단법인화로 전환한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지역의 경우 현재 부천 복사골 문화센터가 부천시에서 시설관리공단을 설치 운영해 오다, 재단법인 전환을 추진중에 있으며, 소리문화전당과 규모면에서 가장 비슷한 창원 성산아트홀 역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을 맡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재단법인화를 계획하고 있다.
시설관리공단은 지방자치법에 의거한 공공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어, 숫적으로 민간인 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극장운영의 장악력이나 결정권은 관(지자체)이 갖고 있어 '민영화'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부천시의 경우 이같은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생산성과 전문성을 떨어뜨린다는 판단 아래, 극장의 민간인 장악력이 시설관리공단 보다 높은 재단법인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경우이다.
재단설치의 주체는 대부분 문화예술기관의 재산권을 갖고 있는 지자체가 되는데, 예술의 전당은 지난 1987년부터 자체 재단법인을 설립해 운영되다, 1999년 12월 정부(문화관광부)의 특별법인화로 전환됐다. 예술의전당이 특별법인화를 추진한 이유는 경영 및 운영은 물론, 재산권까지 예술의전당으로 완전 이전함으로써 완전한 독립을 꾀하기 위한 것. 특별법인은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빚어질 엄청난 양도소득세와 증여세 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법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예술의전당은 특별법인화가 완료되면서 현재 소유권 이전을 서두르고 있어 그야말로 진정한 '민영화'를 위한 준비단계라 할만하다.
위탁에 따른 민영화의 경영 형태가 대부분 재단법인화로 정해지는 데에는 재단법인이 갖는 공익성과 재정적 안정성, 전문성 확보 등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한다. 재단이 설치되면 고정적인 투자금액이 확보돼 재정자립도를 안정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데다, 전문가의 독립성을 유지시켜 주는 데에도 장애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민간 위탁의 성공 요소를 판가름 하는 데에는 전반적인 기획경영의 효율성도 검토되어야 하지만, 각 극장의 독립성과 안정성을 유지시켜 나가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재정자립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사례를 놓고 보면, 재단법인화와 재정자립도 확보는 각별한 함수관계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1>
예술의전당의 경우 1998년부터 30%의 인력감소와 시설보완 등의 경영혁신을 통해 현재 재정자립도 70%에 육박하는 안정적 구도를 일궈냈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 사업소로 운영되던 때만해도 재정자립도 10%대를 밑도는 대표적 부실운영기관이었으나, 1999년 7월 재단법인으로 전환한 이후 16%대로 끌어올려졌다.
이에 반해 지자체의 사업소 형태로 존재하는 문화기관은 대부분 재정자립도 6~7%대에 머무는 빈약한 경영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하고 경제적 가치를 우선으로 할 때의 평가 잣대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민영화가 당초 '경영 합리화'라는 측면에서 기획 추진돼 왔다는 점에서 본다면, 재단법인화가 이같은 목적에 가장 근접한 안정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과 문화적 가치의 공익성 추구 등 내용적 충실도에 대해서는 예술사업이나 기획공연 등의 공연물이 어느정도 기획되고 마련되고 있는지가 평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예술의전당은 타 극장과 대비될 만큼 '품질' 면에서도 안정된 성과를 이뤄내 좋은 예가 되고 있다.
특히 경영혁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 등의 과정을 통해 예술기획사업의 수입이 대관료 등 임대사업의 수입을 오히려 웃돌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예술의전당은 지난해 기획사업의 비율을 높여 공연 및 전시에서 전체 재정자립도 70%의 절반이 넘는 38%의 수입을 얻어냈는데, 이는 대관 및 시설임대료 21%를 훨씬 앞지르는 수치이다. 대부분의 문예기관들이 대관 및 임대수입료에 의존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례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이같은 결과는 물론, 예산편성에 예술사업비가 별도 책정돼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종문화회관은 지난해 예술사업비로 전체 예산의 50.7%가 투자됐으며 예술의전당은 35%가 책정된바 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경우 1년 지원금 57억으로는 인건비와 시설유지비 등을 제외하면 프로그램개발이나 예술사업비 책정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는 2000년 주요 극장별 예산편성만 보더라도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표2>
전라북도가 소리문화전당 경영형태로 선택한 민간위탁 방안 가운데 하나인 기업재단 위탁은 생산성은 높은 반면, 공익성보다 영리 목적의 수익성이 중시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고, 국립극장과 같은 개인 위탁(책임 경영)은 운영자의 경영비전과 능력에 따라 그 미래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제약과 위험요소가 따를 수 있다.
지난 1989년~1990년까지 전국 유일의 기업 위탁을 추진했던 춘천어린이회관은 국내 굴지의 문구회사에 운영을 맡겼으나, 2년 후 운영 실패로 기업이 철수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결과적으로 공공성과 수익성, 두 가지 면을 모두 꾀하지 못한 때문이다.
지난해 연극인이자 연출가인 김명곤씨를 책임운영자로 선임한 국립극장의 경우 문화예술 전문가 영입을 통해 전문성 등이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체제전환한지 겨우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재정자립도 등으로 한국소리문화 전당을 비롯한 타 극장과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정동극장 역시 전문인 영입과 재단법인 설치를 통해 기획과 홍보, 마케팅 등에서 고루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지만, 400석 규모에 연 8억원 정도의 예산을 쓰는 작은 공연장이란 점에서 대규모 문화예술기관과 쉽게 견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재단법인 등으로 '자체 독립' 을 추진했던 예술의전당이나 정동극장 등 비교적 후한 평가를 얻고 있는 이들 단체는 서울이라는 '시장'을 무대로 하고 있어 전주와는 또 다른 차이가 있음을 감안할 때 더더욱 신중한 접근과 장기적 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소리문화전당은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도에서 일정금액의 지원을 해주는 대신, 문화예술과 관련한 비영리 법인이나 단체에 민간위탁 하겠다는 두리뭉실한 계획으로 위탁자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이 분야에서는 내로라 하는 전문가 집단이 포진된 전국 유수의 극장마저 재정자립과 문화적 공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아가는데 숨이 찬게 현실. 더군다나 전주 '시장'을 무대로 57억이라는 유례없는 소자본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대로 뽑아낼 만한 단체가 과연 존재할 것인지, 전국 주요 극장이 확보하고 있는 예산편성비율만 보더라도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